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엘리자베스는 인터뷰의 기술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by제이오름

영문학 수업 교수와의 면담이 있던 날, 딸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좋아했던 과목이기에 한 학기 동안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리포트 쓰기 과제의 완성도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 것은 좋아하는 과목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면담은 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교수님의 질문은 서너 개에 불과했고, 자신의 답변도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 왔으며, 그리고 그 과목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정도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대화가 아닌 인터뷰는 끝났다.


이런 일은 교수님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학생 면담 이외에 보직 일도 해야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강의도 해야하니 바쁘신게 당연하다고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불어 선생님은 유독 나에게 큰 관심을 주셨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면서 학교생활 하는 나를 안스럽게 보시고, 문제집 몇 권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나의 자취생활을 걱정하며,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부모님 댁은 언제 가는지, 어떤 진로를 갈 것인지,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긴장감을 느꼈다. 그 전에 선생님과 사적인 대화를 나눤본 적이 없어서이다. 내 감정은쉽게 이완이 되지 못했다. 내 삶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인터뷰는 원래 긴장감의 속성을 지닌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의 회의>에서 느껴지듯 말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인터뷰의 정의를 떠올리게 된다. "질문이라는 열쇠로 상대방이 가진 경험과 정보, 그리고 본심의 문을 열어 세상에 보여주는 정교한 대화의 기술"로서의 인터뷰 말이다. 그런데 편하고 이완된 분위기의 인터뷰라기 보다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인터뷰이다.

image.png에드워드 호퍼, 밤의 회의, 1949.


대화를 하는 여인에게서 보이는 긴장감이 그림을 보는 나에게도 전해진다. 밤까지 이어지는 회의이기에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듯 하다. 무슨 내용에 대한 회의일까? 회의라고 하지만 여인의 표정을 보니 인터뷰식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앉아있는 남자는 인터뷰어이고 서 있는 두 사람은 인터뷰이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에서 이런 긴장감을 느낀적이 있다. 캐서린 영부인은 엘리자스를 추궁하듯이 다짜고짜 이것 저것 캐묻는다. 캐서린 영부인의 정보 캐기 질문을 받고 엘리자베스도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된 근육과 감정으로 질문과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요하네스 페이메르의 <장교와 웃는 소녀> 그림을 보게 됐다.


image.png요하네스 페이메르, 장교와 웃는 소녀, 1657.


장교의 풍채와 뒷모습의 실루엣으로 유추하건데, 분명히 이들의 대화는 친밀한 관계의 말은 아닐 것이다. 어두운 모자색과 허리춤에 손을 얹고 꼿꼿하게 앉아 있는 다소 권위적인 장교의 자세가 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질문에 답하는 소녀는 긴장된 표정이 아니라 웃고 있는 모습이다. 제목까지도 이를 뒷받침한다. <장교와 웃는 소녀>라고 아예 못박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말은 대화일까? 인터뷰일까? 인터뷰도 이렇게 웃는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열린 창문과 벽에 걸린 네덜란드 지도는 소녀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있고 진솔하며, 생각 또한 한 곳에 머무르는 편협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이마와 정수리를 비추는 따스한 밝은 빛이 그녀의 마음을 바로 말해주는 듯하다. 그런데 어떤 질문이 그녀를 웃게 만들고 있을까? 장교의 그 질문이 너무도 궁금하다. 한참동안 생각해 보았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슬롯를 감안해서 말이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까? 돈은 떠나서 생각해 보겠다.(행복의 근원을 돈이라고 해 버리면 돈은 그 어떤 사유도 막는 블랙홀이 될 것이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시간의 이동과 공간의 이동이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의 꿈을 품으면서 시간의 이동을 경험하고, 여행을 통해 공간의 이동을 경험한다.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집에서 일하는 소녀에게 그녀의 반복된 일상과 일하는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가능성이 희박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에서, 길을 가다 마주친 여행객들에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른다. 소녀가 가보지 못한 곳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들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녀는 마음 한 구석에 소박한 꿈을 키웠을지 모른다. '그 아름다운 곳에 갈 수 있다면...' 그런데 어느날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 장교가 소녀에게 꿈을 품는 말을 건넨다. 그녀는 얼마나 기뻤을까. 다음의 가상의 대화처럼 말이다.


장교: 그동안 집에는 아무일 없었지?

소녀: 네, 대위님! 덕분에 잘 있었습니다. 이번에 여행 다녀오신 곳이 네덜란드의 남쪽 델프트라고 하셨지요?

장교: 그렇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 너는 델프트에 가본적이 없지?

