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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 증언과 화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미술 참견시점

by김남효 Jeff 지민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 증언과 화해, 예술가의 소명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미술 참견시점


“예술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이 다시 삶을 향하도록 도울 수는 있다.“


예배의 강단에서 목회자가 세상을 향한 구원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는 통찰을 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들려오는 말씀은 마음속에 장면을 만들고,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한다. 그러나 듣고 이해한 모든 것이 곧바로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만나지 못한 고통이 있고, 설명을 들었어도 상상하기 어려운 타인의 삶이 있다.


예술은 그 거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시작한다.


현대미술은 이미지와 사물, 소리와 움직임, 빛과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기도 하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그 울림을 몸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떤 슬픔은 문장으로 읽을 때보다 비어 있는 의자 하나를 마주할 때 더 깊이 다가온다. 어떤 폭력은 통계로 들을 때보다 전쟁의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때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예술가는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삶에 감각의 형태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의 능력을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인간의 역할을 지우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건네는 이가 있고, 지친 사람에게 쉴 자리를 마련하는 이가 있으며, 병든 몸을 돌보는 이가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의 삶을 붙드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실천이 된다.


예술가에게도 맡겨진 몫이 있다. 보이지 않던 고통을 드러내고, 말하지 못했던 슬픔을 표현하며, 절망한 사람이 다시 삶을 바라볼 작은 틈을 만드는 일이다.


함께 우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로마서 12장 15절, 개역개정.


이 말씀에서 먼저 다가오는 것은 ‘함께’라는 말이다. 타인의 슬픔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곁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놓으라는 요청이다. 예술도 그러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밝고 행복한 그림을 통해 기쁨을 얻는다.

동시에 슬픔과 깊은 고뇌를 담은 작품 앞에서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작품 속 상처가 내 안에 오래 잠겨 있던 기억과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 정리하지 못했던 상실,

잊었다고 생각했던 두려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던 외로움이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관람자는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한다.

‘이 슬픔이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은

고립된 마음에 작은 연결을 만든다.


눈물이 흐른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울 수 있게 되는 일,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게 되는 일은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예술가는 이러한 만남이 일어날 형식을 만든다.

그 능력이 이웃을 향할 때, 작품은 한 사람의 재능을 넘어 공적인 소명을 품게 된다.



올해 6월 스위스에서 열린 아트바젤 바젤의 언리미티드 부문은 대규모 설치와 조각, 회화를 통해 이러한 예술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세 작가의 작품을 증언과 회복의 관점에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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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알프레도 자르(Alfredo Jaar) , 《The Power of Words》, 1984/2021


— 아트바젤 바젤 2026, 언리미티드


자르는 종이와 롤러가 제거된 타자기의 사진 속 빈 공간에 위기의 순간을 살아가는 익명의 인물들을 담은 보도사진 16장을 투사한다. 붉은빛이 공간과 이미지를 물들이는 설치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의 바카라임을 묻는다.


이 작업은 사진의 다큐멘터리적 기록을 예술적 질문으로 재구성하는 아카이빙의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사진은 한때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고,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언한다. 작가는 신문에 실렸던 사진들을 선택하고 새로운 공간과 순서 속에 배치함으로써, 지나간 소식이었던 장면을 지금 우리 앞에 도착한 질문으로 바꾼다. 기록의 보관을 넘어, 기억과 다시 관계 맺게 하는 것이다.


Alfredo Jaar, The Power of Words, installation view , 사진출처: Jean-Kenta Gauthier / Odéon, Paris, 2021

참고영상은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youtu.be/KIa4gkcfKAo?si=9gBIX1OgZnSMJA-k


그 만남에는 관람자 자신의 기억도 참여한다. 사진 속 인물의 두려움과 상실이 보는 이의 내면에 잠겨 있던 경험을 건드릴 수 있다. 개인의 기억과 슬롯가 공유해 온 전쟁·폭력·이별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낯선 사람의 얼굴이 어느 순간 자신의 삶 가까이 다가온다. 융의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라는 관점을 빌리면, 이러한 공명은 상실과 위협, 보호받고 싶은 마음처럼 인간에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험의 형식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은 역사적 사건의 기억이 그대로 축적된 저장고라기보다,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보편적 원형의 차원을 뜻한다.


