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부] 드론[론]

나의 첫 국토종주, 첫날밤은 경찰차에서

by김지연

국토종주!


그걸 처음 마음먹었을 때는 타이틀만으로도 거창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말이 국토종주지, 그냥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집에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가셨다. 가겠다는 계획은 그대로였지만 긴장의 끈이 아주 느슨해진 거다.


출발하는 날까지 긴장감 없이 설렁설렁 짐을 쌌는데 막상 출발하려니 뭔가 빠진 것만 같고 혼자 이런 걸 하려니 머쓱하기까지 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오후 네시에 출발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출 시각 엇비슷하게 나가서 땡볕을 피해 달릴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친구들이 내 여행계획을 듣고 첫날 목적지인 충주에 먼저 숙소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양주에서 충주까지 거리는 약 140km. 시속 20km로 달렸을 때 밤 11시 반쯤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모르는 것도, 재밌는 것도 많을 초행길에 쉬지 않고 달리기란 어려울 것 같아 집과 충주 사이에 가장 충주에 가까운 역을 찾아서 거기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짐을 최소화해야 해서 자전거복 외에는 아무것도 안 챙기려 했는데, 그 복장을 하고 집 주변을 활보하기에는 너무 민망했기에 안장 패드가 달린 타이즈와 자전거용 져지를 입고 그 위에 또 청바지를 입었다.


양평역에 내리니 다섯 시였다.


자전거도로가 있는 강가를 찾아 내려가 주섬주섬 바지를 벗었다. 타이즈 한 겹아래 반짝 드러나있을 엉덩이를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눈앞에는 한강이 이름처럼 크고 넓게 펼쳐져있었고 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길은 천국 같았다.


강을 따라 드리워진 수풀과 우거진 나무, 그 사이로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빛은 자전거 도로 위에 성글성글 그림자를 드리웠다. 싱그럽기 그지없는 나무 향이 마스크 속을 파고들었다. 누가 자전거 도로에 디퓨저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진한 싱그러움이었다.


벌써 도시와 분리된 것 같았다. 게으름 피운 거에 대한 죄바카라감, 부담감 따위는 바람에 날아가 없어지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을 드리우는 자연과 도로와 자전거와 나, 그리고 달리면 느껴지는 싱그러운 바람뿐이었다.


싱그러움을 즐기고 있긴 했어도 기온이 체온과 다를 바 없어서 나는 거의 움직이는 수비드 스테이크가 된 것 같았다. 집에서 얼음을 가득 채워 가져온 물병마저 체온과 비슷하게 녹아버렸을 때쯤 편의점에서 얼음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여주쯤 갔을 때 자전거 가게를 발견했다. 전조등도 없는 자전거 초보 상태로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게에 들어가서 전조등을 사고, 또 물병이 하나로 벌써 부족한 거 같아 600ml짜리 물병을 하나 더 샀다. 자전거가게 아저씨는 새로 산 물병을 헹구고 물을 채워주시면서 옆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쫄쫄이 아저씨들 중 하나에게 내 전조등을 조립하라고 시켰다. 사실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조그만 물건을 가지고 어딜 분리해야 하느니 하는 얘기로 논쟁을 벌이는 아저씨들을 보는 게 재밌어서 그냥 보고 있었다. 동전으로 어딜 따서 건전지를 넣어야 한다는 아저씨와, LED 뒷면에 있는 뚜껑을 따야 한다는 아저씨가 잠시 대립했으나 직접 분리해 본 후 동전 아저씨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봤지- 이런 거에는 동전이 필요하다니까. 나 기계과 출신인 거 몰라?


왁자지껄한 현장을 빠져나오니 웬 강아지가 원반을 들고 나를 올려다봤다.

'원반을 던져줘' 눈망울이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원반을 멋지게 던지는 법은 모르지만 그 눈망울을 마주치고도 원반을 던져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갈 길이 멀긴 했지만 강아지가 내게 바라는 건 고작 원반 던져주는 일뿐인걸. 원반을 몇 차례 던져주고 강아지가 신나게 달려오기를 몇 번, 학학 웃으며 원반을 착실히 물어오는 얼룩 강아지의 뒤통수 너머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베이지색이 되자 자전거를 타기 어렵지 않은 온도가 되었다. 자전거 길은 아까부터 지금까지 인적은 드물었다. 그래서 좋기도 하고 조금 심심하기도 했다. 이 하늘과 땅과 강과 바람이 나만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황홀하면서도 조금은 외로웠다.