소녀: 네, 저는 이 방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어요.

장교: 그럼 내가 언젠가 한번 델프트를 구경시켜 주마

소녀: (환하게 웃으며) 정말이요? 꼭 가보고 싶어요! 시장에서 만난 어떤 여행객도 그 곳을 가봤다고 하더라구요. 한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위 소녀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인터뷰이)의 자세하고 편안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터뷰어의 질문에 달려 있다. 소녀의 온화한 표정으로 보건데, 평소에도 장교는 그녀에게 어떤 태도로 말했을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터뷰어는 딱딱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줄 때가 많다. 『오만과 편견』의 캐서린 영부인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 그리고 『이성과 감성』에서 엘리너는 어떻게 묻고 답했을까?


엘리자베스는 귄위적인 캐서린 영부인의 당혹스런 여러 질문에도 특유의 강단과 여유로 잘 대답한다. 인터뷰식의 긴장감있는 대화를 이완시키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캐서린 영부인은 커피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모든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특유의 단정적인 태도였다. 샬롯의 집안 살림에 대해 자기 일이나 되는 듯 상세하게 물어보고는 그 모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일일이 충고해 주었다. 샬롯의 집처럼 작은 집에서는 모든 일을 관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고, 암소와 닭 등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까지 지시했다. 엘리자베스가 보기에 다른 사람에게 명령할 기회만 제공한다면 어떤 주제도 이 위대한 부인이 챙기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 영부인은 콜린스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 머라이아와 엘리자베스에게도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콜린스 부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집안은 잘 모르겠지만 그만하면 아주 얌전하고 예쁜 처녀인 엘리자베스에게 더욱 큰 관심을 표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게 자매가 몇이나, 그중 언니는 몇이고 동생은 몇이나, 그중 누가 곧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으냐, 자매들이 예쁘게 생겼느냐, 교육은 어디서 받았느냐, 아버지가 가진 마차가 어떤 거냐, 어머니의 처녀 시절 성이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을 틈틈이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질문들이 너무 무례하다고 느꼈으나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캐서린 영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부친의 부동산이 콜린스 씨에게 한정 상속된다지, 자네에게는." (샬롯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기쁜 일이군. 그렇지만 그 점을 빼면 나로서는 여자들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할 이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군. 루이스 드 버그 경 집안에서는 그럴 필요를 못 느꼈지. 연주와 노래도 하나, 베넷 양?"

"조금 합니다."

"오호! 그러면, 언제 연주와 노래를 들려줘도 좋겠군. 우리 피아노는 굉장히 훌륭한 거야. 어디 내놔도 이보다 나은 건 아마……. 언니와 동생들도 연주와 노래를 하나?"

"하나가 하지요."

"왜 모두 배우지 않았지? 모두 배웠어야지. 웹브 씨네 딸들은 모두들 연주를 하는데, 그 아버지는 수입이 아가씨 아버지만큼 많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림은 그리나?"

"아니요. 전혀 못 그립니다."

"뭐, 아무도?"

"아무도요."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 그렇지만 기회가 없었던 게지. 모친께서 봄마다 런던에 자식들을 데리고 가서 좋은 선생의 지도를 받게 했어야 하는 건데."

"어머니는 그렇게 하는 데 이의가 없으셨겠지만, 아버지가 해서 런던을 싫어하신답니다."

"가정교사는 이제 더 이상 안 쓰고?"

"저희 집선 한 번도 가정교사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가정교사를 쓴 적이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가정교사도 없이 딸 다섯을 집에서 교육시키다니! 그런 일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모친께서 자식들을 교육시키느라 완전히 종살이를 했겠군."

엘리자베스는 그렇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도저히 웃음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자식들을 가르쳤지? 누가 챙겨주고? 가정교사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방치되었을 텐데."

"어떤 가족과 비교하면 방치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배우고 싶을 때 방법이 없어서 못 배운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바카라을 읽도록 권장해 주셨고, 선생님이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구해 주셨지요. 물론 게으르게 지내고 싶어한 사람은 그럴 수 있었겠고요."

"그럼, 두말할 필요도 없지. 바로 그걸 막아주는 사람이 가정교사야. 내가 만일 아가씨네 모친을 알았더라면 가정교사를 한 사람 고용하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을 텐데. 꾸준하고 규칙적인 가르침 없이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거든. 그런데 가정교사 말고는 아무도 그걸 할 수 없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많은 집에 가정교사를 구해 줬는지, 정말 흐뭇해. 젊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구해 주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젠킨슨 부인의 조카딸 네 명도 다 나를 통해서 자리를 잡았지. 바로 며칠 전에도 우연히 누가 나한테 마음에 들고 얌전한 아이 하나를 아는 집에 소개해 줬는데, 거기서 아주 만족해하고 있어. 콜린스 부인, 매트케프 부인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고 내게 들렀다는 걸 얘기했던가? 포프 양이 보물이라고 하더라고. '캐서린 영부인, 자네에게 보물을 하나 찾아 주었어요.' 하고 말하더군. 동생들 중에도 사교계에 선보인 아가씨가 있나, 베넷 양?"

