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또 다른 덕선이, 김정순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을 보다가 나는 극 중 둘째 딸 캐릭터를 보며 격하게 몰입했다. 위로 똑똑한 언니, 아래로 귀한 아들, 그 사이에 낀 둘째 딸. 어쩐지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나도 1남 2녀 중 둘째였다. 위에 언니, 아래에 남동생. 그 가운데 낀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웠다.
언니는 집안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공부를 잘했고,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남동생은 그 시절 유행하던 남아선호사상 덕을 톡톡히 봤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언니는 맏이라고 용돈을 받고, 남동생은 아들이라고 용돈을 받았다. 그것도 나 몰래 슬쩍 쥐여주시는 걸, 나는 다 봤다.
'쳇, 나는?'
어린 마음에 서럽고 억울했지만, 딱히 떼를 쓰지는 않았다. 그냥 속으로만 삼켰다.
엄마는 수산시장에 생선을 팔러 나가셨다. 그러면서 집안일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됐다.
"정순아, 밥솥에 밥 안쳐놨고 프라이팬에 생선 구워 놨으니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같이 챙겨 먹어."
엄마는 일하다가도 걱정이 되셨는지 중간중간 전화를 하셨다.
"밥은 먹었어? 밥솥에 밥은 주걱으로 뒤집어놔야 안 붙어. 잘 저어놓고, 동생 밥도 챙겨주고, 다 먹으면 정리도 잘해놓고."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청소도, 빨래도, 간단한 요리도 내 몫이었다. 고학년 땐 밀가루를 반죽해서 수제비까지 끓여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참 손이 야무지게 단련됐다.
근데 나는 그게 서럽다기보다, 오히려 그걸로 칭찬을 받으려고 했다. 언니가 공부로 칭찬받으면, 나는 집안일로 칭찬받았다. "우리 정순이는 살림꾼이네." 그 한마디가 좋아서, 더 열심히 청소하고 더 야무지게 반찬을 챙겼다.
물론 공부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두 살 위 언니가 풀던 문제집이 집에 쌓여 있었는데, 그 문제집들은 2년 후엔 내 차지가 됐다. 근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언니가 풀어놓은 연필 자국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 아니면 흰 종이를 접어서 답이 안 보이게 가려가며 문제만 먼저 보고 풀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니 뒤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내 방식대로 그 시간을 채워보려 애썼다.
지나고 보니 둘째로 산다는 건,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어떻게든 내 몫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언니의 문제집을 물려받으면서도 나만의 풀이 방식을 만들고, 집안일로 나만의 존재감을 세우고. 근데 그 틀이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었는지,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심지어 내 이름조차,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사실 나는 개명을 했다. 원래 이름은 김정순이었다.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 이름에 비하면 내 이름만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현정이, 소영이, 희은이, 지은이, 은지, 선영이… 내 이름만 빼고는 다들 세련되게 느껴졌다.
하루는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내 이름은 누가 지은 거야? 왜 정순이가 된거야?"
"너 이름? 할머니가 지으셨잖아."
내가 둘째 딸로 태어나니, 그 밑에는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컸던 할머니가 어디선가 점을 보고 오셨단다. 아빠 이름의 가운데 글자와 엄마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딸 이름을 지으면, 다음엔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를 들으셨다고. 그렇게 물가 정(汀)에 순할 순(順) 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 김정순이 된 것이다. 물가에서 순하게 노는 아이, 뭐 그런 뜻이었으려나.
"뭐야, 그럼 내 평생 불릴 이름이 동생 낳으라고 지은 이름이었어?"
억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밑에 남동생이 태어났으니, 할머니의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셈이었다. '그럼 이제 내 이름은 할 일 다 한 거네.'
용돈도, 문제집도, 내 이름 조차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억울함이 나를 주저앉히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적으로 개명 신청 절차를 간소화해준 시기가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학교에 바로 신청서를 넣었다.
재밌는 건, 지금 이름 "김현아"를 부모님이 아닌 내가 직접 지었다는 거다. 그동안 촌스럽다고만 생각했던 이름 대신, 5학년 정순이가 그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이름을 스스로 골랐다. 한자와 획수는 서예가이셨던 아버지가 뽑아 주셨다. 나타날 현(顯)에 나 아(我). "내가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물가에서 순하게 놀던 정순이는 나를 나타내는 현아로, 새로운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났다. 마치 스스로 운명을 바꾸겠다는 선언처럼. 누군가의 기대나 필요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나를 위해 골라낸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진짜로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살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용돈 없는 손을 물끄러미 보던 둘째 딸이, 살림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던 아이가, 결국엔 자기 이름까지 스스로 지어낸 사람이 됐다.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사실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이, 어쩌면 그 새로운 이름 두 글자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