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너를 소리쳐!

2억 3천 전세사기 피해자로 데뷔하다

by김지연

톱니바퀴 생활이라고만 생각하던 회사생활이 신기하게도 막 재밌어지려던 차에 누군가에 의해 내 꿈을 다시 상기시키고 나니,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때쯤 회사에서는 경력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부사수들이 생겼다. 내가 대리님을 의지했던 것처럼, 알에서 깨자마자 본 대상을 엄마인 줄 알고 따르는 아기오리가 된 것 마냥 나를 따랐다. 백지 같은 신입사원이 매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메모지와 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놓치지 않으려고 받아 적고 다음에 그 업무를 제법 해내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내 직급에서는 처음으로 베트남 출장도 다녀왔고 이직한 차장님이 추천해 준 덕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퇴사해야 했다.

사실 꿈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만 하면 좀 섭섭하고, 2년 넘게 속 썩이던 전세사기 건을 먼저 해결해야 했기 때문도 있었다.


- 사원님 기분 좋아 보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임차권등기명령 결정 정본이 도착했거든요.”

- 네?


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집주인 때문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만기까지였던 내 전세 대출을 연장해야 했고 준비해야 할 서류는 산더미 같았다. 은행은 내 출근시간에 시작해서 퇴근시간 전에 문을 닫았다. 마음 편히 휴가 한 번 간 적 없는데 연차는 점점 줄었다.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서 전세대출 연장하러 은행에 갔는데 이상한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전세 계약 갱신 의향서?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보증 해지 신청서? 이걸 왜 써요? 보증조건 변경 신청서? 저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냥 의례상 하는 거니까 그만 물어보시고 체크한 곳에 서명만 하세요."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어쩔 수 없이 찜찜한 의향서, 신청서, 계약서 같은 것들에 서명하고 복귀해서 일하는데 너무 슬프고 불안해서 가슴이 쓰라렸다.


할 일은 쌓여있는데 슬프다고 울 수도 없고 명치가 꽉 막히고 가슴이 아려서 미칠 거 같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엘베를 기다리는 척 가슴을 쾅쾅 치다 문득 이것은 그냥 슬픈 수준을 지나쳤다. 이것은 통증이다! 싶어 서랍에서 타이레놀을 두 알 까먹었다.


설마 농협직원이 그 서류를 주택보증공사에 넘겨서 내 보험을 해지해버리진 않겠지.


머릿속에서 2억 3천만 원이 오락가락하고 있는데 샘플실 언니가 샘플비를 만 팔천 원밖에 안주냐고 툴툴댔다. 언니야 저는 2억 3천만 원이 날아갈 판이에요.


그때쯤 경찰이 나의 임대인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나에겐 직접적으로 연락이 안 왔지만 피해자 모임 톡방의 다른 사람들이 경찰에게 들은 바 집주인은 219채의 매물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다녔으며, 인천이 본진이고 서울에도 간간히 매물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기의 주축은 집주인이 아니라 따로 있고 집주인은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이었다 했다. 뭐랄까, 대포폰, 대포통장처럼… 당신은, 대포집주인?


뭐, 사실 어느 정도 짐작했던 바다. 이것이 임대인 혼자만의 사기행각이 아니라 훨씬 큰 조직이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약할 때 서로 신분증 까놓고 똑바로 마주 봤던 집주인아저씨. 내가 눈 마주치고 인사해도, 스몰토크를 꺼내봐도 대답 없던 아저씨.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야 건물 몇 채 거느리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었지.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내 집주인 대신에 임차인들에게 갚아준 빚이 30억 가량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악성임대인으로 분류되어 담당 지사가 배정되어 있었다.


인천이 본진이기 때문에 그의 담당일진도 역시 인천 서부지사였다. 그 사실을 건너 듣고 허그 방문 전 콜센터에 문의해 보니 서울에 살고 있던 나에게 인천지사로 가라고 했다. 과반이 인천에 사는 피해자 모임 사람들도 깔끔하게 인천 와서 접수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청구 당일 지하철 역 들어가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서울에서 전세사기 당했는데 내가 집주인이 있는 인천까지 가야 한다고? 그렇게 친절한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보증이행 청구를 하겠다고 연차를 내고 밖에 나오니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데 인천까지 가느라 두 시간 동안 전철 속에서 시간 버리고 기분 잡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내 주소지 관할인 서울북부관리센터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 서류 검토한 다음에 이관하면 될 거 아닌가. 어차피 인천으로 가서 서류 제출해도 접수받은 사람이 곧바로 담당해서 이행절차 들어갈 것도 아닐 텐데. 이관되는 하루 이틀 정도 지연된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인천에 건수가 많아서 밀려있는 탓에 두세 달 후에나 서류 검토 시작하고 그로부터 한 달 후에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필요한 서류들을 모아봤다.

