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잘 싸 오는 자출 여직원

나의 첫 취업 이야기

by김지연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나는 잠시동안 아마추어 타투이스트로 살았다. 당시 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은 불법이었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그 바보 같은 법이 곧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좋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몸에 영원히 남을 그림을 새겨준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작업이 들어올 때마다 벅차게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좋아하고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 일은 정말 없는 걸까? 그 감격에 돈은 반비례했다. 자본이 아예 없이 시작했기에 부스 월세랑 재료비만도 충당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은 1년 전에 받은 타투가 안 드니 지우는 비용을 내놓지 않으면 불법시술로 신고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포트폴리오 시술이라 돈은 거의 안 받고 그려줬고, 갈 때 마음에 든다고 웃으며 나갔던 손님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충격이었지만 더 충격인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수강비 500만 원을 받고 타투를 가르쳐준 선생님은 내 상황 설명을 듣고 손님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진작가의 어시스트로 룩북 촬영이 있을 때마다 가서 보조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한번 갈 때마다 10만 원을 벌어왔었는데, 손님과 대화를 통해 커버업 비용을 주는 거로 합의를 했지만 촬영보조만 해서는 그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인투식스 고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나 인턴 자리를 알아봤다.


세 번의 이력서 제출 두 번의 면접.

그리고 하나의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의류벤더회사 해외영업팀이라고 했다.

벤더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첫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까?


과장님과 면접을 볼 때 과장님은 나를 보며 자신이 슬롯에 첫 발을 내디딘 시절을 떠올리는 듯,


“지연 씨랑 저랑 딱 열한 살 차이 나고 제가 회사에 온 지 11년 됐으니 딱 지연 씨 나이 때 여기 들어왔네요.”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에게 무엇이든 물어봐도 된다며 자상하게 많이 알려주셨다.


비록 아르바이트긴 하지만 정직원 전환이 흔한 직종이기도 해서, 나의 취업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내 온라인 게임생활이 상상도 안 간다며, 온라인 게임인 김지연이라니 가당치 않다며, 너마저 자본주의에 굴복하다니 말도 안 된다며 놀란 기색을 표했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이미지였던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자기 일을 시작할 용기를 줬다고까지 얘기해 주는 친구까지 있었다.


고맙고도 놀라운 일이다.


자본주의에 굴복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난 나름 새로운 일을 할 생각에 엄청 설렜다.


첫 발을 디디는 때의 용기와 기대감을 오랫동안 잃지 않고 싶었다.

감사했던 작가님의 응원

회사에서는 나름 귀여움받는 막내로 잘 적응해나갔다.


입사하고 처음 며칠간은 거의 사원님, 대리님, 과장님, 옆팀 과장님 등등 다른 분들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사주셔서 얻어먹었고 또 다음 몇 주간은 사원님과 밖에서 사 먹었다. 그러다 매일 한 시간 시급이 점심값으로 나가는 게 이내 부담스러워져 도시락팟에 끼기로 했다.


회사에는 한 여섯 명에서 여덟 명 정도 되는 도시락팟이 있었다.


같이 식사하며 도란도란 나누는 상사 뒷담도 듣고 그러다보니 우리 회사의 빌런이 누구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재밌었다.

도시락을 싸다니기로 했다는 내 말을 듣고 엄마가 도시락을 싸준다고 했다.


도시락팟 사람들이 직접 싸 오는 거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다.


처음엔 진짜로 직접 싸온거라 그렇게 얘기했는데,

엄마가 싸주기 시작했을 때는 괜히 엄마가 싸준다고 정정해서 온실 속에서 귀하게 자란 어린애 같아 보이기 싫어서 그랬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반찬 두세개와 밥을 싸주는 정도여서 돋보이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도시락이 점점 화려해졌다.


샐러드에 에멘탈치즈를 썰어 넣어 보내준다던가

견과류가 든 쌈장에 가지를 돌돌 말아 넣어준다던가

알록달록하게 싼 월남쌈을 반으로 잘라 가지런히 넣어준다던가

제육볶음에 쌈 싸 먹으라고 상추와 깻잎을 번갈아가며 포개서 락앤락에 싸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내가 보자기에 3층으로 싸 오는 매일 다른 반찬의 도시락은 회사 냉장고에 대량으로 반찬을 쌓아두고 매일 햇반과 함께 꺼내먹는 도시락팟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지연이는 도시락을 잘 싸와. 야무진 녀석 오늘은 뭘 싸왔으려나?”


내가 쌌으면 대용량 반찬모임에 합류하고도 남았을텐데 이제와서 사실은 엄마가 싸준다고 하기는 너무 모냥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영양사 뺨치는 엄마의 수고와 사랑을 꽁꽁 은폐한 덕에 나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양주에서 강남까지 출근은 자전거로 했다.


대리님이 자전거 주차할 데를 물색해 주고 과장님이 윗분들한테 허락을 맡아준 덕분이었다. 우리 층에서 담배 피우러 가는 길목의 작은 공간에 자전거를 두기로 했기 때문에 내 자출 소식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필두로 퍼져나갔고 특히 날 기특해하는(?) 과장님의 바이럴 영향이 가장 컸다.


