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은 정말 닳는 걸까?
얼마 전 주사로 무릎 연골을 재생하려는 치료가 사람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만든 연골세포를 작은 구형 집합체로 배양한 뒤 무릎 관절 안에 주사하는 치료였다. 국내에서 진행된 초기 연구에서는 세 명의 환자를 1년 동안 관찰한 결과가 공개되었다. 자기 공명영상에서 연골 결손 부위가 줄고 연골 두께가 회복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아직 세 명에게서 얻은 초기 결과일 뿐이다.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과, 새로 형성된 조직이 오랫동안 제 기능을 유지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병원에 가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치료가 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기사를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관절은 태어날 때 받은 것을 평생 아껴 써야 하는 소모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한번 닳은 연골은 되돌리기 어렵고, 마지막에는 인공관절로 바꾸는 것만이 남는다는 설명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미래에는 관절을 바라보는 방식이 지금과 달라질지도 모른다. 손상된 연골을 세포와 생체재료로 다시 채우고, 망가진 조직이 스스로 회복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치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주사 한 번으로 무릎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연골을 되살리는 기술이 생기더라도 그 무릎으로 걷고, 앉고, 계단을 오르는 일까지 주사가 대신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치료가 손상된 구조를 회복시킬 수는 있어도 그 무릎을 다시 믿고 사용하는 일은 몸이 배워야 한다.
센터에서 무릎이 아픈 사람들을 오랫동안 만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무릎을 다치면 관절보다 먼저 삶의 반경이 줄어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장소에 계단이 많나요?”
“얼마나 걸어야 해요?”
“바닥에 앉아야 하는 자리면 저는 못 가요.”
무릎이 아프기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조건들이 외출을 결정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의자가 낮지는 않은지, 화장실에 앉았다 혼자 일어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버스에 올라타는 짧은 순간에도 어느 다리를 먼저 디뎌야 할지 계산한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가까운 마트도 멀어진다.
오래 걸어야 하는 약속은 미루고,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지보다 숙소와 주차장 사이의 거리를 먼저 찾아본다. 친구가 보고 싶어도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계단이 많으면 다음으로 미룬다.
무릎은 단순히 다리를 굽히고 펴는 관절이 아니다. 사람을 다음 장소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의 곁으로 이동시키며,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보행의 불편은 생각보다 큰 심리적 압박이 된다.
아픈 것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더 나빠질까 봐, 어느 날 혼자 걷지 못하게 될까 봐, 가족에게 의지해야 할까 봐 두려워한다. 특히 병원에서 “연골이 닳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마치 앞으로 걸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진 것처럼 움직임을 아끼기 시작한다.
“선생님, 계속 쓰면 더 닳는 것 아닌가요?”
“이제 스쾃는 하면 안 되죠?”
“계단은 되도록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는 동작 하나에 대한 염려보다 훨씬 큰 걱정이 들어 있다.
내 무릎은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면 남아 있는 것마저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 그러므로 앞으로의 삶은 예전보다 조금씩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다.
무릎 안에는 넙다리뼈와 정강뼈, 무릎뼈가 만난다. 뼈의 끝은 관절연골로 덮여 있고, 뼈와 뼈 사이에는 반달연골이 놓여 힘을 분산한다. 관절 가운데에서는 전방십자인대와 후방십자인대가 서로 교차하며 정강뼈가 앞뒤로 지나치게 움직이지 않도록 제어한다.
무릎은 단순한 문짝의 경첩처럼 굽혔다 펴지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다.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안 뼈 사이에서는 미끄러짐과 구르기, 작은 회전이 함께 일어난다. 걷고 방향을 바꾸고 계단을 오를 때에는 근육과 인대, 연골과 신경계가 계속 힘을 나누어야 한다.
그만큼 같은 위치가 아파도 그 원인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전방십자인대는 정강뼈가 넙다리뼈에 비해 앞으로 과도하게 이동하거나 회전하는 것을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운동 중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착지하는 과정에서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수술과 재활을 마쳐 평지를 잘 걷는 사람도 다시 뛰거나 방향을 전환하려 하면 몸을 멈출 때가 있다.
무릎이 돌아가던 그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움직일 수 있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한 발을 내딛는 일이 재손상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다친 다리에 체중을 싣는 시간을 줄이고, 방향 전환을 피하며, 운동에 복귀할 시기를 계속 미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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