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자존심으로 바뀌던 순간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6년 내내 반장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 학생회장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기본적으로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필요할 땐 나서서 바카라임지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시절엔 좀 이상한 관행이 있었다. 자식이 반장이 되거나 전교회장이 되면, 부모님이 학교에 "한턱"을 내는 거다. 선생님들 회식비를 보태거나, 뭔가를 기증하거나. 요즘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관행이지만, 그때는 학생회비라는 명목으로 다들 그렇게 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은 그걸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안 한다"고 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 거 못 해요."
담임 선생님한테 이 말을 하던 엄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기죽지도 않았다. 그냥 담담하게, 사실을 말하듯 그렇게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거 정말 당당한 태도였다. 돈이 없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엄마를 존경한다. 지금은.
그런데 그때는…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다녔던 것 같다. 어깨 펴고, 목소리 크게 내고. 누가 봐도 "나 전혀 신경 안 써" 하는 얼굴로. 근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조그맣게 쿡 찔리는 게 있었다. 친구네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이랑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걸 볼 때, 나는 괜히 눈을 피했던 것 같다.
나중이 되어서야 생각해보니 집에 와서 “엄마! 나 또 반장됐어!” 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시던 엄마의 미소 띈 얼굴 뒤엔 왠지모를 걱정어린 표정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누구한테 말한 적은 없다. 이 얘기를 이렇게 글로 써보는 것도 사실 처음이다.
그 감정은 사법시험공부 하던 시절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친구들은 좋은 오피스텔이나 넓은 집에 살면서, 듣고 싶은 강의는 다 듣고, 신간 문제집을 척척 사는 것 처럼 보였다. 몇몇 친구들은 집에서 보내온 영양제와 보양식을 먹으면서 공부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반지하 방에 살았다.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이 보이는 그런 방. 듣고 싶은 인터넷 강의가 있어도 "이건 안 들어도 되겠지" 하고 줄였다. 문제집은 새 걸로 산 기억이 별로 없다. 헌바카라방에서 밑줄 그어진 것들을 사서 봤다. 그 특유의 냄새, 아직도 기억난다. 오래된 종이 냄새랑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듯한 그 느낌.
근데 진짜 힘들었던 건 사실 반지하 방도, 헌바카라도 아니었다.
"더 이상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알면서 계속 시험 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조급했다. "빨리 붙어야 한다. 이번엔 반드시 붙어야 한다." 그 압박감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그게 나를 자꾸 미끄러지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시험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손이 떨리고 머리가 하얘진다. "합격해야 해"라는 마음이 너무 크면, 정작 문제를 풀 때 필요한 차분함이 사라져 버린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부끄러움과 그 압박감이 나중에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결국 나의 20대를 모두 받쳤던 7여년의 고시생활은 불합격이라는 결과로 끝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돈이 없다는 게 왜 이렇게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까." "나는 언제쯤 이 눈치 보는 걸 그만둘 수 있을까."
그리고 훗 날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이건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훨씬 더 절박한 무언가였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가 담임 선생님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였다. 내 발로 서는 것. 내 돈으로 사는 것.
돈이라는 게 그냥 먹고사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돈은 자립의 문제였고, 자존의 문제였다. 통장에 얼마가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 앞에서도 작아지지 않을 수 있느냐의 문제. 작아지지 않으려면, 먼저 돈을 알아야 했다. 내가 더듬더음 돈 공부의 길로 들어선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 반지하 방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방에서 헌바카라방 문제집을 펼치던 스무 살 언저리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너는 지금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엄마처럼 당당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