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은 듣지 않는 남자

by만석맘 지은

빨래


신혼 초, 남편은 주말에 종종 빨래를 가져왔다.

회사 기숙사에서 빨래하기가 참 번거로웠을 거다.

그런데 특이하게 남편은 옷을 뒤집어 벗는 습관이 있었다.

양말은 물론이고 티셔츠와 바지까지 그랬다.

그래서 빨래줄에 널 때면 애를 먹었다.

그때는 건조기도 없던 시절이라, 다림질을 덜 하려면 빨래를 잘 펴서 널어야 했다.

그래야 옷 개기도 수월했다.

그런데 축축한 옷을 하나씩 뒤집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소매 끝이 뭉쳐져 있으면 손을 넣어 끄집어내야 했다.

꽈배기처럼 꼬인 소매는 잘 풀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소매를 꺼낸 후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 당겼다. 힘있게 탁탁 펴야 마른 후에도 보기 좋았다.


문제는 남편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옷이 컸다.

티셔츠 하나만 해도 내 원피스보다 컸는데, 젖은 옷은 더 무거웠다.

특히 큰 청바지를 털어 널 때면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몇 번 남편에게 말했다.

“빨래를 뒤집지 말고 벗어 놓으면 좋겠어.”

그때마다 남편은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빨래를 할 때면 어김없이 뒤집혀 있었다.


그래도 신혼때는 빨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기옷은 구별해서 빨고, 자주 삶아야 했다.

해야할 일이 늘어난 만큼, 젖은 옷 뒤집는 일이 크게 느껴졌다.

안해도 되는 일을 두 번 하는 느낌이었다.

점점 짜증이 났다. 그 작은 일조차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화를 냈다.

하지만 그 때 뿐,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내 입만 아팠다.


아이 재우기


육아도 비슷했다.

나도 처음이라 모든 걸 남편과 상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말에만 왔고, 둘이 앉아 이야기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육아’는 낯선 일이었다.

신생아에게는 패턴이 있었다. 잠자고 깨서 먹고 놀다 다시 잠을 자곤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를 지켜보며 패턴을 익혔다.

매번 시간을 기록하면서 리듬을 살폈다.

나는 초보 엄마지만 내 아이에 관해서는 잘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는 시부모님이 오셨다.

육아에 익숙한 시어머니는 많은 도움을 주셨다.

잠이 모자라는 내게 들어가서 쉬라고 하시고 집안일을 도와주셨다.

음식도 챙겨 오시고 청소도 해주셨다. 나는 시부모님이 반가웠다. 신랑보다 더.

하지만 때로는 어머니 의견과 다를 때가 있었다.

아이를 재우는 방식에서 그랬다.

어머니는 아이는 땀이 날 정도로 감싸 안고 계속 흔들어서 재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네 시간을 안고 재운 날, 아이는 온몸에 땀띠가 났고 밤새 칭얼거렸다.

손녀가 이뻐서 그렇게 하신 걸 알기에,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주말 밤이었다.

예민한 기질이었던 아이는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특히 아빠가 있는 날에는 뭐가 달랐는지 더 그랬다.

게다가 그날따라 창 밖에 비가 심하게 들이쳤다.

아이는 꽤 오래 칭얼거렸다. 아무리 옆에 누워 재우려 해도 안 자고 보챘다.

그 때 신랑이 말했다.

“아이를 계속 안고 흔들어서 재워야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이미 지쳤고,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이를 안고 오랫동안 흔들어 재웠다. 땀을 흘리며.



나름의 방식


남편에게 반복해서 말해봤자 잔소리로만 들릴 뿐인 것 같았다. 나는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름대로 행동으로 했다.

옷을 뒤집어 내놓으면 그대로 빨았다. 그리고 말리고 개었다.

그러다 보면 티셔츠 어깨라인과 팔 봉재선이 반대로 접힌 흔적이 남았다.

새까만 양말 때도 잘 빠지지 않았다.

야외활동이라도 한 날은 풀 같은게 묻어 있었지만, 그대로 빨고 그대로 널었다.

내 남편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건 못마땅한 일이었다. 누군가 와이프를 험담할 지도 모르고.

그런데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눈을 질끈감기로 했다.


잠투정 부리는 아이는 남편에게 맡겼다. 아이도 남편도 서로 적응했다.

신랑이 회사로 돌아가면 나와 아이만 남고, 결국 내 방식대로 해야 했다.

그 방법 말고 없었다.


내 말은 듣지 않는 남자


남편은 내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의 말에는 더 귀를 기울였다.

가족, 친구, 온라인 게임동료의 말.

같이 살아나가는 사람은 나인데.

나는 계속 맞추면서 살았다.

이제 이 수고스러움을 덜고 싶다.

무엇보다 이제는 신랑이 나에게 물어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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