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견뎌낸 다알리아

감색

by소수지

자연의 순리는 나에게 늘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바쁘게 걷던 걸음을 잠시 늦추고 나무와 꽃을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다 보면, 자연은 말없이도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자연의 흐름, 세월의 흐름에서 피고 지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있다.


얼마 전, 비바람이 세차게 지나간 뒤의 거리를 걷다가 뜻밖의 꽃 한 송이를 만났다. 짙은 감색의 다알리아였다.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을 텐데도 꽃은 쓰러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피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에는 빗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꽃은 끝내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고 피어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꽃 앞에 머물렀다. 문득 꽃이 견뎌낸 시간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비바람을 만난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과 실패,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마음을 무너뜨리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우리는 흔들리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바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고난을 완전히 피하며 살아갈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더라도 다시 자신을 찾고, 일어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알리아도 바람 앞에서 분명 흔들렸을 것이다. 빗물에 꽃잎이 무거워지고 줄기가 휘청거리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 꽃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상처가 없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상처를 견디고 다시 피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그 꽃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지나온 시간에도 크고 작은 비바람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견디는 동안 몰랐던 힘을 발견했고,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자주 상처받지 않는 삶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중요한 것은 상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다시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꽃으로부터 깨달음을 배웠다.


그날 이후 나는 길가의 나무와 꽃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껴본다. 그리고 힘겨운 날이 찾아올 때면 비에 젖은 다알리아를 떠올린다.


흔들려도 괜찮다. 잠시 고개를 숙여도 괜찮다. 다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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