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농 속에서 세상 밖으로
바카라장 맨 아래 칸, 오래 전에 끼워놓은 액자 속에 자격증이 있었다. 액자를 꺼내는데 손끝에 보슬한 먼지가 묻어났다. 표면을 소매로 슥 닦아냈다. 기분 탓일까. 사진 속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시작한 공부였다. 그 아이가 어느새 열한 살이 됐으니, 꼬박 10년을 이 곳에 잠들어 있던 셈이다.
그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전업주부로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고, 한편으론 "아직 내 미래를 공인중개사로 확정 짓기엔 이르다"는 생각에 스스로 그 자격증을 자꾸 밀어 내기도 했다.
그러는 10년 동안, 나와 남편은 꽤 많은 부동산을 거쳐왔다.
신혼 시절 원룸 오피스텔에 처음 들어가던 날이 생각난다. 살림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단출한 짐 몇 박스를 풀며 우리의 첫 보금자리를 꾸렸다.
방 하나 더 있다고 좋아하며 옮겨간 전세집도, 처음 손에 쥐어본 분양권도 있었다. 부동산 사무실을 몇 군데씩 돌며 프리미엄을 비교하고, 중개사님들 앞에서 어설프게나마 협상이라는 걸 시도해봤던 그 시절. 서툴렀지만 그게 내 첫 부동산 공부였다.
직접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서는 통화 몇 번으로 층수를 올려 받는 재미도 봤고, 상가를 살 때는 공실 리스크를 온몸으로 겪으며 입지의 무게를 배웠다. 제주 로망에 취해 계약했던 풀빌라 숙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숙제로 남아 있고, 제주 오피스텔과 재건축 아파트를 매수하면서는 또 다른 결의 판단력을 길렀다. 물건 하나하나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순간의 긴장감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사고팔고 임대를 놓는 과정에서 나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다른 종류의 수업을 하나씩 던져줬다.
한번은 아파트 매수계약을 하던 날, 계약서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이상한 문구가 있었다.
"매도인의 하자담보바카라임은 계약완료 후 1개월로 한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우리와 의논도 없이 매도인의 바카라임기간을 너무 짧게 줄여놓은거였다. 매수자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 있는 조항이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민법상 하자담보바카라임기간(6개월)을 적용한다."는 문구로 수정했다. 그날 나는 계약서라는 게 그냥 도장 찍는 종이가 아니라, 한 줄 한 줄이 실제로 사람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걸 배웠다.
또 다른 집을 살 때였다. 매도인이라는 분이 첫마디부터 강하게 나왔다.
"이 가격 아니면 안 팝니다. 다른 데도 보러 온다는 사람 많아요."
밀어붙이는 화법에 순간 주눅이 들었다. 근데 옆에 있던 중개사님이 슬쩍 눈짓을 하더니 나중에 따로 말해주셨다.
"진짜 급하면 저렇게 말 안 해요. 여유 있게 며칠 더 두고 보세요."
정말로 며칠 후, 그 매도인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가격을 조금 더 낮춰서라도 진행하자고. 그때 배웠다. 상대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배짱은, 정보와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중개사님들도 저마다 성향이 달랐다. 어떤 분은 필요한 서류를 미리 다 챙겨서 확인시켜주는 꼼꼼한 스타일이었고, 어떤 분은 "이런 거 다 잘 되니까 걱정 마세요~" 하며 대충 넘어가려는 스타일도 있었다.
"등기부등본 최근 걸로 다시 한번 떼 봐 주실 수 있나요? 근저당 설정된 게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고 싶어서요." 계약 직전, 나는 늘 이렇게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말씀드린다.
"에이, 사모님,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보시면 언제 계약해요~" 어떤 중개사님은 웃으며 그렇게 넘어가려 했지만,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서류를 다시 요청했다. 그 습관 덕분에 실제로 한 번은 근저당이 새로 잡힌 걸 계약 직전에 발견하고 조건을 다시 조율한 적도 있었다.
법으로 정해진 절차와, 사람 대 사람으로 지켜야 할 예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 그것도 그렇게 하나씩, 실전에서 부딪히며 익혀나갔다.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상황이, 나에게 각각 다른 걸 가르쳐줬다. 협상은 대범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는 것. 법규는 외운다고 아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부딪혀야 몸에 새겨진다는 것. 그리고 배짱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생긴다는 것.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언니, 나 이번에 전세 구하는데 이 계약서 좀 봐줄 수 있어?"
친한 동생이 계약서 사진을 찍어 보내며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조항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뭐가 문제고 뭘 더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전세기간이 만료되었는데 집 주인이 전세금을 못 주겠대. 돌려받는 방법이 있을까?"
“집을 산지 1개월만에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이거 어디에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해?”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쌓이기 시작했다. 이사할 집을 알아봐 달라는 친구, 대출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지인, 이 동네가 살기 괜찮은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나는 그때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바탕으로 아는 만큼 열심히 알려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뿌듯했다.
'이걸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게 아니구나.'
그동안은 내 가족,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해 배운 것들이었는데, 어느새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식이 되어 있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이 동네 저 동네 시세를 보러 다니던 그 모든 시간이, 이제는 나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집을 찾아주는 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이 자격증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다.'
그렇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무렵, 나는 공인중개사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10년 전, 갓난쟁이 아이를 옆에 두고 시험공부를 하던 그때는 몰랐다. 이 자격증이 이렇게 오래 잠들어 있다가, 결국 내가 살아낸 10년의 시간과 함께,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줄은. 서랍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 종이 한 장이, 이제야 제 몫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