이때 관람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행위에서 내면의 응답으로 깊어진다. 관람자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작품의 의미 형성에 참여하고, 사진 속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를 관계미학의 문제의식과 연결해 읽는다면, 주목할 것은 작품을 매개로 타인과 나 사이에 생겨나는 공감과 바카라임이다.


그 공명이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사진은 아픈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알아보고, 자신의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작품이 열어놓는 위로는 고통을 지워주는 데서 오기보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예술은 상처를 표현할 언어와 이미지를 내어주며 회복의 가능성을 연다.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고통을 전하는 말과 고통받는 얼굴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사건을 읽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는 습관을 멈출 수 있을까. 예술가의 소명은 강렬한 장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장면 속 사람이 우리의 관심에서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고, 기억이 공감으로, 공감이 돌봄으로 이어질 자리를 마련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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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니키타 카단(Nikita Kadan), 《Tryvoha (The Sirens and the Mast)》, 2023


— 아트바젤 바젤 2026, 언리미티드


니키타 카단은 반투명한 흰 커튼과 중앙의 금속 기둥, 공습경보를 재현하는 소리로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로 되살아난 경보음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잠시 멈추기를 반복한다. 제목의 ‘트리보하’는 우크라이나어로 공습경보와 불안을 함께 뜻한다. 2023년 제작된 이 작품은 2026년 아트바젤 바젤의 언리미티드 부문에 소개되었다.


우리는 어떤 순간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에는 소리로 남는 층위도 있다. 오래전 들었던 목소리나 익숙한 선율이 뜻밖의 순간에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오듯, 소리는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전부터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인간과 소리의 만남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태아는 자궁 안에서 어머니 몸의 소리를 듣고, 임신 후반에는 어머니의 목소리 등 외부의 일부 소리도 들으며 반복되는 소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소리는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초기의 감각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Nikita Kadan, Tryvoha, The Sirens and the Mast, 사진출처: soundcloud


참고영상은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youtu.be/RoyvM3hu8t4?si=rPwHpDwW970gLvPx


카단의 작품은 이러한 소리와 감정의 관계를 전쟁의 현실 속으로 가져온다. 공습경보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피신하던 순간과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던 마음,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두려움까지 함께 불러올 수 있다. 같은 경보음이라도 듣는 이의 경험에 따라 그 안에 담기는 감정의 무게는 달라진다. 소리에는 정보와 더불어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실린다.


관람자는 흰 막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그 울림을 마주한다. 커튼이 만드는 시각적 경계와 공간을 채우는 소리, 그 안에 머무는 자신의 몸이 하나의 경험을 이룬다. 전쟁을 설명하는 문장을 읽거나 뉴스 화면을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지배하는 불안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시각과 청각, 공간의 감각을 함께 작동시켜 멀리 있는 현실을 자신의 몸 가까이 가져온다.


이 간접 경험이 전쟁을 겪는 사람의 고통과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멀게만 느꼈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는 될 수 있다. 뉴스 속 사건으로 지나쳤던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오늘 밤의 생존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관한 일임을 깨닫게 한다. 작품이 여는 것은 그 삶을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볼 마음의 자리다.


카단의 설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감각을 깨우는 증언의 공간이다. 현대미술의 슬롯 참여는 구호나 직접적인 행동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외면했던 삶 앞에 잠시 머물게 하고, 그 만남이 공감과 돌봄으로 이어지도록 문을 여는 일. 바로 그곳에서 예술가의 공적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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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김보희, 《The Days》, 2022

— 아트바젤 바젤 2026, 언리미티드


김보희의 《The Days》는 세로 390센티미터, 가로 648센티미터에 이르는 대형 회화다. 열두 점의 캔버스에 펼쳐진 초록의 풍경에는 야자수와 열대 식물, 새와 반려견 레오가 등장한다. 제주에서 관찰한 생명과 일상의 시간이 하나의 넓은 화면을 이룬다.


이 풍경은 작가가 살아가는 공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돌보아온 세계다. 화면은 관람자의 시선을 식물과 동물이 있는 자리 가까이 이끈다. 손을 뻗으면 화면 너머의 잎사귀에 닿을 것 같고, 반려견은 금방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다. 정지된 회화 앞에 서 있지만, 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식물 사이를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시각으로 만난 풍경이 청각과 촉각의 상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김보희, The Days, 2022, 사진출처: kimbohie

참고영상은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youtu.be/P8NuRFegdGk?si=uqviio6y0_SVdVRO



그 생생함은 가까운 생명을 오래 바라본 시간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제주의 빛과 공기 속에서 자라는 식물, 그 사이에 머무는 새와 반려견은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간다. 관람자는 그 생명들의 자세와 시선을 따라가며, 이들을 지켜보고 돌보는 작가의 마음도 함께 읽게 된다. 일상의 풍경은 그렇게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담긴 장면이 된다.