"예, 부인. 모두 다 나가고 있습니다."

"모두! 그리고, 다섯이 다 한꺼번에 나간다고? 참, 별일이군! 아가씨가 겨우 둘인데 말이야. 언니들이 결혼하기도 전에 동생들이 사교계 출입을 하다니! 동생들의 독립이 아주 어릴 텐데!"

"예, 막냇동생은 아직 열세 살도 안 됐습니다. 그 애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너무 어린 게 사실이겠지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자기 몫의 사교를 즐길 수 없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장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나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이나 똑같이 젊음을 즐길 권리는 있으니까요. 단지 나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뤄야 하다니요! 그래서야 자매간의 우애에도 서로 아끼는 마음도 깊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영부인이 말했다. "아가씨는 젊은 사람이 꽤 담대하게 자기주장을 하는군. 도대체 나이가 몇인가?"

"다 자란 동생이 셋이나 있는데," 엘리자베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설마 제가 그걸 고백하리라고 기대하시지는 않겠지요."

캐서린 영부인은 바로 답변을 듣지 못하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그토록 오만불손한 그녀의 태도를 감히 농담으로 받아친 첫 번째 인물이 아닐까 짐작했다.

"스물이 넘었을 리는 없어. 분명히. 그러니 나이를 숨길 필요는 없네."

"스물한 살은 안 되었습니다."

...... <2부 6장 중에서>


캐서린 영부인은 조카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거라는 소문에 다짜고짜 찾아와서 인터뷰식의 공격적 질문을 쏟아낸다. 이 장면에서도 압박 면접같은 분위기, 영부인의 취조식 질문에 유쾌하게 답변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캐서린 영부인은 자신의 신분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논리적 허점을 노출시킨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영부인의 부당한 압박에 휩쓸리지 않고 때로는 답변을 거부하거나 송곳같은 반박 논리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멋진 인터뷰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이 작은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캐서린 영부인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베넷 양,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연유를 잘 알고 있겠지요, 베넷 양 자신의 마음, 자신의 양심이 내가 왜 왔는지 말해 줄 테니."

엘리자베스는 정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잘못 아셨습니다, 영부인. 저는 여기서 영부인을 왜 뵙게 됐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베넷 양." 하고 영부인이 노기 띤 어조로 대답했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나를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게야. 그러나 아가씨가 아무리 불성실하기로 작정하더라도 내가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할 거요. 내 성격은 성실하고 솔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우에도 분명 그런 성격대로 처신할 게야. 아주 놀라운 소식 하나가 이틀 전에 내 귀에 들리더군. 내가 듣기로는 언니가 아주 유리한 결혼을 하게 될 찰나일 뿐만 아니라, 바로 엘리자베스 베넷 양 당신도 내 조카인 다아시 씨하고 곧 맺어질 거라고. 이것이 추문에 가까운 허위가 분명하다는 것을 내 모르지는 않지만, 또 도대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조카를 욕되게 하는 셈이 되겠지만, 즉시 이곳으로 와 내 기분이 어떤지 아가씨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지."

"사실일 수 없다고 믿으신다면," 하고 엘리자베스는 놀라움과 경멸감으로 얼굴을 밝히며 말했다. "왜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으로 그렇게 하신 것인지요?"

"그런 소문이 터무니없다는 걸 당장 만천하에 알리려는 거지."

"저와 제 가족을 만나시러 롱본에 오신 것으로," 하고 엘리자베스는 냉정하게 말했다. "오히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될 텐데요. 만약에 정말로 그런 소문이 존재한다면 말씀입니다만."

"만약에라고! 그럼 그걸 모른다고 시치미 뗄 터인가? 그게 아가씨가 아가씨 입으로 열심히 퍼뜨린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 소문이 세상에 다 퍼져 있다는 걸 모른다고?"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게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도 분명히 말할 수 있나?"

"저는 영부인만큼 그렇게 솔직하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질문을 하시는 것은 자유시지만 제가 꼭 모두 대답해 드린다고는 못하겠군요."

