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를 켜면 교도소 관련 영상이 자주 나온다. 교도소 다큐멘터리 말이다. 국내도 있고 외국도 있다. 최근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다. 청주여자교도소 3일 르포였다. 제작진이 청주여자교도소에 들어가 3일 동안 지내면서 기록한 것이었다. 넋을 잃고 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됐다. 얼마 전 아프리카 어떤 감옥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코트디부아르 감옥 영상은 너무 생소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면 청주여자교도소의 기록은 생생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에 여자교도소는 한 군데뿐이란다. 우리나라 여성 수형자의 약 1/4이 청주여자교도소에 수용되어 있고 나머지 여성 수형자는 전국의 여러 교도소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주여자교도소에는 남자 죄수가 없다. 모두 여성 죄수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간 모르고 있었던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죄수복의 색깔이 하나가 아니었다. 모범수들의 옷 색깔이 달랐고 일반 죄수들의 옷도 구형과 신형의 색이 달랐다. 수형자들이 신는 운동화에는 끈이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자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수형자들이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식구로 넣어주는 식사를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먹는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청하는 모습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600명 이상의 식사를 하루 세 번 어김없이 만드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걸 교도소 직원이나 외부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수용자들이 취사를 담당했다. 자원해서 하는 것인지 시켜서 하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여성 중범죄자가 꽤나 많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무기수로 복역중인 이들이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무기수가 뭔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무기수가 될 수 있나?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그들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다 저마다의 아픈 사연이 있을 것이다. 순간의 끔찍한 행동이 영어의 몸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가 남편인 경우가 꽤 있는 듯했다. 어떤 여인의 고백은 날 슬픔에 빠뜨렸다. 어느 날 딸이 교도소로 찾아왔단다. 결혼할 사람이 생겼는데 상대측에서 상견례를 하자고 하니 어떡하면 좋겠냐고 묻더란다. 안사돈 될 이가 중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견례는 당연히 이뤄질 수 없었고 나중에 딸로부터 결혼이 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 딱한 일이 있었다. 한 수용자는 감방 안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임신 6~7 개월 무렵에 끔찍한 죄를 저질렀고 감옥에 있으면서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어린 아기를 누가 키우겠는가, 엄마가 키워야지. 아기는 교도소에서 태어나 영아 시절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 걸음도 잘 못 걸을 때니까 일반 가정에서 크나 감옥에서 크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문제는 아기가 18개월이 되면 그곳을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규정이 그렇단다. 그러니 18개월이 되면 엄마 품을 떠나 누군가에게 맡겨져야 한다. 친척집으로 가든 고아원으로 가든 말이다. 18개월 전 일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가 지나면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기의 운명이 얼마나 기구한지 번히 짐작되고 가슴이 아렸다. 그 아기가 부디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교도소는 그저 가두어 두는 데만은 아니었다. 징역이란 말 자체가 노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수형자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 공부까지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죄를 지어 갇힌 몸이 되었지만 슬롯에 나왔을 때 밝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교도소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목소리는 활기차고 밝기도 했다. 과연 이들이 한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교도관이란 직업이 얼마나 고된지도 좀 알게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복도를 오가며 살펴야 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이 그 기나긴 복도를 오가는지 3만 보를 걷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더구나 점심 시간은 여간 짧지 않았다. 식사를 급히 마치고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바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가히 중노동이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교도소라는 곳이 없는 나라가 없겠지만 나라마다 교도소 사정이 참 다르단 걸 알았다. 코트디부아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감옥을 보니 한국이나 일본의 교도소와는 천양지차였다. 공통점이라고는 좀체 찾기 어려울 만큼 달랐다. 규율이나 질서 같은 건 도무지 잘 보이지 않았고 일반 슬롯인지 감옥인지 잘 모를 정도였다. 그에 반해 일본의 교도소는 한국의 교도소보다 훨씬 더 규율이 엄격해 보였다. 그렇다. 나라가 다르면 제도, 문화가 다르고 그래서 풍경이 다르다. 하긴 나라 안에서도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민영교도소가 있단다. 그런 데는 기결수들이 서로 가려고 한단다.
여자교도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장기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많은 수형자들이 열심히 살고 있음을 알았다. 순간의 울화가 끔찍한 일을 불러오고 그토록 오랜 세월 그들에게서 자유를 뺏는다. 행형 성적에 따라 가석방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장 가슴아픈 것은 어린 아기의 운명이었다. 누구의 손에, 어떻게 자랄까.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아기는 후일 엄마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물론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