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조금 덜어내는 마음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면 지나온 시간들이 묘하게 선명해진다. 눈앞의 일들을 버텨내느라 정신없이 내달렸던 날들, 뜨겁고 소란했던 시간의 한복판에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마음의 조각들이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동안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마음이 계절의 온도가 낮아지고 나서야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어떤 감정들은 그 순간에 다 풀어내지 못한 채 마음 밑바닥에 가만히 가라앉혀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도무지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버거운 열기도, 끝내 풀리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의 매듭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씩 힘을 잃는다. 마치 한낮의 뜨거운 공기를 식혀주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그렇게 지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감정도 결국 계절처럼 흘러가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뜨거움이 식어간 자리에 찾아온 서늘함은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생기는 빈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복잡했던 내면이 비로소 제 흐름을 찾아가는 고요한 공간에 가깝다. 빛이 찬란할 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사물의 그림자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길고 선명하게 드리우듯, 계절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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