인적 없던 도로에 갑자기 어느샌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가 등장했다. 나를 추월했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 보면 다시 내가 앞에 가있었다. 혹시 저 사람도 국토종주 중일까? 어디까지 가는 걸까, 여주보에 도착해서 빨간색 인증센터 부스로 들어가 도장을 찍고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두리번거려보니 그 사람은 자전거에서 내려 익숙한 듯 메신저백을 고쳐 매고 여주보 관리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여기가 목적지였구나. 살짝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여주에서 산 물통을 따서 입에 대고 찍찍 짰다. 수압이 생각보다 세서 물이 목구멍을 세게 때렸다. 컥컥거리며 물을 마셨다. 생각해 보니 땀을 너무 흘려서인지 하루 종일 한 번도 화장실을 안 갔다. 물은 1리터 넘게 마신 것 같았는데. 포도당 캔디를 하나 까서 우둑우둑 씹어먹었다.


한강 위에 설치된 다리에 조명이 화려했다. 다리를 건너올 때는 안 보였는데 다 건너와서 보니 엄청 밝고 화려했다. 그만큼 어두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덟 시였는데 가로등이 없으니 제법 껌껌했다. 아직도 온만큼을 더 가야 했다. 어두운 길을 혼자 외롭게 가야 한다는 사실이 적적하긴 했지만 아직 무섭지는 않았다. 길은 강을 따라 나있는 평범한 자전거 도로처럼 보이다가도, 별안간 무지하게 넓어져서 활주로처럼 광활한 도로가 되기도 하고, 포장도로가 갑자기 끊기고 돌길이 나오기도 했다.


어두워지니 아까 산 전조등이 빛을 발했다. 근데 좀 미미하게 발했다. 자전거 가게에 있던 중 가장 저렴한 걸 골랐기 때문이다. 최대 밝기로 올려봐도 반경 2m 정도가 침침하고 미미하게 조금 밝아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어둠 속을 더듬더듬 헤치며 자전거를 끌고 벤치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감사하기로 했다.


침침한 만큼 속도를 줄이며 길을 따라가는데 다행히 길은 평탄했고 금방 다음 인증센터가 나왔다. 그 옆에는 매점도 있었다. 마침 배가 고파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청바지를 꺼내입고 올라가서 라면과 딸기우유를 사 먹었다. 자전거 도로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매점엔 학교동창으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니랑 나랑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를 흘려들으며 라면을 먹었다. 이 은박지 라면이 그저 그런 걸 보면 아직 고생은 덜 했구나! 라면이랑 딸기우유 조합은 최악이구나! 자전거 자물쇠 안 잠그고 왔는데 괜찮을까! 생각하다 보니 금방 다 먹었다. 내려와 보니 자전거와 짐들은 무사했고 왠지 아무도 지나가지도 않은 거 같았다.


다시 바지를 벗고 자전거를 타고 여정을 시작했다. 길을 굽이굽이 꺾어 나무로 된 큰 다리를 건넜다. 다리는 밝아서 나무다리를 털렁이며 건너는 동안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 끝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무지막지한 경고 표지판들과 사람 몸통만 한 방망이모양 자전거 방지턱이었다. 경사가 심하고 낙석 우려가 있으니 절대 자전거를 타지 말고 도보로 이동하라는 경고가 여러 개, 비가 오면 범람 우려가 있으니 절대 통행하지 말라는 경고가 또 여러 개 붙어있었다. 주변에 가로등 같은 건 없었다. 물살소리가 거셌다. 다시 돌아가서 차라리 매점 아줌마 아저씨 모임에 끼고 싶었다. 이 근처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일단 한번 자전거를 끌고 몇 발짝 가보기로 했다. 길은 경고문들이 경고한 대로 경사가 정말 심했고 길은 엄청 젖어있었다. 내려가는 동안 노랗고 빨갛고 시꺼먼 경고문들이 생각나서 무섭긴 했지만 낙석과 범람의 기미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저 앞에 멀리 불빛이 보였다. 불빛을 따라 조급하지만 신중하게 걸었다.

'충주... 충주까지 갈 수 있을까?'


공포가 마음에 자리 잡은 후로는 계속 조급했다. 비탈 같은 길을 우당탕쿵탕 지나 밝은 곳을 찾아왔지만 앞길은 또 가로등 없이 침침했다. 그래도 커브를 도니 가로등불이 켜진 길이 나왔다. 캄캄해 보여도 계속 길을 가면 다시 밝은 길이 나오는 것이 존버의 미학일까?


