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왕국

by김지연

그때 내 일정으로 영국에서 배로 갈 수 있었던 곳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였다.


가본 적 있는 프랑스는 제외하고 왠지 벨기에보다 끌리는 네덜란드에 가기로 하고 배편을 예약했다.


밤에 타서 8시간을 바다를 가로질러 아침 일곱 시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호스텔로 가는 길에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못 봤는데 커다란 공터에 빽빽하게 세워진 자전거 덩어리들, 이단 삼단으로 적재되어 있는 자전거 뭉탱이들만 몇 번을 지나쳤다.


호스텔에 도착해서는 짐을 맡기고 로비에 붙어있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는데 카페 티비에서는 뚜르 드 프랑스 중계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 나라 뭐지? 자전거에 미쳤구나.

실제로 네덜란드는 사람 수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은 나라라고 했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짐이 있어도 가득 어떻게든 싣고, 비가 와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지나가는 길에 신호가 걸려서 서있으면 갑자기 수로를 열어줘야 한다며 도로가 수직으로 일어서서 배가 지나갈 길을 열어주었다.


간척해서 세운 땅이라 수로가 많고 또 그 길을 배들이 실제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이용할 수 있는 큰 길이 많이 없어서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효율적이고, 또 대중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에 대중교통보다는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거라 했다.


나도 호스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봤다.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회사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영업팀 상무님까지 말단 알바였던 내 자리로 전화를 걸어서 불러내 자전거출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었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특이한 사람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리빈아. 네 덕에 나도 영국에서 배를 타고 네덜란드에 와봤는데, 여기 정말 웃기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자전거 나라에 오게 됐네. 아마 여기 다시 올 것 같아. 워킹홀리데이든 뭐든 오래 있을 수 있는 비자를 따서 여기 좀 머무르면서 자전거 생활이 익숙한 사람들 틈 사이에 섞여 살아보고 싶어.]


네덜란드 다음으로 방문하기로 했던 몇 군데를 들렀다가 남은 여행을 마치고 가을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너 네덜란드로 다시 올 거라던 그 말을 지키는구나,]

[나도 너처럼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실현시켜 봐야겠다.]

[내년에 일본으로 자전거를 타고 갈 거야!]


[와, 진짜 너 할 거야?]

[혹시 괜찮다면 나도 일부 구간만이라도 같이 가도 될까? 나도 비자 끝나면 한국 돌아갈 거니까 말이야.]


[헉 너무너무너무 좋아! 진짜로 진짜로 진짜지? 완전 재밌을 거 같아! 제발!]


커다란 결심이 필요한 여행에 엄청 큰 누나 내지는 엄청 작은 이모뻘 되는 사람이 낀다고 하면 실례일 것 같아서 고민하다 거절당할 것을 생각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리빈이는 생각보다 흔쾌히, 신나게 오케이 했다. 꼬리가 있었다면 그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붕붕 흔들고 있을 것 같았다.


리빈이 집이 네덜란드와 가까운 독일 서쪽지방이라서 중간지점에서 몇 번 만나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네덜란드에서는 일하기로 한 가게에서의 취업이 어쩌다 무산 돼버리는 바람에 비자만 따고 삼 개월간 머물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림들이랑 글들을 모아 작은 진을 만들었으나 열한 권밖에 없어서 어디에도 납품하지 못하고 들고 다니면서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우리를 재워주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줬다.


그냥 모든 게 그렇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흘러갔다. 독일에서 한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기로 한 것 말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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