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에서 6년을 일했다. 호텔에서는 5년 동안 시스템 관련 일을 했다.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해서 내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적고 보니 짧은 시간은 아니다. 6년이면 처음 보는 화면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화면에서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보인다. 어느 부분을 고치면 다른 곳이 흔들리는지, 겉으로는 멀쩡한 숫자가 어디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안다. 그런 것은 문서만 읽어서 알 수 없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야 안다.
시간을 보냈다. 꽤 오래 보냈다.
그런데 오래 머문 곳을 내 곳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무엇을 만들지는 회사의 일이었고, 언제까지 만들지는 프로젝트의 일이었다. 그 안에서 어떻게 만들지를 맡았다. 어떻게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무엇을 계속 만들고 싶은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그 질문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모네의 연못을 생각하면 그 차이가 보인다.
처음에는 그가 좋은 연못을 발견한 줄 알았다. 집 근처에 수련이 피는 연못이 있었고, 빛이 아름다워서 그 앞에 이젤을 세웠고, 다음 날에도 아름다워서 다시 그렸을 거라고. 그림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물 위에 꽃이 있고 나무가 비친다. 사람이 애써 만든 흔적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연못은 모네가 조성한 것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1893년부터 지베르니의 집 남쪽에 연못과 물의 정원을 만들게 했다. 정원을 가꾸고 넓혀 가는 동안 훗날 자신의 그림을 채울 풍경도 함께 만들어졌다.
연못을 직접 팠다는 말을, 모네 혼자 삽을 들고 흙을 모두 퍼냈다는 뜻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정원사들의 손이 필요했다.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무엇을 심고 어떤 풍경을 곁에 둘지 스스로 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그릴 때만 자기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도 다음 그림이 자랄 곳을 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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