돌길도 나오고 지도상으로 강속으로 들어가는 듯 해보이는 희한한 길도 나왔다. 한참 깜깜했다가 또 어딘가 커브를 돌면 불이 켜진 길이 나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원주였다.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에 도착하자마자 가로등이 없었다. 그러니까 광활한 도로에 같은 간격으로 총총총 불빛을 밝히던 가로등이 이제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래도 걷다보면 언젠간 밝은 길이 나올거라 생각하며 미미한 전조등 빛을 따라 달렸다. 자전거도로는 이제 끝나고 차도 옆 갓길처럼 난 길로 달려야 했다. 꽤나 긴 오르막의 중간에서 잠시 멈췄다. 인적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차도 한대 없었다. 달릴 때 들리는 바람소리가 없어지니 벌레소리밖에 안 들렸다. 지금 여기에서 야생동물이 튀어나오는 게 차나 사람이 지나가는 것보다 그럴듯했다. 존버의 미학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큰길에서 갓길마저 끝이 났다. 내비는 이제 옆으로 꺾어 산길로 들어가라고 했다. 풀숲에 뒤덮인 깜깜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를 꽉 잡고 내려간 끝에 자전거도로 입구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었다. 거기도 가로등은 없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지도상 강으로 나와있었다.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전조등을 비춰보니 상습 범람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또 몇 개 붙어있었다. 강옆에 아주 아주 가깝게 난 자전거도로였다. 미미한 전조등을 자전거에서 빼서 길에 비춰보았다. 앞은 아예 암흑이고 미미등이 비추는 전방 2m가 보일 뿐이었는데 그 시야마저도 너무 침침해서 내 앞의 이것이 강인지 길인지 분간이 잘 안 갔다. 강물인지 자전거 길인지 하는 껌껌한 그곳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벌레랑 강물 소리만 크게 들렸다. 뒤도 캄캄하고 앞도 캄캄했다. 돌아가려면 어디로 돌아갈지도 모르겠고 아까 한참을 내려온 탓에 돌아갈 길은 깜깜한 오르막이었다. 너무 지쳐서 그 오르막을 다시 오를 엄두가 안 났다. 물덩이가 된 것처럼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와 올라가지 못하고 고여버렸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 삼십 분 정도 이도저도 못하고 고민하는데 등산로나 자전거 도로에서 종종 보던 긴급 구조요청 팻말이 머릿속에 반짝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상황에도 요청해도 되는 걸까? 근데 112냐? 119냐? 한참 망설이다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조난당한 것 같습니다..."

조난당한 것도 무섭고 경찰에 전화한 것도 무섭고 또 송구스러워서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자전거 도로로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로등 불이 없어지고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온 뒤에 길이 끊겼어요.. 다시 올라갈 체력은 없고 앞에 길도 없어서 난처한 상황인데요…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경찰관은 나를 진정시키고 물었다.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배터리가 3퍼센트 남은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니 이곳은

"부론면이라고 하는데요..."


"네? 부론.... 부자 할 때 부, 드론 할 때 론자 해서 부. 론. 이요?"

"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강원도요? 여기 경기도 경찰인데, 강원도 경찰에 연결해서 도와드릴 수 있도록 조치해 드릴 테니까 휴대폰 잘 가지고 계시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바로 받으세요!"

경기도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경기도 경찰에게 전화가 간 것이었다.

“네..! 정말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너무 쪽팔리면서도 나를 도와줄 국가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감사가 솟아오르며 긴장이 풀렸다. 가드레일에 자전거를 기대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덜렁이며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서 사방이 검은 세상에 빨강파랑으로 된 불빛이 안개속에서 빌롱빌롱 반짝이며 내 쪽으로 왔다. 멀리서 불빛이 일렁일 때부터 일어나서 어정쩡하게 서서 경찰차 앞에 대가리를 박을 준비를 했다.


빌롱빌롱빌롱.... 도로를 따라 다가오다 내리막으로 미끄러져내려오는 경찰 승합차는 정말 멋있고 황송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저입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드렸다. 전조등이 있긴 한데 시야확보가 안 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경찰관님들이 아유 아니라고 괜찮다고 잘 연락했다고 말한 뒤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상의했다. 급한 듯 느긋한, 정겨운 강원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자전거를 분리해서 차에 실을 수 있는지, 체력이 남아있다면 경찰차로 천천히 빛을 비춰줄 테니 자전거를 타고 가겠는지 물었다.


