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물방울이 없다
밤 11시, 세 번째 SI 업무 창을 닫았다. SI, 남의 회사 시스템을 대신 지어 주는 일이다.
하루 종일 여러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서로 다른 세 곳의 일을 오갔다. 오전에 고친 것을 오후에 다시 열었고, 한쪽에서 답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쪽의 오류를 들여다봤다. 할 일 목록에는 지운 줄보다 남은 줄이 많았다. 노트북 덮개에 손을 올린 순간,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뭘 했지.'
한 일이 없어서 나온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1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고쳤고, 회의에 들어갔고, 날짜를 맞췄다. 끝난 일도 있었고 끝나지 않은 일도 있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문서는 쌓였지만, 그중 어느 것도 나를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그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개발자로 26년을 일했다. 인터랙티브 개발을 3년 했고, 면세점 일을 6년 했고, 호텔 일을 5년 했다. 그 밖의 시간은 이름과 기간을 일일이 꺼내야 하는 프로젝트들로 채워졌다. 이력서는 길다. 어떤 장애가 생기면 어디부터 봐야 하는지 알고, 처음 보는 시스템에 들어가도 대강의 길을 찾는다. 오래 일한 사람의 손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남는다.
그런데 이력서를 덮고 나면 한 문장만 남는다.
'그냥 개발을 하고 있었다가 다야.'
26년이 헛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내 것이었던 것도 아니다. 면세점은 문을 열었고 호텔은 손님을 받았으며, 내가 거쳐 간 시스템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분명히 있었지만, 떠난 뒤에 내 것이라고 가져온 것은 기술과 경력뿐이다. 남의 밭에서 농사를 오래 지으면 농사꾼은 된다. 그 밭이 내 밭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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