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발을 묶었다

여행에서의 실패담 5편.

by김연큰

서울은 광화문이나 시청에 가면 시위 현장을 곧잘 볼 수 있습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흔하지 않던 일이었죠. 저는 해외여행에서 시위 현장을 처음 보았어요. 201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본 시위가 처음이었는데요, 언어는 잘 몰랐지만 대충 베네수엘라와 관련된 시위라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느낀 감정은 생경함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의 시위는 경찰이 진압하러 나서고 시민들은 그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시위 현장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는 인상이 강했는데요, 빈에서는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응해 주고 응원해 주는 모습이 신기하고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시위는 제 여행에 방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색다른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끝났죠. 하지만 이후 여행에서 시위 때문에 여행에 차질이 생긴 경우가 두 번 있어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칠레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


2019년의 저는 다음 해인 2020년 1~2월에 아르헨티나 및 칠레를 향하는 여행 계획을 세운 상태였습니다. 여행이 가까워진 2019년 10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합니다. 지하철 요금 상승 발표는 청년들의 반발을 샀고, 이를 계기로 각종 시위가 벌어집니다. 쌓여있던 양극화 및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거죠. 특히 10월 25일에는 (당시 산티아고 인구가 790만 명이었는데) 무려 12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평화 시위로 시작했음에도 정부에서는 군대를 동원한 강경진압을 시도했고, 군경과 시민들이 충돌하며 많은 사상자가 나고 맙니다.


평소 같으면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했겠지만 여행을 앞둔 제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산티아고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한 상태였기에 산티아고를 안 갈 수는 없었어요. 시위 진행 과정을 지켜보다가 저는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본래 산티아고에서 3박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날에 가서 1박을 하기로 하고, 대신 산티아고 근교의 휴양 도시로 유명하다는 비냐 델 마르에 가서 귀국 전 쉬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여담: 비냐 델 마르는 옛날 부산 해운대를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여행 시기에는 다행히 시위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시위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호텔 체크인할 때는 아예 프런트 직원이 '여기는 지금 볼 게 아무것도 없다. 위험하니 밖에 나갈 때 조심해라.'라고 말해줄 정도였죠.

칠레 산티아고 이곳 저곳에 남은 시위의 흔적

호텔 직원 말과 달리 볼 게 많았습니다. 다른 의미로 말이죠. 칠레는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에 여름이었고 날씨도 참 좋았지만 그 쾌청하고 맑은 날씨가 오히려 도시의 상흔을 더 잘 보이게 했습니다. 산티아고 번화가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문을 닫은 지 오래인 듯했고, 다리에는 불 탄 흔적이 있었어요. 산티아고 이곳저곳에 남은 흉터는 얼마나 이 사람들이 절박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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