내가 앞에서 따라가는 건지 뒤에서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너무 부끄러웠다. 어디까지 따라와 주실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토종주를 하고 있다고 하니 나의 도전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도와주시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정말 사려 깊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체력은 고사하고 어둠 속에서 경광등이 빌롱일 때부터 내 정신력마저도 빌롱이기 시작했던 터였다. 덥석 제 자전거 분리하기 쉬워요!! 하고 그 자리에서 앞바퀴를 잽싸게 분리했다. 내가 자전거를 분리하는 동안에 경찰관들이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분리가 쉽구나."

"여기서 충주까지 이동하려면은, 택시를 잡아 타는 방법이 있고"

"지금 택시가 없지, 그 사람들도 자고 다음 영업을 준비해야 하잖아"

"일단 전화를 한번 해보지."

"아니면은 이 동네 여관에서 오늘 밤을 보내고 동이 트면 충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지."

"아무래도 그게 가장 나을 거 같아"

두 경찰관이 서로 여러가지 해결바카라을 내놓은 뒤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정하면 알려줘요.”

아무래도 경찰관님들의 최선바카라을 따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내일은 정말로 동이 트면 일어나서 바로 충주로 향할 것이다. 우리는 경광등을 계속 켜둔 채로 부론면의 여관인 부론장에 도착했다. 경찰관님들이 내려서 여관 주인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뒷좌석에는 문고리가 없었다. 내리지 못하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우선 안도했고, 패기 넘치게 혼자 국토종주하겠다고 나와서 첫날부터 경찰에 신세 졌다는 데에 대해 민망했고, 충주 숙소와 이곳 숙소에 이중으로 돈을 지출하게 된 데에 (이 와중에도) 아깝기도 했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이 그립기도 했다.


반성의 시간이 지나니 경찰관님들이 차 문을 열어 주셨다. 자전거 프레임과 바퀴를 가지고 쏟아져 나오듯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여관 방은 만실이나 여관 주인의 집에 빈 방이 있으니 거기서 머물 수 있겠다며,

"방을 한번 보고 오세요."

경찰관님들이 마치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숙소를 찾아주실 것처럼 말했다.

오 아니에요. 여기서 잘게요.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꾸벅꾸벅 폴더 인사를 하고 여관주인의 집으로 향했다. 밖은 어두컴컴했는데 대문을 열자 알알이 작은 조명들이 마당 곳곳에 은은하게 반짝이고 간접조명이 잔디 사이의 작은 길을 따라 비추고 있었다. 와- 집이 너무 예뻐요... 하며 따라간 곳의 끝에 내가 머물 황토방이 있었다. 그곳도 숙소의 구색을 갖춘 별채였다.


주인이 방을 보여준 뒤 말했다.

“따뜻한 물은 안 나오지만 방에는 에어컨이 있어요. 수건도 있고. 자전거는 여기에 대고 푹 쉬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방을 내어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요. 방도 아늑하고 정말 좋아요. 더워서 찬물로 샤워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를 전하고 숙박비를 지불한 뒤 방에 들어와서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나 부론면이란 곳에서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경찰차를 타고 근처 여관에 왔다."


"뭐 부론?"


"응 부론... 부자 부 자에 드론 론 자를 쓰는 곳이야. 응.. 경찰차를 탔어... 얘들아 미안하고 잘 자고 내일 동트자마자 달려갈게."


씁쓸하지만 슬프진 않았다.

이런 내 자신이 그저 어이가 없었다.


"네 인생은 왜 그렇게 시트콤 같냐?"

묻는 친구의 말에 글쎄, 이게 시트콤 같니? 대답하면서도 어떻게 전개될지 보는 이도 겪는 이도 모르겠다는 점, 어떻게든 우당탕탕 흘러가도 유쾌한 결말을 맞는다는 점들이 시트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에어컨을 아주 시원하게 튼 황토방에서 한참을 통화하느라 냉장된 상태였는데 갑자기 찬물로 샤워랑 빨래를 하니 상쾌하면서도 머리통이 약간 금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빨래가 내일 새벽까지 말라야 할 텐데...


다음날이 걱정돼서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암흑 속에 강물과 가까운 자전거길에서 헤맬 때 느낀 공포를 다시 떠올리며 이 공포가 내일 또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결국 다섯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감고만 있다가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나는 아직 덜 마른 옷을 챙겨 입고 충주로 향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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