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이번 학기에 H를 새로 만났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미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제인 오스틴 이야기로 흘러갔다. 오랫동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었고, 온라인카지노 활동을 하면서도 제인 오스틴 소설 읽기와 나의 삶을 엮어서 글을 쓰고 있던 터라, 사실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나는 제인오스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다보니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제인 오스틴은 어느정도 기준이 되어 버렸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독서력을 갖고 있는지의 기준 말이다. "제인은 현대 소설가인가요? 제인에어와 관련된 사람이죠?"라고 되묻는 사람이면, '아, 이 친구는 제인 오스틴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 못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제인 오스틴 소설 좋아해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오만과 편견』은 읽었지만, 제인 오스틴 소설을 로맨틱 소설의 관점으로 보고 있어.'라고 생각을 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고나서, 『오만과 편견』 소설을 읽어봤어요. 다른 소설은 잘 몰라요." 그러면 나는 "『에마』 읽어 보세요. 좋아할 거에요."라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 『노생거 사원』이라는 소설도 썼더라구요. 매우 귀여운 여주인공이 나오죠."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내 눈이 커진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결이 달라진다. "여주인공 캐서린이 친구 이사벨라와 공포소설을 읽고 나누는 대화 장면 어떻게 보세요?"라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작품 안으로 훅 들어간다.
그림 전시 이야기 끝에 예술과 소설 이야기가 나왔고, 소설 이야기 끝에 나는 오랜 습관처럼 제인 오스틴을 꺼냈다. H는 "제인 오스틴 소설은 너무 지루하고, 읽기도 어렵더라구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소설을 자세히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읽어도 그 의미를 모르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세히 캐 묻거나 계속해서 제인오스틴 소설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말했다.
"그 유명한 문장이 기억나요.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문장이요. 소설 어디엔가 나오는데, 아시죠?"
"『오만과 편견』 소설의 주제와 맞닿은 말이니 소설 어디엔가 있는 말 같네요." 라고 짧게 답하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10대 시절에, 바카라을 읽으면 바카라 속의 명대사를 암기해서 뽐내는 친구가 있었다.
"나 어제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야.' 넘 멋진 말 같지?"
"그런 구절도 외우고 다니고 너 대단하다! 나도 이 바카라을 읽었지만 그런 구절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ㅎㅎ 고마워. 별거 아니야. 써먹기 좋은 말이라서."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이 옥수역을 지날 무렵, 저 멀리 주황빛 햇살이 안으로 밀려오더니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내 뒷통수를 툭 치고 지나간다. '『오만과 편견』을 다섯 번은 더 읽었는데, 그런 구절이 있었나?'라고 말이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게 오만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꼼꼼히 읽어가면서 그 구절이 소설에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면 될 일이다.
집에 도착하니 큰 딸이 집에 있었다. 딸은 이번 학기에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수업을 들었다. <제인의 사랑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해석>에 대한 리포트를 써서 교수님으로부터 잘썼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딸이 제인 오스틴 소설에 스며들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가끔 궁금해진다. 딸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혹시 이 구절 아니?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
"음, 엄마, 딱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에서 말했을 것 같은 말이네. 주제나 분위기 등등...그런데, 소설 말고 영화에 나온 말 아닐까? 요즘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비슷한 말들이 추가되기도 하니까."
알고보니 이 문장은 『오만과 편견』 영화의 명대사였다. 소설에서는 허영과 오만에 대해 메리가 한 말 중에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말이 있다.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관계가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관계되거든."
저녁을 먹고나서도 우리의 대화는 제인 오스틴 명대사로 이어졌다. 딸이 말한다.
"엄마, 사실 『오만과 편견』의 명대사는 첫문장 아닐까요? 가장 유명한 문장 있잖아요. 재산이 넉넉한 미혼 남성이라면 분명 아내를 찾고 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그래 『오만과 편견』의 첫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이 소설을 읽은 사람 중에 말이야. 아니 소설을 안읽었어도 첫문장을 아는 이들도 간혹 있더라."
"이 문장이 풍자와 아이러니를 품은 말이라는 것을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사실은 부자 총각이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를 사윗감으로 잡으려고 난리라는 의미라는 것을요. 아이러니가 있는 말이어서 명대사로 남은것 같기도 하고..."
"그래, 베넷 부인처럼 말이다. 이웃집에 사륜마차를 타고 온 빙리 씨가 이사온다니, 이 소식에 벌써부터 맘이 설렌건 베넷부인이었지. 그녀는 벌써 사위감으로 점찍어 놓았던거야."
"18세기 영국 슬롯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면서 동시에 부유한 젊은이와 결혼하기 위해 애쓰는 여성들의 모습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결혼을 통해서만 제대로 설 수 있는 여성들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죠."
"소설의 주제를 압축해 놓은 말이기도 하지."
"그런데 이런 명언만으로 작품을 기억하게 되면 소설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중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슬롯 선생님은 펄벅의 『대지』를 읽으라고 하셨다. 방과후 시간이 남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대지』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한달 쯤 지났을 때 아이들 모두 잊고 있을 무렵, 선생님이 갑자기 물으셨다.
