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로맨스 표지 진수지 @kalimakeanother
"뭐 저런 끔찍한 일이 다 있어... 보지 마 수아야." 황민현도 전광판 속 뉴스 내용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내 얼굴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손바닥으로 내 두 눈을 가리는듯한 시늉을 했다.
"얼마나 힘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자살을 인간만의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 외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들이 있다. 전에 우연히 본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아기 백조는 어미 백조의 죽음을 슬퍼했다. 아기 백조는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고 그대로 축 늘어져 힘없이 두둥실 떠올랐다.
동물계에는 스트랜딩(Strand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래, 물개, 그리고 바다표범 같은 해양 동물들은 때때로 육지의 해안가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고래는 물 밖에 나오면 호흡이 곤란해져서 질식하거나 내장이 짓눌려 죽고 만다. 동물들이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동물도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고래도 인간도 결국 우울함을 느낄 만큼 영리한 탓일까.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슬롯적 원인' 때문인 경우가 많다. 슬롯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한 맹비난. 혹은 슬롯의 무관심으로 인한 고독.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평가되고 동시에 외면당하며 고립된다.
그렇게.... 영혼이 점점 경직되어 간다.
'기다림 코치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숨어야 하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난 목숨을 끊는 건 나쁘다고 생각해."
나의 생각의 흐름을 끊고서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바라보는 황민현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혹시나 내가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가 걱정하는 눈치다.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겠지. 그래도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와. 내가 그랬어. 꾹 참고 견디니까 좋은 순간이 있더라고."
속상하고 창피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세상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외면하는 것 같다고 해서 모두가 죽을 결심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에도 아직 자살은 없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창피함과 속상함을 견뎌내며, 살기 힘들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다림 코치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느끼는 고통과 외로움은 어느 정도일까?
나보다도 더 단단한 멘털이었던 그가. 히어로를 자초했던 그가. 기다림 코치가. 설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 따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그런데도, 왜..... 전광판을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걸까?
그로부터 아무 대답이 없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어서 빨리... 기다림 코치를.... 찾아내야겠어.'
"면접 보기 전에 시간이 좀 있으니까, 나랑 커피 한 잔.... 괜찮아 수아야? 부담 주려는 건 아니고, 면접에 꼭 합격할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어서. 물론 수아는 내 도움 없이도 잘하겠지만...?"
"저는 너무 감사하죠."
"아니야, 아니야. 나야말로 고마워. 이렇게... 나타나줘서."
"네?"
"아.... 아니 그게... 다른 의미는 아니고. 우리가 새 직원을 엄청 뽑고 싶어 했거든.... 지금까지 면접을 꽤 많이 봤는데 다 매니저님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서 채용 안 하고 오랫동안 버텨왔어. 아마 수아를 만나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나 봐."
나를 향한 칭찬의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를 그만둔 지 오래됐나...? 얼마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계속 다니는 느낌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코엑스 입구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근처 회사의 회사원이거나, 반대로 일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삼성역 코엑스에 있는 카페답게 외국인 손님도 제법 많았다.
"뭐 마실 거야?"
황민현은 나에게 자리를 안내한 후 무얼 마실 거냐고 묻는다. 자신이 대신 주문을 해 올 모양이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내 지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민현은
"내가 사게 해 줘.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고... 내가 부매니저인데..."라고 말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지갑을 상습적으로 안 가져오던 황제훈이 겹쳐 보이며 떠오른다.
'그게... 이상한 행동인데.... 그걸 자꾸 겪다 보니까...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게 되네..... 연상이라서인지... 아니면 베풀 줄 아는 사람인 건지.... 둘 다인가? 뭐 커피 한 잔 정도는.....'
"혹시 아침 먹고 왔어 수아야? 아침 안 먹고 커피부터 마시면 속 버려. 괜찮겠어?? 나 신경 쓰는 거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아메리카노 말고... 과일 주스나 다른 건 어때? 빵도 음료도 그냥 눈치 보지 말고 다 시켜."
"그럼 모든 메뉴를 다 주문합시다!"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다정한 미소로 방긋방긋 받아주며
"그럴까? 내가 서빙하는데... 좀 오래 걸려도 괜찮겠어 수아야...?"
"네. 전 괜찮아요."
"그럼 진동벨 다섯 개만 받아올게..! 기다려!"
"아녜요, 아녜요. 그냥 음.... 에이드로 할게요. 저기 메뉴판에 있는 신상 에이드요."
"그래? 알겠어."
뭐랄까... 정말 자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알던 황민현 오빠는... 더 도도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황민현 오빠도.... 이렇게 멀쩡한 척하고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한 사람인 건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평범한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긴, 전에 말없이 사라진 전적이 있으니... 온전히 믿을 수는 없겠어. 좀 더 지켜봐야지....'
한겨울에 얼음을 동동 띄운 음료수를 시킨다는 게 별나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겨울 신메뉴로 에이드를 출시할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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