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여정

이제 종착역이 보이는 것 같다

by김세중

우리나라 6법은 법체계의 근간인데 들춰 보면 오류가 너무 많다. 1950년대에 일본 법을 참조해서 거의 번역하다시피해서 만들었는데 번역 과정에 오류가 많았다. 당시 법률가들의 국어 실력도 짧았다. 일본에서 법을 공부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한국어에 서툰 것은 당연했다. 법리야 심오하고 깊었겠으나 법조문의 문장은 전혀 국어답지 않았다. 문법을 지키지 않아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고 놀랍게도 마침표도 찍지 않았다.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언어여서 그대로 닮아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1950년대 제정 당시야 시대적 상황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 쳐도 그후 무려 7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왜 문법이 틀린 법조문을 바로잡지 않았느냐 말이다. 법조계는 법조문을 하나라도 건드리면 마치 큰일날듯이 틀렸거나 말거나 고치지 않고 지난 세월 지내왔고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그저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만 슬그머니 바로 했을 뿐이다. 법 개정을 하지 않고도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는 고쳤다. 법조계의 완고함, 보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50년대는 국민 대부분이 보릿고개로 목숨을 이어가야 했던 가난하고 피폐한 시기였다. 문맹률도 상당히 높았고 그러니 법조문이 문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따질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은 어떤가. 문맹은커녕 국민의 7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국민소득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다. 그렇지만 오직 6법만은 1950년대의 엉성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실로 놀라운 사각지대다. 이것이 어찌 가능했나. 법은 법조인만 알면 된다는 의식이 우리 슬롯에 뿌리깊게 박혀 있었고 법조인은 법리를 배우면서 문장이야 맞든 틀리든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법조문의 언어상 오류를 지적해야 할 집단인 국어학계는 도무지 법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세상 일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 결과 모든 슬롯 부문이 선진국처럼 발전했지만 오직 6법의 언어만 1950년대 상태 그대로 엉망진창이고, 목불인견인 상태다.


나는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양심상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잘못된 걸 알고도 번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2022년에 <민법의 비문>을 펴냈고 2024년에는 민법에서 6법으로 범위를 넓혀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써서 출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판매는 부진했다. 이유가 있었다. 바카라을 너무 딱딱하게 썼다. 너무 정직하게 썼다. 문법용어를 잔뜩 넣어 설명함으로써 바카라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널리 읽힐 리가 없었다. 결국 아무런 변화의 단초도 끌어내지 못했다.


절치부심, 와신상담한 나는 새로운 바카라을 쓰기에 나섰다. 이번엔 앞의 두 바카라과 달리 술술 잘 읽힐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 썼다. 그리해서 원고를 완성하고 2025년 4월 몇 유명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했다. 두번째 바카라이 나오고 약 1년만이었다. 바카라의 가제는 <국격>으로 해서 원고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 데서도 연락이나 반응이 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국격>이란 제목부터가 너무 나이브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6법의 언어만큼 국격에 맞지 않는 후진국 상태 아니냐는 뜻을 담은 것이었지만 <국격> 같이 점잖기만 할 뿐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제목이 출판사의 호기심을 끌 리가 없었다.


몇 달 후인 8월에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모 출판사의 대표에게 전화하니 취지를 충분히 알겠다며 원고를 보내보라고 했다. 그러나 내 원고를 읽고 대표가 보내온 몇 줄의 메일 내용은 자기 기대와는 원고가 딴판이었다며 출판을 간단히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원고가 미흡하다고 했다. 이러이러하게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훈수하는 지적을 했고 난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이런 점은 좀 개선해서 다시 써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원고가 출판하기에 수준 미달이라고 하며 물리치는데 뭘 더 어쩌겠는가.


어쨌든 원고에 부족한 점이 많음을 인정하고 나는 끊임없이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제목도 참 많이 바꾸어 보았다. 임팩트 없는 <국격>을 버리고 <6법은 엉망입니다>, <6법이 아파요>, <6법이 아픕니다>, <병든 6법> 등과 같은, 좀 참신하게 와닿는 제목을 떠올려 보았다. 무엇보다 바카라의 내용을 대폭 다듬었다. 목차를 새로 잡았고 문법 용어 사용을 최대한 줄였다.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데 최대한 역점을 두었다. 내 스스로가 보기에도 원고는 상당히 향상되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한 유명 출판사의 회장을 소개받았다. 그 출판사는 법학 분야 바카라을 오랫동안 출판해온 이름난 출판사였다. 2025년 12월 22일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 그 출판사를 찾아간 날을 잊지 못한다. 그 수모를, 그 참담함을! 연륜이 상당해 뵈는 회장은 나를 앞에 앉혀 놓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누군가와 통화하기 시작했다. 통화는 마냥 이어졌고 난 지루하지만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일은 시스템으로 해야지요." 하면서 출판이사를 불러들이더니 둘이 같이 이야기해보라며 나를 물리쳤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세중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더 편리하고 쉬운 한국어를 꿈꿉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 '민법의 비문'(2022), '품격 있는 글쓰기'(2017) 저자

1,42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물향기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