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by구기리

나란 사람은 얼마짜리일까.

재호는 소개팅 자리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생각을 했다. 창밖으로 밤거리가 흘러가고 가게 간판들이 번쩍였지만 재호는 그것들을 보지 않았고, 핸드폰 화면도 켜지 않은 채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냥 앉아 있었다. 오늘로 열두 번째였다.

상대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말이 잘 통했고 웃음이 편안했고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싫어해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헤어질 때 상대가 "다음에 또 봬요" 하고 말했고, 그 눈빛이 진심이라는 것을 재호는 알았다. 그런데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외모였다. 말하기 창피했지만 그것이었다. 성격은 더할 나위 없는데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저항이 일었고, 재호는 그 저항을 못 본 척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더 크게 일었다. 솔직한 것인지 잔인한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 바로 뒤에는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어떤가.


재호는 원래 거울을 오래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씻고 나서 머리를 대충 정돈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세면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멈추곤 했다. 키는 180이 넘었고 꾸준히 운동한 덕에 몸은 다부졌다. 얼굴이 연예인처럼 잘생기진 않았어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스스로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위안이었는지 착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소개팅을 거듭할수록 그 생각에는 균열이 생겼다. 열두 번의 자리에서 마주한 상대들의 얼굴이 번번이 그저 그랬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수준만큼 소개를 받는다는 말이 요즘 들어 자꾸 머릿속에 들어와 앉았다.

숨겨 둔 한 방이 있기는 했다. 성실하게 쌓아 온 자산이었다. 그것을 꺼내 놓으면 소개팅의 수준이 달라질지도 몰랐고, 누군가는 실제로 첫 자리에서 아파트 이야기를 꺼내고 연봉을 슬쩍 흘리며 상대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재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재호가 원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사람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 조건이 아니라 재호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호 자신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던가. 그 물음은 세면대 앞에 서면 거울 속 얼굴과 함께 따라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성격도 자산도 모두 걷어내고 오직 얼굴과 체형과 입고 다니는 옷차림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인지. 가식도 위로도 없이, 숫자를 매기듯 냉정하게 말해 줄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고, 잘생겼다고도 했지만 그 말들은 하나도 믿기지 않았고, 친한 사람일수록 더 믿기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평가가 아니라 배려였으니까. 재호가 원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냉정한 눈금이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알아야 올라가든 포기하든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든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개팅이 거듭될수록 그 생각은 짙어졌다. 재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았고, 외모가 마음에 들면 성격이 맞지 않았으며 성격이 맞으면 외모가 걸렸다. 마치 양자택일하라는 신의 계시 같았고, 그 계시 앞에서 재호는 매번 손을 뻗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 자산은 착실히 쌓였고 통장 잔고는 늘었고 직함도 높아졌지만, 내 마음을 보고 좋아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재호 역시 상대의 마음보다 다른 것을 먼저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거나, 혹은 재호만 그런 것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재호는 내려서 걷지 않고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 걸까. 사랑을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사랑을 원하는 건지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을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을 원한다면서 정작 상대의 마음은 보지 않았고, 상대의 얼굴을 먼저 보았고, 저항을 느꼈고, 돌아왔다. 열두 번이나. 어쩌면 재호가 진짜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값어치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탐낼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서는 일이었다, 다만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각도의 거울 앞에.


집에 돌아와 불을 켜자 방이 환해졌다. 재호는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오늘따라 더 오래. 이 얼굴의 값어치를 아는 사람은 없었고 재호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에게 눈금을 매기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알고 싶은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 것은, 오래 혼자였기 때문이고 오래 확인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재호는 알 것 같았다. 값어치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이 질문을 하는 일이었다.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거울 속 얼굴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 대답은 거울 밖에, 재호가 아직 열지 못한 어딘가에 있었다. 불을 끄자 방이 어두워졌고, 재호는 그 어둠 속에 한동안 서 있었다. 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고 세상은 재호의 값어치와 무관하게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위안인지 서러움인지, 재호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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