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똥을 버리지 않았다

by크눌프

(아래의 글은 9.11일자 게시물을 온라인카지노북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기본 내용은 같으니 이미 읽으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은 매일 똥을 눈다. 오늘도 그렇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데 조선시대 농부들에게 똥은 지금처럼 그냥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을 때 꼭 필요한 거름이었다. 세종 때 편찬된 농서 《농사직설》을 보면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인분(人糞)을 좋은 거름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이다. 《농사직설》은 인분이 좋은 거름이라고 하면서도 “많이 얻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의 똥이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충분히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똥을 그대로 밭에 퍼부은 것도 아니다. 《농사직설》에는 분회(糞灰)라는 거름이 등장한다. 숙성시킨 분뇨에 재를 섞어 만든 거름이다. 사람의 똥과 오줌도 농사를 위해서는 나름의 방법으로 다루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조금 낯설지만, 당시 농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에 영양분을 넣어야 했고, 사람이 먹는 것은 결국 밭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사람이 먹고 몸 밖으로 내보낸 것을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밭에서 나온 것이 사람의 몸을 거쳐 다시 밭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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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농부들에게 거름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좋은 거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농사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똥뿐만 아니라 소와 말 같은 가축의 분뇨, 풀과 나뭇가지, 재, 누에똥 등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거름으로 활용했다. 오늘날에는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당시에는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무엇을 쓰레기로 볼 것인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생긴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똥도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한양에서는 어떠했을까? 한양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 사람들은 매일 먹고 자고, 그리고 똥을 눴다. 농촌에서는 귀한 거름이었던 것이 사람이 밀집한 도시에서는 날마다 쌓여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양에서 나온 그 많은 똥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여기서 이야기가 조금 재미있어진다. 한양의 똥을 치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똥을 치워주는 것으로 일을 끝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버린 분뇨를 모아 농촌으로 가져갔다. 농민들에게는 그것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귀한 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양의 똥은 한양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양 사람의 화장실에서 나온 분뇨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밭으로 가고, 그곳에서 자란 채소가 다시 한양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순환이 만들어졌다. 밭에서 나온 것이 사람의 몸을 거쳐 다시 밭으로, 그리고 다시 밥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똥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농부들에게 똥은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주고서라도 구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누군가에게는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였던 것이 농촌에서는 돈이 되는 물건이 되었다. 똥을 둘러싸고도 하나의 생활과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사람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 한양에는 정말로 똥을 치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엄행수였다.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엄행수는 한양 종본탑 동쪽에 살면서 날마다 마을의 똥을 치우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사람들에게는 더럽고 천하게 보였을 일이지만, 엄행수에게는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엄행수를 그냥 똥 치우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穢)’는 더럽다는 뜻이고 ‘덕(德)’은 덕을 뜻한다. 말 그대로 하면 ‘더러운 일을 하는 덕 있는 선생’쯤 된다. 똥을 치우는 사람에게 ‘선생’이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박지원은 왜 엄행수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똥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박지원이 엄행수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단순히 한양의 분뇨 처리 방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모습을 통해 사람이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는 여기에서 잠시 멈추자.


우리가 오늘 알아본 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똥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똥은 그냥 버릴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밭으로 돌아가야 할 거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자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실제로 했던 사람이 있었다. 엄행수. 다음에는 그가 왜 박지원에게 ‘예덕선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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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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