신분증, 등본, 인감도장 같은 건 기본이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로만 구성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턱 막히는 서류들도 너무 많았다.


임차권등기명령결정문, 내용증명 우편서류와 배달증명서, 금융거래 확인서, 보증채무이행청구서, 대위변제 증서, 주택임차권등기명령취하서….


그런 것들을 다 구비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은행 가서 서류 떼고, 주민센터 가서 서류 떼고, 인터넷 등기소에서 서류 출력, 정부24에서 서류 출력, 대출실행했던 지점에다 팩스로 서류 수령…


또 그 서류를 만들기 전에는 요건을 갖추기 위해 우체국에서 집주인 주소로 내용증명도 몇 차례 보내고 법원에서 임차권 등기신청하고 4주 기다렸다가 또 보정서류 제출, 은행 가서 특약보증 연장 및 대출연장하고…


이곳저곳 왔다 갔다 쌈바를 추며 갖춘 서류 뭉치를 모아보니 너무 많아서 그것만 덮고 자도 따뜻할 것 같았다.


내가 이 짓거리를 왜 해야 하는데? 싶다가도 2억 3천이 걸려있는 일이라 착실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하라는 대로 하기를 몇 번 반복해 왔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걸까?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도착하니 대기자는 나뿐이었고 두어 명 정도가 이미 상담을 상담받고 있었다. 준비한 서류 한무데기를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구비한 서류를 내밀었다.


“이행청구하러 왔습니다.”


타성에 젖은 담당자도 별다른 대꾸 없이 서류를 검토했다. 탈탈 털린 심정으로 멍 때리고 있다 보니 다른 분들의 사연이 들려왔다. 세상엔 참 기구한 사연이 많았다.


한 분은 할아버지였는데 집이 경매로 넘어가서 골치 아픈 케이스로 보였다. 안 좋은 사정으로 어려운 절차 밟고 있는데 젊은 직원이 너무 건성으로 응대하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는지


“어디서 그렇게 배웠냐!”

하며 고함쳤다. 근데 또 직원은 거기다 대고


“알아서 어디선가 배웠으니 어르신은 상관 마시죠!”

하며 서로 언성이 높아져 있었는데,


괜히 전세대출 연장 때 질문하지 말고 표시한 곳에 사인이나 하라며 잘못된 서류를 계속 들이밀던 담당직원 때문에 가슴 치던 농협방문 때가 생각나서 괜히 할아버지께 흠뻑 감정이 이입됐다.


다른 하나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계약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장의사 없음을 밝히려는데 연락이 닿지 않고 내용증명도 계속해서 반송되어 집주인의 등본을 떼어보니 사망한 사례로 방문했다고 했다.

허그 직원도 연신 한숨을 푹푹 쉬고 갑갑해했다.


임대인 사망 시 상속자들에게 권한이 넘어가서 싸움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전세사기라는 걸 알고나서부터 집주인이 내 보증금 내놓기 전까지 죽지만은 않길 바라왔기에 참 골치 아프겠다 싶어 괜히 당사자 젊은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그는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가 있어 보였다.


나도 그렇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사실 속은 타들어가는데.


그렇게 적막 속에 여러 사람들 이야기 들으며 몰래 공감하던 사이 별 거 없이 접수가 끝났다.

“서류에 큰 문제는 없으니 이대로 인천센터로 이관하겠습니다. 담당자가 배정되면 접수 문자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이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그런 안내라면 저도 하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속마음을 감추고 뒤돌아 나오는데 명쾌한 접수증까지는 기대하진 않았지만 뭐랄까… 허무했다.


제출하고 남은 여분 서류 뭉치가 아직도 1키로는 될 것 같았다. 개인정보도 이런 세세한 개인정보는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죽이라도 끓여 먹어야 할 거 같았다.


그나마 연차라고 나름 기분은 좋아서 접수를 마치고 햇살을 받으며 테라로사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우울하다고 전화한 친구도 여기로 오라 꼬셔서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들어주고 얼마간 수다를 떨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갔다.


앞으로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무사히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못 돌려받으면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20년은 걸리는 그 돈을 어떻게 갚을까?

그때는 커다란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길을 걷도록 해야겠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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