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가장 아래에서 세상을 딛는 법
필라테스 수업에서 가끔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움직여보게 한다.
“엄지발가락만 들어볼게요.”
그 말을 들은 회원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본다.
엄지를 들려고 했는데 나머지 발가락이 모두 따라 올라온다.
엄지를 바닥에 두고 다른 발가락만 들어보라고 하면 이번에는 발가락 전체가 꿈쩍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발가락을 벌리려다 발바닥에 쥐가 나고, 어떤 사람은 엄지발가락 아래가 바닥에 닿지 않는다.
한쪽에만 유난히 두꺼운 굳은살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한참 자신의 발과 씨름하던 회원이 묻는다.
“제 발가락이 원래 이렇게 안 움직였나요?”
아마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발을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다. 얼굴의 작은 변화는 거울을 볼 때마다 알아차리고,
허리나 무릎은 조금만 불편해도 신경을 쓴다.
그러나 발은 대개 양말과 신발 안에 감춰져 있다.
몸의 가장 아래에서 매일 무게를 받아주지만 아프기 전까지는 존재를 잊기 쉽다.
발은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늦게 발견되는 부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발을 몸 아래에 놓인 평평한 받침대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한쪽 발은 스물여섯 개의 뼈와 여러 관절, 인대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구조들이 서로 조금씩 움직이며 바닥의 단단함과 기울기에 맞춰 발의 모양을 바꾼다.
걷다가 단단한 바닥을 만나면 충격을 받아들이고, 모래나 잔디처럼 고르지 않은 곳에서는 지면의 변화에 적응한다. 몸이 발 위를 지나 앞으로 나아갈 때는 부드럽게 움직이다가, 다음 걸음을 내디딜 때가 되면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다시 단단해진다.
발바닥은 바닥에 닿아 있는 면적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지면이 평평한지, 어느 쪽으로 체중이 기울었는지, 발이 미끄러지는지와 같은 감각이 신경계를 통해 전달된다. 눈을 감으면 균형 잡기가 갑자기 어려워지는 것처럼,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감각도 우리가 서 있고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정보 중 하나다.
발은 몸을 떠받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세상이 어떤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가장 먼저 몸에 알려주는 곳이다.
발의 안쪽을 보면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곡선이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아치라고 부른다.
아치를 설명할 때 흔히 다리나 돔에 비유한다. 그래서 아치가 높고 단단하게 유지될수록 좋은 발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발이 안쪽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아치가 무너졌다고 말하고, 평발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 통증이 생길 것처럼 걱정한다.
그러나 발의 아치는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다.
체중을 받을 때는 어느 정도 낮아지고 길어지며 충격을 받아들인다. 몸이 앞으로 지나가고 뒤꿈치가 들릴 때는 다시 높아지고 단단해져 힘을 앞쪽으로 전달한다. 한 걸음 안에서도 발은 부드러워졌다가 단단해진다.
발이 안쪽으로 움직이는 현상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필요한 만큼 움직이는 것은 지면에 적응하는 과정의 일부다. 평발이라고 해서 모두 통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건강한 발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진처럼 멈춰 있는 발의 모양만이 아니다.
체중을 받을 때 필요한 만큼 움직일 수 있는지, 움직인 뒤에는 다시 힘을 전달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통증 없이 몸을 지지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너무 단단해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발도 불편할 수 있고, 체중을 받을 때는 부드러워지지만 다시 단단해지지 못하는 발도 다른 곳에 더 많은 일을 맡길 수 있다.
좋은 발은 아치가 한 번도 낮아지지 않는 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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