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수: 야, 죽이지 않냐? 서울에서는 이거 비싸서 못 먹어.
인구: 삭힌 거냐?
응수: 야, 홍어를 생으로 먹는 놈도 있냐? 당연히 삭힌 거지.
인구: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난 못 먹겠다.
응수: 야 이 사람아, 홍어는 이 톡 쏘는 맛으로 먹는 거야. 수리남 애들은 이 맛있는 걸 다 버린다니까?
몇년 전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수리남’의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홍어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수리남공화국에서는 그냥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사업을 해 보자는 친구 응수(현봉식)의 제안을 받고 인구(하정우)는 먼 낯선 땅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현지 마약왕과 얽히게 되면서 홍어 대신 마약을 팔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국정원의 수사를 돕는다는 내용이다. 드라마 중간중간 응수와 인구가 홍어를 맛깔나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수리남공화국이 마약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한국인의 홍어 사랑이 알려지기도 했다. 홍어는 가오릿과에 속하는 생선으로 한국에서는 삭힌 음식의 대명사다. 선홍색의 잘 삭힌 홍어 한 점을 고춧가루 섞인 소금에 찍어 먹는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거기에 강한 암모니아의 자극을 걸쭉한 막걸리로 감싸 주면 그 조합은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을 선사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옛날부터 홍어를 먹었다. 홍어 날개 부분을 구이로 먹거나 말린 홍어를 스튜로 만들거나 쪄서 사용했다. 하지만 삭힌 홍어를 즐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 정도다. 어업이 주요 생계 수단이었던 북유럽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옛날부터 삭힌 홍어를 버터 구이로 먹었지만, 유럽의 음식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점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는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전에 먹는 풍습만 남았다. “따뜻하면 굴비 생각, 찬바람 나면 홍애 생각”이라는 말이 있는 걸 봐선 동서를 막론하고 홍어는 겨울철이 제맛인가 보다.
홍어 하면 흑산도, 흑산도 하면 홍어가 연상된다. 영산포나 목포 등 홍어와 관련된 지역은 많지만, 홍어잡이와 역사성을 고려하면 흑산도를 빼놓을 수 없다. 『자산어보』의 정약전의 유배지가 흑산도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홍어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흑산 홍어잡이 어업’은 2021년에 제11호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전북 군산시에 주도권을 빼앗길 위기에 있다. 2021년 전국 홍어 생산량의 45%를 군산시에서 담당했지만, 흑산도는 14%에 그쳤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흑산도 홍어’가 아니라 ‘군산 홍어’라는 말이 일반화될 듯하다.
이런 생산지의 변화 원인은 ‘총 허용 어획량 제도’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홍어는 한류성 어종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 바다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그에 따라 홍어들이 북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 어디 홍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덧없는 것이지 않나 싶다. 얼마 전부터 그 많던 칠레산 홍어가 줄고 아르헨티나, 미국, 우루과이 등의 국가에서 수입이 늘어난 것도 칠레 앞바다의 홍어 개체수가 줄어들어서란다. 환경 파괴와 남획으로 홍어에 붙는 지역 수식어가 매번 바뀌는 것이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새들의 실종을 언급한 것과 같이 홍어도 멸종을 맞이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아메리카 인디언 수퀴미시족의 시애틀 추장은 미국 제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켜 나간다면 당신은 어느 날 밤 당신 자신의 오물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들소들의 살육과 야생마를 잡아 길들여 자연을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냄새로 더럽히는 것에 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어쩌면 홍어 한 점과 탁주 한 모금의 행복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홍어 삼합을 입안 한가득 넣으면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난다. 적당히 삭은 홍어와 부드럽게 삶아진 돼지고기 그리고 잘 익은 김치가 조화를 이룬다. 서로 어긋남이나 부딪침 없이 입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그런데 홍어 삼합의 조화로움과는 다르게 홍어에게는 불편한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홍어 없는 잔치는 잔치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라도 지역에서 홍어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홍어는 전라도나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 낳은 결과다. 음식은 조화로운데 왜 사람들은 부조화를 이루며 사나 싶다. 홍어는 오랜 세월 수온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근거지를 옮겨왔다. 그건 어떻게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홍어의 방식이다. 홍어는 자신이 노닐고 있는 바다가 전라도든 경상도든 충청도든 관여치 않는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만 지역이라는 무형의 선에 집착한다. 선을 긋고 철조망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건 인간뿐이다. 자연이 지역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자연의 조화에는 어긋남이 없다. 인간만이 자신들의 잣대로 차별하고 자신들의 기준대로 증오하고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상대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도 우리는 하나다. 한 나라의 국민이고 하나의 민족이다. 또 인간이라는 같은 종이고 모두가 지구라는 행성의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다. 구분도 차별도 무의미하다
조화는 아름답다. 조화로운 화음은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고 예술적 조화는 인간의 미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사람들 사이의 조화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인간이 슬롯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상생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문순태 작가는 홍어 삼합을 “가슴 후비는 어울림의 한판이자/입안에 꽉 찬, 이 야만적인 충만감/ 머릿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 떠올랐다.”라고 노래했다. ‘가슴을 후비는 어울림의 한판이라니’ 이보다 더 홍어 삼합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정치, 경제, 교육 등 우리 슬롯의 많은 부분에서 양극화 현상이 더 깊어지고 있다. 증오와 혐오가 난무하고 차별과 배척이 일상화되어 가는 모습이 두렵고 슬프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밀쳐 내고 다른 지역에 산다고 배척하고 다른 모습이라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 인디언 추장의 경고처럼 우리는 이제 조화의 아름다움을 찾을 때다. 홍탁 삼합의 어울림처럼 말이다. 퇴근길 묵은지에 돼지고기와 함께 찰진 홍어 한 점을 쌓아 입안으로 쑤셔 넣는다. 그리고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신다. 입안에서 환상적인 맛의 폭죽이 터진다. 우리 삶에도 홍어의 찐한 어우러짐이 가득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