옆 팀 계장님이 뜬금없이


"남양주에서 자출... 존경합니다. 저는 강변 사는데도 한 번도 자전거 타고 온 적 없어요. 심지어 전기자전거인데..."

하며 나에게 카톡으로 양심 고백(?) 했을 때에도,


퇴근하는 길에 택배를 발송하고 다시 올라가는 길에 만난 옆 팀 과장님이 또


"자전거 가지러 다시 올라가는 거예요?"

했을 때에도, 어떻게 아셨냐 물으면 우리 팀 과장님이 말해줬다고 했다.


자출 이틀차에는 내 자리로 전화가 왔다. 알바인 내 자리의 전화기에는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내선번호로 전화를 하는 사람은 원단집 아니면 에이전시일테다. 그러나 전화를 받자 낯선 목소리의 누군가가 웅얼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웅얼웅얼"

나는 누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놓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인 줄 알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웅얼웅얼."

똑같은 말을 다시 읊조리는 것이었다.

네? 죄송하지만 잘 못 들었습니다. 하자 한 번 더 똑같은 음조로 웅얼거린다. 잘 들어보니


"내 방으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 누군데..?

누구냐고 묻자 이름 석자를 댄다.

뭐... 이재봉..? 그게 누군데.


"이 상무!!"

아! 영업부 상무님이었다.


사원님한테 갑자기 상무님이 부르는데 상무님 방이 저기가 맞냐고 물어봤다.

사원님은 방은 저기가 맞긴한데, 상무님이 알바를 자기 방으로 부르는 건 처음 본다며 의아해했고 나는 그 덕에 약간 와들거리며 그 방으로 향했다.


"상무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성함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앉아."

앉았다.


"자전거 니끼가?"

그렇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오는데?"

남양주에서 온다고 했다.


"남양주 어데?"

도농이라고 했다.


"도농? 도농이 어디고?"

구리시 근처라고 했다.


"아 그 머 아파트 수두룩하게 있는 데 그 그긴가?"

그렇다고 했다.


"얼마나 걸리노?"

자전거 타는 것은 40분 걸리고 옷 갈아입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하면 한 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와~ 여자가?"

자전거 타는 거에 남자 여자가 어딨십니꺼? 그냥 타는 거지예… 당황스러웠지만 남자가 하기도 힘든 일을 여자가 한다고 대단하다 말해주는 거라 생각하기로 하고 웃었다.


"안 힘드나?"

원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오히려 활력이 생긴다고 답했다.


"와~ 여자가?"

그냥 사실 남자라고 할까?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아까처럼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웃었다.


"힘들낀데?"

회사에 오기 전에 국토종주를 해서 장거리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힘들기보단 오히려 활력이 되어서,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올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고 답했다.


"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또


"....... 여자가?"

이쯤 되니 (니가 그러고도) 여자가? 라는 뜻인가 싶었다.

하지만 일단 하하,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래. 그거 물어볼라고 불렀다. 가봐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는 네가 정녕 여자인지 확인하려고 불렀다는 건가?


아무튼간에 이 이야기를 사원님께 전하자 바빠죽겠는데 쓰잘데기 없는 걸로 부르는 걸 보니 상무님이 대단히 한가한가 보다고 투덜댔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였다.


9월에 입사해서 신나게 자출하며 다녔는데 한두 달 지나니 꽤 추워져서 자전거 출근을 하는 빈도가 낮아졌다.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남양주 집 거실 창문 너머 멀리 잠실 롯데타워가 보일 정도로 날이 맑을 때면 반드시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


퇴근 후에는 스튜디오로 가서 타투 연습을 했다.


언젠간 다시 합법이 되면 그때 다시 머신을 쥐어보리라 다짐하며 고무판에 그 손님이 받은 타투 도안을 몇 번이고 그렸다. 만족할 때까지 연습을 마치면 열두 시가 넘었다.


자전거로 출근했으니 퇴근도 영락없이 자전거로 해야 했다. 춥고 어둡고 졸리고 피곤해서 자전거 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별수 있나 싶어 그냥 한번 해봤다.


구리에서 한강을 끼고 넘어가는 어느 구간은 가로등이 전부 꺼져있었다. 거길 지날 때쯤엔 새벽 한 시경이어서 아주 컴컴했는데 어느 정도 달리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참에, 문득 ‘국토종주할 때 깜깜한 시골길에서 조난당할 때까지 타봤으니 이런 것쯤은 문제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용기가 솟았다.


기분 좋게 전조등을 상향으로 조절하고 달리는데 옆 눈으로 작은 뭔가가 빛나는 게 보인다. 별들이었다. 별들이 쏟아졌다. 와! 밝을 땐 안 보였던 것들이 작게 반짝반짝 빛나는 거다.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청명하더라니! 자전거 타고 오길 정말 잘했어. 하염없이 앉아서 별을 보고 싶었지만 멈추면 추워질까 봐 계속 달렸다. 달리면서 계속 힐끔힐끔 별을 봤다. 별이 빛나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다니.


회사에 다니게 되고 일상의 틀이 크게 바뀌면서 내가 예전에 자유롭게 살던 행복을 다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했었는데, 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기만 해도 충만함을 느끼고 보니 그런 걱정은 별것도 아닌 것 같았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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