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소라(SORA)'에 접속하기 전까지는.
"으악!"
컴퓨터 화면은 암흑으로 가득했다. 그 암흑 속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Sora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데이터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챗지피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서루'라는 이름의 코알라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어서 '소라'를 활용해 동영상까지 만들었다(관련 글: https://fishingproductfr.com/@jejenanal/717). 그러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데까지 나아갔다(관련 글: https://fishingproductfr.com/@jejenanal/719).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유튜브 화면 우측 상단의 '+만들기'를 누르면 '동영상 업로드', '라이브 스트리밍 시작', '게시물 작성' 항목이 뜨는데 그중 '동영상 업로드'를 클릭하고 영상을 올리면 끝이었다. 그렇게 덜컥 '코알라 서루'라는 이름의 유튜브를 개설하고 일주일에 한 편씩 21편의 영상을 올리게 되었다.
그림과 영상 제작에 문외한인 내가 캐릭터 동영상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소라의 역할이 컸다. 소라는 대략적인 프롬프트만으로도 공간 배경과 음악, 그리고 캐릭터의 동작까지 구현해 주었다. 덕분에 그동안 다양한 주제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처음 10초에 불과했던 시간도 20초까지 늘어났다. 동영상 2개를 '프리미어 프로'라는 편집기를 이용해 이어 붙이기를 시도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그런데 그렇게 유용하게 쓰이던 소라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도 어떤 조짐도 없이. 그러니 비명이 절로 나올 수밖에.
어이없는 심정을 부여잡고 소라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를 살펴보니 내가 몰랐을 뿐 이미 한 달 전에 관련 보도는 나와 있었다. 지난 3월 25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자본 조달과 공급망 관리, 전례없는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집중하겠다며 소라 철수 배경을 밝힌 바 있다(관련 기사: 천문학적 연산비용-저작권 벽 못 넘었나... 동영상 앱 '소라' 폐지 '충격').
나는 기사들을 훑으며 이대로 동영상 제작을 중단해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기존의 서루 이미지를 다른 영상 생성 AI를 활용해 구현해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어떤 AI를 활용해야 그것이 가능할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챗지피티를 열어 소라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앱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챗지피티는 'Kling', 'Hailuo', 'Veo', 'Runway', 'Pika/PixVerse', 'WaveSpeed'를 추천해 주었다.
알 수 없는 낯선 이름들을 바라보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소라를 처음 접했을 때 맹렬히 타오르던 호기심의 불꽃이 전혀 타오르지 않아서였다. 그야말로 망연자실. 예상치 못한 소라의 소멸과 살아나지 않는 열정 앞에서 나는 그만 햄릿의 대사를 외치고 말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대로 서루와 작별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고는 쳇지피티가 권한 앱 중 'Veo'(구글 제미나이)로 서루 제작에 나섰다. 하지만 예전의 소라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귀여우면서도 몽글몽글한 서루의 모습을 제미나이는 끝내 구현해내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베오'가 만든 서루는 '소라'가 만든 서루와는 전혀 다른 코알라였던 것이다.
어린이날. 서루의 마지막 영상을 내보냈다('소라' 서비스 종료 이전에 제작해 예약을 걸어놓았던 영상). 유튜브를 찾아 주었던 이들에게도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서루의 시작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루는 호기심의 대상에서 실제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서루가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소라'가 서비스를 종료하지 않았더라면 서루는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서가를 누볐을 것이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루는 앞으로도 서가에서 바카라을 읽고 잠을 자고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서루는 내 안에서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