무심히 놓인 등기부등본도 다시 확인하자
건물 브리핑이 끝났다. 바깥공기가 유난히 상쾌했다. 약한 내 비위는 동물원 변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연신 고통을 표했다. 폐포 깊숙히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만큼 지하실 상태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남편과 나는 부동산으로 들어가 건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건물 관리가 안 되어있어 집주인이 몇 천 더 네고를 해 준 상황이고, 제주도에 이미 터를 잡은 터라 얼른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부동산 소장님도 건물이 너무 싸게 나와서 본인 딸에게 1달 동안 권유했는데 결국 안 하겠다고 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과연 이 건물을 고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아파트 셀프 인테리어는 몇 번 해봤어도 건물은 난이도가 달랐다. 아파트는 네모나고 반듯하다. 물이 새봤자 윗집 배관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 인테리어 해주시던 작업자 분이
“아파트 인테리어가 가장 깔끔하고 쉬워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인테리어를 여러번 했지만 건물은 배관, 똥통, 곰팡이 파티였던 지하, 담배 물고 음식을 만들던 세입자까지 어디서부터 처리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차에 타자마자 우리 집을 몇 번 고쳐주셨던 작업자에게 차례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설비 사장님은 ‘집수정’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비 전문가니,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건축사와 설비 사장님까지 다음 날 5시에 약속을 잡고 부동산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내일 집 상태 보러 한번 더 가겠다고. 웬만하면 이 건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단 하나, 워낙 쌌기 때문이다.
내 특기이자 취미는 김칫국 마시기다. 이미 머릿속으로 나는 이 건물로 이사까지 완료했고, 우리 아이들은 이 건물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세입자가 있어 확인하진 못했지만, 주인세대는 복층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동네는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라서 지리가 훤했다. 이미 나는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손잡고 장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단란하고 재미있게 이 건물에서 살 거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으니 1층은 음식점 대신 학원이나 공부방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사장님, 저희 내일 건물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요? 정화조 확인하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약속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예비 건물주가 되어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깊은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오전부터 분주했다. 오후 5시에 건물을 한번 더 확인하려면 애들 하원부터 시작해 서로 조율해야 할 게 많았기에 나는 반차 쓰고 애들 하원, 남편은 건물을 한번 더 보는 걸로 약속을 조율했다. 꼼꼼한 남편은 밤늦게까지 정화조와 건물관리법, 그리고 집수정에 관한 내용까지 살펴보고 잠이 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첫 번째 카톡이 왔다.
“오늘 5시 건물 한번 더 가기로 약속함”
“ㅇㅇ“
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된다. 최소한의 생존신고, 말 안 해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고 치자.
그러다 30분 후에 갑자기 또 카톡이 왔다.
“거래파기, 1층 세입자가 건물 사기로 했다고 함”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당장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가고 나서 1층 그 담배 피우던 세입자가 고민하다가 오늘 아침에 건물주한테 바로 전화해서 건물 사기로 했대 “
“응? 말이 돼? 우리가 하려고 했잖아 “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설득했는데 안된대. 우리가 사겠다는 정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아서 본인이 중재할 방법이 없대”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난 이미 예비 건물주였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장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사모님, 죄송하게 됐네요. 그런데 1층 분도 어제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직접 집주인한테 사겠다고 해서 집주인이 그러라고 했대요. 거래 끝났습니다”
“네? 무슨 소리세요, 그럼 부동산이 중간에서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약속도 잡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잖아요”
“죄송하게 됐네요”
(갑자기 1층 세입자가 전화를 바꿨다) “사모님, 제가 사게 됐네요. 뭐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사기로 해서 이 거래는 끝났습니다”
“네? 지금 사람 바보 만드시는 겁니까? (이미 이성 잃음) 그러면 중간에 조율을 해주셨어야죠 “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 전화 끊겠습니다 “
뚜뚜뚜
이후 다시 전화해서 화도 내고, 설득하고, 웃돈까지 주겠다고 했지만 세입자와 10년 넘게 관계를 맺은 부동산 사장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의상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정말 기묘한 경험이었다. 초식동물의 세상에서 살다가 갑자기 하이에나가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한가운 데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초식동물인가, 하이에나인가.
어쩐지 건물 보러 간 날, 식당 한구석에 무심하게 놓인 등기부등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세입자는 담배를 쭉쭉 피워댔었고 건물의 단점만 계속 나열했었다.
며칠 동안 속상함에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다. 이후 확인한 거래는 더욱 나를 힘 빠지게 했다. 안 그래도 5천만 원 넘게 깎아줬는데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 가격에서 1500이 더 깎인 금액으로 거래됐기 때문이었다.
집주인과 건물주는 느낌이 달랐다. 나는 5시간 정도 건물주 뽕을 맞았다. 그리고 이 뽕은 열망으로 다가왔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건물을 둘러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건물주가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