"이거 정말 참을 수가 없군그래. 베넷 양, 난 알아야겠어. 그래, 그 사람이, 내 조카가 청혼하던가?"

"영부인께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씀하셨지요."

"그래야지 암. 그 애가 이성이란 걸 지니고 있는 한. 그렇고말고. 그렇지만 아가씨가 온갖 교활한 기술로 유혹하면 얼이 빠져서 자기 자신과 가문에 대한 의무를 망각할 수도 있어. 아가씨가 그 애를 꾀었을 수는 있다고."

"설령 그랬다면 더욱이 제가 자백할 리가 없지요."

"베넷 양, 내가 누군 줄 아나? 난 그따위 말을 듣는 데에 익숙지 않아. 난 이 세상에서 그 애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고, 그 애한테 중요한 일은 모두 알 권리가 있어."

"그렇지만 영부인께선 제 일까지 아실 권리는 없으십니다. 더구나 이런 태도로는 결코 제게서 한마디도 못 들으실 겁니다."

"내 말 잘 들어. 아가씨가 주제넘게 덤비는 이 결혼은 성사될 수가 없어. 없지, 없고말고. 다아시는 내 딸하고 약혼한 사이니까. 그래, 할 말 있나?"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영부인께서 그분이 제게 청혼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이유가 없으실 텐데요."

......

"왜냐하면 명예, 예의, 분별, 아니야, 이해관계가 그걸 금하기 때문이지. 그래, 베넷 양, 이해관계란 거야. 만약

에 아가씨가 고집을 부려서 모든 사람의 뜻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인정받을 생각은 말아야 하니까. 아가씨는 그 사람하고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경멸당할 거야. 아가씨 편이 되는 것은 수치일 테고,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아가씨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거라고."

"커다란 불행이군요." 하고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다아시 씨의 부인 자리쯤 되면 특별히 좋은 일들이 생기게 마련일 테니, 전체적으로 봐서 후회할 이유가 없을 것 같군요."

"이런 쇠고집, 고집통이 같으니! 내가 다 부끄럽군! 지난 봄에 내가 베풀어준 친절에 대한 감사가 이것인가 그래? 그 점에서 내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나?

자 앉아, 베넷 양.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내가 목표를 관철시키고자 단단히 결심하고 여기 왔다는 거야. 생각을 돌리지도 않을 거고. 난 남의 변덕에 따라 내 생각을 바꿔본 적이 없어. 실망하는 일, 나 참고 못 보는 사람이야."

"그러시다면 현재로선 영부인의 입장이 더욱 딱해지시겠지만요. 저한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

"내가 말할 때는 끼어들지 마. 잠자코 듣고 있으란 말이다...."

<483-487 중에서>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는 조금 더 고도의 인터뷰 기술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엘리너는 루시 스틸과 대화를 이어가는데 루시 스틸은 자신이 에드워드 페라스와 4년째 비밀 약혼 중임을 은밀히 털어놓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비밀 약혼 사실을 들은 엘리너는 속으로는 매우 큰 충격을 받지만 표정을 철저히 관리하며 냉철한 기자처럼 사실 관계를 파악한다. 차분하게 질의응답을 이어나가면서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엘리너의 모습을 한번 눈여겨 볼 만하다.


"다른 사람일 수가 없어요." 하고 루시가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파크 가의 페라스 부인의 장남이자, 당신의 올케인 존 대시우드 부인의 동생인 에드워드 페라스 씨, 제가 말하는 분은 바로 그분입니다. 아무렴 제가 제 모든 행복이 달려 있는 남자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기야 하겠어요."

"이상해요." 혼란에 빠져 괴로워하며 엘리너가 대답했다. "그분이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듣지 못했으니 말예요."

"아뇨, 우리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이상할 것 없어요. 우리가 제일 신경 쓴 것이 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저에 대해서, 혹은 제 가족에 대해서 몰랐고, 그러니 당신한테 제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이는 늘 자기 누나가 의심할까 봐 특히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이가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충분했어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엘리너의 확고한 믿음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녀의 자제력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 년 동안이나 약혼 상태로 지냈군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하느님만이 아시죠. 가엾은 에드워드! 그 때문에 속이 타고 있어요." 그러고선 주머니에서 작은 세밀화를 하나 꺼내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만에 하나 오해가 있을까 봐 그러는데, 부디 이 얼굴 한번만 봐주세요? 그이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그린 건지 못 알아보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이걸 지닌 지 어언 삼 년이 지나갔군요."

