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십자가는 아름다운가 — 상처와 자기 비움의 역설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미술 비평

by김남효 Jeff 지민

4. 십자가는 아름다운가 — 상처와 자기 비움의 역설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미술 비평


십자가는 아름다운가.

상처가 어떻게 빛이 되고,

자기 비움이 어떻게 충만이 되는가.


전시장에서 어떤 작품 앞에 서면,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갑자기 어색해질 때가 있습니다.


매끈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프게 보이는 형태 앞에서 잠시 말을 잃습니다.

“이게 아름다운 건가?” 하고 속으로 묻게 됩니다.


십자가도 그런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그 자체로 보면 처형 도구입니다.

수치와 고통, 실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그 역설을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1 Corinthians 1:18, NIV)


그리고 같은 장의 23–25절은 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but … the foolishness of God is wiser than human wisdom,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human strength.” (1 Corinthians 1:23–25, NIV)


십자가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장식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우고, 상처를 끌어안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이 그 움직임을 ‘자기 비움’(kenosis)으로 요약합니다. 높은 자리를 붙잡지 않고, 종의 형체를 가지며, 죽기까지 낮아지는 길. 예술도 때로 그 길을 닮습니다. 완전함을 과시하는 대신,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를 비워 다른 존재가 들어설 자리를 만듭니다.


비기독교인에게도 이 물음은 낯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완벽한 이미지보다, 금이 가고 비어 있는 형태 앞에서 더 오래 멈추는가. 왜 자기 과시가 아닌 자기 비움의 몸짓이 더 깊게 다가오는가.


————-


베를린데 드 브루이커레(Berlinde De Bruyckere), <Arcangeli>


‘자기 비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2024년 베니스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에서 열린 개인전 《City of Refuge III》에서 선보인 대천사 조각군 ‘아르칸젤리(Arcangeli)’입니다. 성당 안에 자리한 이 형상들은 인간과 신성, 지상의 몸과 천상의 존재 사이에 서 있습니다.


거대한 형상들이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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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예술의 근원적인 힘을 스토리텔링에 담아내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화가(A Story-Creating Painter)',감정과 사유의 깊이를 시각 및 언어로 풀어내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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