"『대지』읽은 학생 있나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아, 우리 J가 읽었구나. 무슨 내용인지 말해줄 수 있니?"
"땅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
"음, 왕룽의 삶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던 사건 이야기 해주겠니?"
"왕룽이 가족을 위해 농사를 지었고, 그리고..."
나는 소설의 명대사와 명문장을 기억하느라 핵심 장면을 놓쳤고, 선생님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소설의 내용보다 명언부터 기억했을까? 무엇이 명언을 만드는 것일까? 흔히들 오래 기억되고 계속 맴도는 문장을 명대사로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는 소설의 내용을 압축해놓은 문장이 명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의 소설『톰소여의 모험』에 나온 노동과 놀이의 차이를 알려주는 문장 같은 말이다. 'Work is what you have to do, and play is what you want to do.' 이 문장의 의미와 뜻을 가르치기 위해 <Tom and the fence> 에피소드가 나온 장을 우선 읽어 본다. 이 문장을 통해 관계대명사를 가르치기도 하고, 노동과 놀이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Tom and the Fence> 챕터 전체를 읽지 않고 그 문장이 나온 부분(단락)만 읽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러다가 어느날 알게 됐다. 일부 학생들은 그 문장이 『톰소여의 모험』소설에 나온 문장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냥 명언을 통해 문법 하나와 문장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었다. 소설에서 어떤 맥락으로 그 문장이 나왔는지,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과 다시 그 챕터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으로 시작되는 챕터를 읽지 않고는 톰을 이해할 수 없고, 톰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니.
어린 시절 우리집 부엌에는 가마솥 세 개가 부뚜막에 얹혀있었다. 세 개의 가마솥으로 거의 모든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 아궁이에 지필 땔감을 떨어지지 않게 마련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아궁이 한 쪽에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부지깽이 하나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냥 별 볼없는 부지깽이가 아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말고, 어머니는 부지깽이로 바닥에 그적그적 하면서, 가난해서 국민학교 조차 다니지 못했던 일, 유일하게 학교에 다닌 외삼촌으로부터 글을 배웠던 일들을 들려주셨다. 나 또한 아궁이 속 불을 바라보며 한 살 터울의 남동생과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 손에는 항상 부지깽이가 들려 있었다. 부지깽이가 불에 그을려서 짧아지면 아버지는 어느새 탄탄한 새 부지깽이를 세워 놓으셨다. 한번도 우리의 부엌에서 부지깽이는 공백이 없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부지깽이는 저녁에 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후후 뱉어 놓고 아궁이와 밤새 이야기 놀이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부지깽이는 살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세헤라자드의 혀와 같았다.
타라 리차드슨의 <매일 매일 제인오스틴 365>라는 바카라은 제인 오스틴 소설 속 문장들을 1년 365일 매일매일 필사하듯이 남긴 제인 오스틴 문장집이다. 하나 하나 보면 다 주옥같은 글들인데, 타라 리차드슨이 쓴 어제와 오늘의 문장과 문장간의 고리는 없다. 아쉬운 점이다. 어제는 『설득』의 문장이었다면 오늘은 『맨스필드 파크』의 문장이 나온다. 이런 식이다. 오늘의 명언과 내일의 명언간의 고리와 맥락이 없으니, 그냥 소설에서 따온 문장들의 나열로만 보인다. 타라 리차드슨에게 맥락이 있다면 그저 제인오스틴이라는 소설가 뿐이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교실 청소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이번에 우리 J가 쓴 <목장 구경>이라는 제목의 글이 제주 일보에 실렸네. 축하한다."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얼른 말씀드려야겠어요!"
여름 방학 때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목장에 갔던 일을 쓴 글이었다. 아버지는 아홉 마리의 소를 목장에 방목하셨다. 매해 여름이면 소 진드기 방역을 해야했다. 오름 주변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한군데 몰아 넣으시고는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를 하셨다. 힘겹게 찾아낸 우리집 소들이 내말을 잘 들을 리가 없다. 소들은 한걸음 한걸음 있어야 할 곳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울타리 너머의 풀이 더 푸르른 법이니까 말이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며칠 전 친구가 말했던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야.'라는 말이 허공 속에 흩어졌다. 나는 이 날의 일화를 쓰면서 글에 어떤 명언도 넣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좋아하는 말똥 버섯들을 하나하나 모은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어느새 말똥 버섯은 바구니에 가득 찼다.
누가 제인오스틴 명언 이야기를 꺼내면, 그 명언이 소설의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작가는 왜 그런말을 했는지 알아보자고 해야겠다. 아니,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자고 해야겠다.
집에서 온라인카지노를 쓰는 동안, H가 전화를 했다. 인상주의 그림 전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H는 지난번에 제인오스틴 문장에 관해 내게 한 말을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번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줘야 하나? 뭐라고 말하지? 꼭 답을 해줘야 할까?' 오만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돈다. <감자먹는 사람들>처럼 시골 사람들을 그린 그림 어딘가에 부지깽이가 있지 않을지 같이 찾아보자고 해야겠다. 꼭 고흐의 그림이 아니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