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건축물, 사람을 위한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는 거의 가우디 특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사실 이쯤 되니 체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엘 공원으로 가는 버스가 거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구엘 공원에 도착한 첫인상은 역시 범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입구로 들어가자 돌로 만든 기둥과 아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어? 이거 아까 카사 밀라에서 본 거랑 비슷한데?'
카사 밀라에서도 척추를 닮은 아치 구조를 보았었다. 다만 그곳에서는 척추 같은 구조가 이어지는 모습이었다면, 구엘 공원에서는 아치 아래를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가우디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구엘 공원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웅장한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이라면, 구엘 공원은 곳곳에 숨어 있는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색채가 눈길을 끄는 곳이었다.
특히 타일을 잘게 쪼개 이어 붙인 모자이크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반듯하고 똑같은 모양의 타일을 붙인 것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색깔도 화려했다.
이미 상당히 지쳐 있던 우리는 그렇게 공원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아주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의자였다.
이 의자가 바로 타일 조각을 이어 붙인 모자이크 의자였다. 모양도 일자로 반듯한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딱딱한 타일로 만든 의자인데도 몸에 닿는 느낌이 상당히 편안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몸을 잠시 쉬게 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아... 서있으니 앉아있고 싶고, 앉아있으니 누워있고 싶구나...'
앉아있다 보니 독특한 점을 발견하였다. 바로 허리 부분이 볼록하게 나왔다는 것.
찾아보니 이 의자는 사람의 신체와 앉는 자세를 고려해 설계된 의자라고 했다. 인체공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도 않았을 시대에, 사람이 앉았을 때 어떤 자세가 편안할지 고민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다 문득 의자 앞에 있는 바르셀로나의 시내가 눈앞에 보였다.
안 그래도 상당히 피곤한데, 인체공학적 의자에 앉아 그림 같은 바르셀로나를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신에게 바치는 건축물이기에 나를 작게 만들었다면, 여기 이 구엘공원은 인간인 나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자 만든 공원이었다.
의자에서 충분히 쉬고 난 뒤 우리는 공원을 계속 둘러봤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구엘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물 중 하나인 도마뱀이 나타났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는 조금 궁금했다.
'이 도마뱀은 뭐지?'
물론 가우디가 자연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이제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뜬금없이 도마뱀이 나타난 이유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도마뱀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공원의 물 저장·배수 구조와 연결된 분수이기도 했다. 공원에 비가 많이 오거나 혹은 저수조가 꽉 차게 될 경우 도마뱀의 입으로 물이 분출되어 수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이었다.
'아니, 이게 그런 역할도 한다고?'
나는 그냥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귀여운 조형물인 줄 알았다.
이쯤 되니 가우디는 건물의 외관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앉는 의자의 곡선부터 공원에서 물이 흘러가는 구조까지, 디테일하게 설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와, 이 사람 진짜 설계를 변태같이 하는구나...'
다음 목적지는 벙커였다. 구엘 공원의 의자에서 한참을 쉬었지만 피로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벙커에서는 바르셀로나의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길래 지친 몸을 이끌고 마지막 목적지로 결정했다.
벙커에 도착하기 전, 주변 가게에서 산미구엘 맥주 두 캔을 샀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했는데... 한국에서 하루의 노고를 마치고 치맥을 먹는 기분이랄까?
물론 치킨은 없지만 일몰을 안주 삼아 마시기로 했다.
아직은 낮이라 밝은 오후의 바르셀로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 누워있는 사람, 서로 얘기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좋은 자리가 아직까지는 남아있어 나도 그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발아래로 바르셀로나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 뒤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는 오늘 밤이 아쉬워하며 건배를 하였다. (사실 건배의 핑개였을지도...)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 바르셀로나에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자 도시에는 가로등부터 한 두 개씩 들어왔고, 이내 도시 전체에 불빛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야경을 보니 정말 마음이 후련해졌다.
저 멀리에서는 비행기가 계속하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비행기를 보면서도 자유로움을 느꼈고,
'언젠간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이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떠나겠지..?'
라고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바르셀로나를 즐기고 싶었다.
한참을 야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다 보니 어느 순간 나에게도 졸음이 찾아왔다.
술을 마셔서 취한 걸까 아니면 그곳의 분위기에 취했던 걸까?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경계심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항상 경계를 하며 가방을 지켰지만 그 순간은 그런 걱정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스페인의 하늘을 이불 삼아, 아름다운 야경을 조명 삼아 낭만적인 잠자리를 청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바닥에 누워 낭만을 온몸으로 즐기고 싶었다...
...?!?!
아! 바닥이 돌이었구나!
"돌침대네?!?!"
눕자마자 허리가 너무 뻐근하게 아팠다. 역시 낭만은 낭만 일 뿐, 잠은 숙소에서 자야 된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갔다.
사실 그날 벙커에서 내려와 어떻게 숙소로 돌아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곤해서 잠결에 들어왔는지, 맥주 한 잔에 술기운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나는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