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카톡 사용 시간이 허 부장의 머리를 돌게 만들기 시작했다.
" 애가 카톡을 하루에 1시간 15분을 했다는데 그게 정상인 거야?"
" 방학이고 사춘기 여자 아이야. 이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면 하루에 1시간 정도 카톡을 할 수 있다고 봐 나는."
" 그러니까 당신이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지수는 머리를 어디에 부딪힌 것 마냥 멍했다.
'뭐라고?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한 거지?'
" 나 맨날 나가서 당신 욕을 한 시간씩 해. 왜 당신이 내 돈으로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싸고, 거기에 봉사활동까지 다니는 건지 난 이해를 못 하겠어"
금붕어처럼 뻐꿈뻐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더 이상 허 부장 입에서 쏟아지는 막말을 참아낼 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무자비한 막말은 상대를 '얼음 땡' 놀이처럼 순식간에 '얼음'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 말의 악함이 너무나 잔혹해서 내 귀로 들은 말이 사실인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것도 남편이라는 사람의 말이.
방으로 들어온 지수는 침대에 눕는다. 이상하리라 할 만큼 감정이 고요하다. 마치 내 감정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게 뭐지?' 하는 찰나에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은 분노도, 화남도, 미움도 아니었다. 슬픔이었다. 슬펐다. 지수는.
10년 넘게 살아온 부부에게 사랑과 애정을 말하기엔 간지럽지만, 지수는 허 부장을 지금까지 사랑하고 좋아한다. 직선 도로를 달리던 커리어가 진흙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금에선 더없이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커가고 매월 돌아오는 월세비, 학원비, 각종 공과금에 생활비. 거기에 주식 투자마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상황을 오롯이 그가 감당하고 있으니. 그에게 미안할수록 그녀는 더더욱 그녀의 경제적 무능함이 죄스럽다. 그래서 아이의 카톡 사용시간에 대한 화살이 맥락 없이 지수의 무가치함을 찌르는 것이 화가 난다기보다 맨 몸에 기습 총격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짐과 같은 존재인 걸까? 그렇다면 헤어지는 게 좋은 걸까.'
중년의 결혼 생활이 신혼만큼이나 뜨겁고 즐겁고 활기찰 수는 없다. 그러나 미적지근할지라도 사랑은 있어야 한다는 게 지수의 생각이다. 부부는 인생의 골고다 언덕을 함께 오른다. 보폭도 다르고 체력도 다르다. 가끔은 어느 한쪽이 포기하고 싶다고 징징 거릴 수도 있고, 가끔은 둘 다 구렁텅이에 빠져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그놈의 사랑이 없다면 이 언덕을 어떻게 함께 오를 수 있겠는가. 사랑이 없다면 차라리 혼자 그 언덕을 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만약 지수가 경제적으로 유용했더라면 허 부장은 그녀에게 그런 막말을 했었을까. 했었을 것이다. 그는 원래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찌르는 사람이니까. 허 부장은 스트레스를 속에 꽉꽉 눌러 담고 있다가 한 번에 그의 곁에 있는 가장 안전한 사람에게 터트리는 사람이다. 지수는 허 부장과 살면서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날이면 지수는 늘 이혼을 생각한다. 이혼을 실행을 옮기지 못한 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지수는 속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은 나를 잃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