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느라 수고했어”

듣지 못한 말 한마디

by만석맘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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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 년 전 미국으로 이주했다.

첫째 아이 대입 준비가 급해, 남편은 먼저 아이와 미국으로 들어갔다.

둘째 아이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어 내가 남아 정리를 마친 뒤 합류하기로 했다.

나도 온라인 게임을 다니고 있었기에, 남편이 출국 전 어느 정도 짐 정리를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퇴직 후 일주일 만에 곧바로 출국했다.

출국을 앞두고 남편은 연이어 지인들과 약속을 잡았고, 결국 미국에 갈 짐만 급하게 챙겨 떠났다.

이해는 했다.

이십 년 넘게 다닌 온라인 게임을 정리하는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지 못하는 자기 짐 정도는 정리해 주길 바랐다.


나도 원래 12월까지는 온라인 게임에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십 년 묵은 짐을 일과 병행하며 정리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가장 바쁜 민원부서에 있었기에,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 밤 열 시가 되어야 돌아오는 날이 이어졌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반나절은 출근해야 할 만큼 일이 쌓였다.


몸은 점점 무너졌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어느 날부터 아침에 허리를 굽힐 수 없었다.

척추측만과 디스크가 겹쳐, 세수조차 서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응급실에 실려갈 것 같았다.

동료들에게 미안했지만, 결국 예상보다 일찍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퇴직 후에도 쉴 수는 없었다.

아픈 허리를 달래 가며 짐정리를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깊숙한 통증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짐을 싸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엎드려 찜질을 했다.

일어날 수 없어 바닥을 기며 짐을 쌌다

국내 이사라면 다 싸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국외 이사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견적만 천만 원이 넘었다.

남편은 우체국 택배가 제일 싸니 그거로 부치라고 했다.

우체국에는 직접 짐을 들고 가서 부쳐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부친 짐이 서른 개였다.

그리고 못다 부친 짐은 사람을 불러 또 서른 개 넘게 보냈다.

그렇게 해도 8백만 원이 넘었다.

허리를 망가뜨리고 다시 허리 치료에 수십만 원을 썼다.

천만 원 아끼려다 9백만 원 쓰고, 내 허리는 고장 났다.


듣지 못한 말 한마디


나는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 채 미국에 도착했다.

며칠을 그대로 앓아누웠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는 내게, 5월 중순까지 추운 낯선 곳에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유난히 시렸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마주할 힘조차 없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오느라 수고했어.”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픈 허리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다.


어느 날은 겨우 몸을 일으켜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 상태가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

남편도 내가 없는 동안 아이와 지낸 시간을 이야기했다.

나는 고생했다고 말했지만, 나 역시 위로가 필요했다.

마음은 텅 비었고 허리는 계속 아팠다.

아이들조차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나도 위로가 필요하다


내가 오자고 한 이민이었다.

하지만, 그 짐은 너무 크고 내 몸과 마음은 무너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자기는 나를 사랑하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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