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순조 16년) 7월, 북한산 비봉.
뙤약볕이 내리쬐는 암벽을 오르던 김경연이 참다못해 험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보게, 완당! 숨넘어가겠네. 좀 쉬었다 가세나!”
앞장서서 가던 서른한 살의 젊은 선비, 김정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등에는 묵직한 물통과 먹이 가득 담긴 괴나리봇짐이 매여 있었다.
“탁본을 뜰 물과 먹은 내가 지고, 자네는 겨우 얇은 한지 몇 장 들고서 징징대는 것인가? 어서 가세!”
“아니, 내 말은 이게 괜한 수고 아니냔 말일세! 비봉 정상에 있는 그 비석은 고려 말 무학 대사가 세운 '무학대사비'라고 세상에 이미 다 알려져 있지 않나?”
김정희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반짝였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전설 따위를 맹신하자는 건가? 내가 신라와 고구려의 옛 영토 기록을 훑어보았으나, 그 비석이 무학의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네. 금석학의 대 발견을 이루면 자네 이름도 역사에 굵직하게 남겨줄 테니, 말꼬리 잡지 말고 어서 서두르게!”
마침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비봉 정상.
거친 바람 속에 홀로 서 있는 비석은 세월의 찌꺼기와 검붉은 이끼, 흙먼지에 뒤덮여 죽은 돌덩이처럼 보였다.
“탁본의 성패는 수분과 먹량의 미세한 조절에 달렸네. 종이에 물기가 넘치면 먹이 번져 자형이 뭉개지고, 물기가 적으면 종이가 튀어 올라 글자가 깨지지.”
김정희는 물을 뿌려 비석 표면을 깨끗이 씻어낸 뒤, 타작솔로 한지를 밀착시켰다. 그리고 먹을 적신 솜 망치(탁포)를 단단히 쥐었다.
톡. 톡. 톡.
고요한 산 정상에 청량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습기를 머금은 한지 위로, 천년 동안 묵혀 있던 획들이 검은 먹빛을 뚫고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완당, 저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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