화면의 초록 역시 자연의 색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 잎과 풀을 떠올리게 하는 색 사이로 안료 고유의 선명함과 작가가 선택한 색조가 드러난다. 자연에서 관찰한 빛깔과 회화의 색, 반복되는 붓질이 어우러지면서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생기를 부여한다. 관람자는 그 색과 리듬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잠시 호흡을 고른다. 서둘러 의미를 해석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들 곁에 머무는 듯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앞선 두 작품이 위기와 전쟁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게 한다면, 김보희의 회화는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한 하루와 곁에 있는 생명,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기독교적 시선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면 창조세계의 생명과 그것을 돌보는 인간의 바카라임을 묵상하게 된다.


상실 뒤에도 하루는 찾아오고, 작은 생명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이어간다. 그 지속을 발견하는 일은 지친 마음에 다시 살아갈 이유를 건넬 수 있다. 김보희의 초록은 그렇게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위로가 된다. 생명을 오래 바라보고 사랑할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 그것 또한 예술이 세상에 건넬 수 있는 희망이다.



참견 한마디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예술가에게 무엇이 맡겨져 있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들어 있다.


예술가는 모든 상처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상처가 슬롯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증언할 수 있다. 절망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마주할 자리를 내어주고,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던 사람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 있다. 아름다움을 통해 삶을 다시 사랑할 이유를 건넬 수도 있다.


그 소명을 감당하려면 표현의 기교와 함께 타인의 삶을 듣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작품의 재료로만 가져오지 않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자리도 존중해야 한다. 화해를 말할 때에는 상처 입은 이에게 용서를 서두르라고 요구하기보다,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 작업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뜻이 전해질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이 열어놓은 공감이 한 사람의 돌봄으로 이어지고, 그 돌봄이 또 다른 삶을 붙들 때 예술의 공적 능력은 구체적인 힘이 된다.


예술은 죽은 사람을 육체적으로 되살릴 수 없다. 그러나 잊힌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부르게 하고, 남겨진 사람이 기억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도울 수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타인의 삶을 보게 하는 일.


말하지 못했던 슬픔에 형태를 내어주는 일.


그리고 다시 살아갈 마음을 함께 지켜주는 일.


그것이 오늘, 세상을 향해 예술가에게 맡겨진 소명일 것이다.


이번 주 질문


이 작품은 나에게 누구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하며, 그 만남은 어떤 위로와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CROSS OVER ART 5 — 창조와 회복의 미학》 전체 목차


1. 태초에 창조가 있었다 — 하나님의 형상과 예술가의 탄생

2. 깨어진 세계의 초상 — 타락과 상처를 바라보는 예술

3. 말씀이 이미지가 될 때 — 성육신과 보이는 것의 신학

4. 십자가는 아름다운가 — 상처와 자기 비움의 역설

5. 상처 사이로 금빛이 흐른다 — 부활과 회복의 미학

6. 교회 밖에도 빛은 비친다 — 일반은총으로 읽는 현대미술

7.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 증언과 화해, 예술가의 소명

8. 아직 오지 않은 아름다움 — AI 시대와 새 창조의 미학



김남효 연구교수 / 동서양디자인연구소 대표


뉴욕 Pratt Institute 디자인 석사, 홍익대 동양화 석사, 연세대 MBTI & 건축 박사. 미국 Iowa State University · Florida State University 초빙교수, 숭실대 대학원 디자인전공 주임교수 및 평생교육원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 우수상,특선을 받았으며, 중앙일보주최 중앙회화대전 동상을 수상했다.


현재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아트코리아 AK연구소 소장, 동서양디자인연구소

연구교수로서, 예술·철학·심리학·과학의 접점에서 연구와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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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예술의 근원적인 힘을 스토리텔링에 담아내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화가(A Story-Creating Painter)',감정과 사유의 깊이를 시각 및 언어로 풀어내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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