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의 거울

by구기리

최근 새로운 만남이 여럿 있었다. 정희는 달력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세어 보았다. 두 달 동안 여덟 번의 소개팅, 친구 소개와 결혼정보회사와 온라인 게임 선배의 중매까지 경로는 제각각이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번 사람은 어땠어?"

친구 하나가 물었다. 카페 테이블 위에는 하나가 주문한 딸기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정희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글쎄."

"글쎄가 뭐야. 괜찮았어, 아니었어?"

"괜찮았어. 온라인 게임도 안정적이고, 키도 크고."

"그럼?"

"그런데 내가 거절했어."

하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정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지난 여덟 번의 만남에서 상대가 정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사원, 공무원, 자영업자 모두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고 문자도 전화도 왔지만, 정희는 매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댈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말이 너무 많았고, 두 번째는 웃을 때 표정이 부담스러웠고, 세 번째는 취미가 없어 보였고, 네 번째는 옷차림이 촌스러웠고, 다섯 번째는 목소리가 작았고, 여섯 번째는 눈빛에 생기가 없었고, 일곱 번째는 계산할 때 망설였다. 여덟 번째는 사실 뚜렷한 이유조차 없었다. 그냥 마음이 가지 않았다.

"너 진짜 눈이 높다."

하나의 말에 정희는 웃었다.

"나도 알아."

엄마도 같은 말을 했다. 네가 너무 까다롭다고. 회사 후배는 언니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했고, 결혼정보회사 상담사마저 조심스럽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만나 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정희는 대답했다. 나도 알아, 내 기준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날 밤 정희는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일어나 바카라상 앞에 앉았고, 노트를 펼쳐 한 줄을 썼다.


*나는 어떤 사람을 원하는가.*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밝은 사람이었다. 웃음이 많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두 번째는 운동하는 사람, 특히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었고, 세 번째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 줄을 적어 놓고 한참 들여다보니 그 목록은 어디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 연애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첫 연애는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과 선배와 했는데, 그는 우울증이 있었고 자주 침울해져 정희에게 기댔다. 처음에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점점 지쳐 갔고, 그의 어두운 감정이 자신을 삼켜 버릴 것 같아 일 년을 버티지 못했다. 두 번째는 온라인 게임 동료였는데, 주말이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고 약속 시간에 늦으면서 "다음엔 꼭 지킬게"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세 번째는 기분이 좋을 땐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굴다가 나쁠 땐 정희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이어서, 정희는 늘 그의 눈치를 보며 지냈다. 수많은 관계에서 만들어진 결과물, 이상형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새벽 두 시, 정희는 그 세 줄을 다시 읽다가 거꾸로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밝은 사람인가. 회사에서는 웃고 농담도 했지만 그것은 가면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가면을 벗고 소파에 주저앉아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았다. 불을 켜도 차갑기만 한 혼자 사는 집의 어둠이 사실은 밝은 사람을 필요로 하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인가. 신발장에는 작년에 산 운동화가 한 번도 신기지 않은 채 먼지를 쌓고 있었고, 헬스장은 석 달, 요가는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으며, 무엇을 시작해도 작심삼일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좋았던 것은 자신에게 없는 끈기를 가진 사람 곁이라면 자신도 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안정된 사람인가. 지하철에서 누가 부딪치기만 해도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고 상사의 무심한 한마디에 상처받고는 그걸 혼자 삭였으며, 문제가 생기면 부딪치기 싫어 늘 도망쳤기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희는 펜을 들고, 떨리는 손으로 한 줄을 더 썼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려 하고 있다.*

한 줄을 쓰고 정희는 소리 없이 울었다. 자신이 찾던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닿았다.


월요일 아침, 정희는 거울 앞에서 밝은 색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 거울 속 얼굴은 괜찮아 보였다. 밝고 건강하고 자신 있어 보였지만, 그것이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정희는 알았다. 회사에서는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했고 동료들은 오늘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했으며, 정희는 날씨가 좋아서요, 하고 웃었다.

점심시간에 후배 소영이 물었다.

"언니, 소개팅 어떻게 됐어요?"

"안 맞는 것 같아서 거절했어."

"에이, 언니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 조건 좋다고 했잖아요."

"조건이 다가 아니잖아."

"그럼 언니는 어떤 사람을 원하는데요?"

정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대답했다.

"나보다 나은 사람."

소영은 웃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언니도 충분히 좋은데."

정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영은 몰랐다. 정희가 얼마나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느끼는지, 그리고 그 부족함이 곧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모양이라는 것을.

퇴근 후 정희는 공원을 걸었다.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산바카라하는 사람이 모두 건강해 보였다. 정희는 벤치에 앉아 언제부터 이렇게 어두워졌을까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친구도 웃음도 많았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성적과 진로가 짓눌렀고, 대학에서는 취업 걱정이, 졸업 후에는 회사와 인간관계가 이어졌으며, 그러는 사이 진짜 감정을 숨기는 일이 살아남는 방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안정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와야 한다는 것을 정희는 그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정희는 먼지 쌓인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나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몸은 무거웠고 숨이 찼지만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았다.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하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소개 들어왔는데, 어때?"

"나 당분간 소개팅 안 할래."

"왜? 포기하는 거야?"

"아니, 포기는 아니야. 그냥…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

"무슨 준비?"

"나 자신을 만날 준비."

하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웃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게 맞는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정희는 창밖의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오랜만에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욕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운 얼굴을 마주했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정희는 웃어 보았다. 그 웃음이 가면이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거울 속의 사람과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볼 수 있었다.

이전 03화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