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아 같이 살자

by구슬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꽃잎이와 산바카라을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바카라을 두 시간쯤은 해야 만족하는 꽃잎이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다. 산바카라을 조금만 해도 되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느릿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충분해진 요즘, 날씨 좋은 날 꽃잎이가 집에 빨리 들어가자고 하면 아쉽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실 난 산바카라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피곤했던 거였다.


요리도, 바느질도, 식물을 키우는 일도 모두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일들을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가늠할 여유조차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자 열심히 일하던 그 시절은 떠났다. 나에게 일이란 생활비를 주고, 내 글과 그림의 영감을 주는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 엉금엉금 걷는 꽃잎이는 내가 앞서 나가면 멈춘다. 그리고 여전히 리더는 자기라는 듯, 나를 뒤로 보낸 뒤 다시 출발한다. 그 기세가 고마운 요즘이다.


아이들과의 치열한 밤이 지나가면 꽃잎이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꽃잎이 우유를 먼저 챙겨주고, 나는 아침을 준비한다. 고구마를 찌고, 녹즙을 만들고, 과일, 견과류, 코코넛 오일을 꺼낸다. 예전에 밤을 새우고 일할 때는 커피, 빵,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정신을 깨워 다시 움직였다. 요즘은 몸이 좋아하는 음식과 유기농 식재료를 고른다. 내가 먹는 걸 꽃잎이도 먹는다. 신기하게도 어느새 꽃잎이의 아토피가 많이 좋아졌다. 우리는 건강해지고 있다. 꽃잎이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나눠 먹는 시간, 나는 사랑과 기적을 동시에 느낀다.


아침을 다 먹으면 꽃잎이와 산바카라하러 나간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숨어서 산바카라하지 않는다.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잔을 마신다. 꽃잎이는 옆에서 간식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잔다. 카페에서 알게 된 지인들은 하나같이 꽃잎이를 보고 순둥이라고 한다.

“얘는 어쩜 이렇게 순해요? 우리 애는 못 데리고 나와요.”

“하하. 이게 순한 건가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 꽃잎이가 순하다니….

"얘 안 순했어요."

"어머 그래요?"

사람들은 대개 멋쩍게 웃으며 돌아선다.


꽃잎이가 왜 괜찮아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쉬는 동안 산바카라을 많이 다녀서 외부 자극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꽃잎이도 덩달아 편안해진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우리 둘 다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꽃잎이와 함께 이 시간을 무사히 지나고 있다.


쉬는 날에 미술 공방을 다닌다. 꽃잎이를 그리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쉬는 날에도 일 생각하느라, 혹은 사람들 만나느라 바빴는데, 기숙사 사감 일을 시작한 뒤로는 쉬는 날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인간관계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억지로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애써 웃어 보이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꽃잎이를 그리기 위해 자세히 관찰한다. 콧구멍도 예쁘고, 털구멍도 예쁘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러다 흐릿해진다. 우리가 건너온 시간들이 모두 꿈만 같다. 꽃잎이가 나를 도우러 일부러 찾아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에게 왔던 것처럼, 이 이야기가 어느 날 그렇게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최근에는 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더니 말했다.

"꽃잎이 그릴 때랑 너무 다른데요. 휘리릭 지나간 느낌이에요."

집에 돌아와 다시 사진을 봤다. 사진 속에는 유모차를 탄 꽃잎이와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내 모습이 있다. 이번에는 꽃잎이가 아닌 나를 확대했다. 나를 보는 일이 낯설었다. 사진 속 나는 꽃잎이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필을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훅 쏟아졌다. 어떻게 알고 다른 방에 있던 꽃잎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때 방안에 흐르던 노래가 말하고 있었다. 함께 했던 시간이 별처럼 쏟아진다고.


눈물이 연필을 쥔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꽃잎이가 말했다.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왜 울어?'

'아니야, 꽃잎아. 너한테 정말 고마워서 우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거 하지 마.'

무릎 위로 올라와서 늘 그렇듯 내 눈물을 핥아 주었다.


쉬는 날이니까 공방 수업이 끝나면 평소보다 산바카라을 멀리 간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꽃잎이가 똥 마렵다며 내려달라고 한다. 올려놨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한강 변을 걷는다. 비 온 뒤 공기가 신선했다. 촉촉한 버드나무 잎이 유모차 위를 지나간다. 마치 꽃잎이를 쓰다듬고 싶다는 듯이. 쭉 뻗은 한강 옆으로 길이 하늘과 닿아 있다.

20260921_140535-Edit.jpg꽃잎이를 쓰다듬는 버드나무


여전히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걷는다.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이미 춤추는 고래 등 위다. 그러다 한 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져 고래 등 아래로 떨어지면 아차 싶지만 숨을 고른다. 괜찮다. 고래는 늘 내 곁에 있다.


한은진 씨는 스탠드 불 아래 앉아, 자기만 보는 노트 위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 노트 위의 슬픔이 모양만 바뀌어 내게도 이어졌다. 나는 이제 그 아픔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다. 숨지 않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이 글을 읽는다면, 엄마도 웃어주지 않을까.


꽃잎아, 고마워.


꽃잎아,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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