그녀는 말하면서 그것을 엘리너의 손에 쥐어주었다. 엘리너는 그 그림을 보자, 너무 성급하게 결론짓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도 하고 거짓을 찾아내고 싶기도 해서 무언가 의혹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지언정 그것이 에드워드의 얼굴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닮았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거의 즉시 그것을 돌려주었다.

"전 제 초상을 답례로 줄 수가 없었어요." 하고 루시가 계속했다. "참 속상한 것이, 그이는 늘 제 초상을 너무 얻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오기만 하면, 화가 앞에 앉기로 작정했답니다."

"아주 잘 생각하셨네요." 엘리너가 침착하게 대꾸하였다. 그러곤 몇 걸음을 말없이 걸었다. 루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 비밀을 꼭 지켜주실 것을 세상없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일이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그이의 어머니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테니까요. 그분은 약혼을 인정 안 하실 게 분명해요. 저한텐 재산도 없을 테고, 짐작키로는 무척 거만한 분일 것 같은데."

"당신더러 비밀을 말해 달라고 한 것은 분명 아니지만," 하고 엘리너가 말했다. "그냥 절 믿으셔도 돼요. 당신의 비밀은 엄수하지요. 그러나 왜 그렇게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건 아무래도 의외라고 해야겠네요. 제가 알게 되는 것이 비밀 유지에는 보탬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느꼈을 텐데."

이 말을 하면서, 그녀의 얼굴빛에서 뭔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루시를 눈여겨보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해 온 것이 대개 거짓이라는 그런 기미가 있나 해서. 그러나 루시의 안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다 하게 되면 당신한테 너무 마음대로 대한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답니다." 하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알게 된 지는 오래지 않지요. 그야 그렇죠,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말이죠.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서 전 당신과 당신 가족 모두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보자마자, 꼭 오래전부터 알던 분 같았답니다. 게다가 이번 경우에는, 제가 에드워드의 어머니에 대해서 그런 상세한 질문까지 한 연후라서, 무언가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고, 불행하게도 충고해 달라고 청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앤이 그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언닌 판단력이 전혀 없어요. 전 늘 언니가 들통을 내버리면 어떡하나 하면서 지내니까 실상 언닌 덕보다 해를 끼치고 있어요. 언닌 말예요, 당신도 아실 테지만, 혀를 놀리면 안 될 자리를 몰라요. 지난번에는 놀라서 세상에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존 경이 에드워드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 말예요. 언니가 다 토설해 버리면 어쩌나 했답니다. 그 약혼 일로 제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지난 사 년간 에드워드 때문에 갖은 고생을 하고도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랍니다. 모든 것이 어정쩡하게 불확실하니까요. 그리고 그이를 거의 만날 수도 없고요. 일 년에 두세 번 볼까 말까 한답니다. 제가 아주 상심해 버리지 않은 것이 놀랍다니까요, 글쎄."

여기서 그녀는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나 엘리너는 그다지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은," 하고 루시는 눈물을 닦은 후 말을 이었다. "이 문제를 완전히 끝장내 버리는 것이 우리 둘 다를 위해서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기의 동행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막상 결단을 내리지는 못해요. 그이를 불행에 빠뜨린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거든요. 그런 말을 꺼내기만 하면 그이는 불행해질 테니까요.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고요. 그이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해서……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기만 하고. 이런 경우에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충고하실 건가요, 대시우드 양? 당신이 이런 처지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미안합니다만," 이 질문에 놀라서 엘리너가 답했다. "그런 상황에서 충고를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야지요."

"확실한 건," 양측에서 몇 분간 침묵이 있은 후, 루시가 계속했다. "그이 어머니가 언젠가는 그이한테 재산을 물려주긴 하겠지요. 그러나 에드워드는 딱하게도 아주 낙담하고 있어요! 그이가 바턴에 왔을 때 끔찍하게 의기소침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는지? 당신을 보러 가려고 롱스테이플에서 우리와 헤어졌을 때 그이가 너무 비참한 기분이어서. 전 당신이 그이가 병이 난 걸로 생각할까 두려웠답니다."

"그러면 당신의 삼촌 댁에서 오신 거예요, 그이가? 우리를 방문했을 때?"

"아유! 그럼요. 그인 우리하고 보름을 머물렀어요. 그이가 런던에서 바로 온 걸로 생각하셨나요?"

"아닙니다." 새로운 상황이 드러날 때마다 루시의 말에 신빙성이 생겨나는 것을 절감하면서, 엘리너가 대답했다. "친구들과 플리머스 근처에서 보름간 머물렀다고 한 말이 기억나는군요." 그녀는 그가 그 친구들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의 이름도 완전히 함구하여 놀랐던 일도 기억이 났다.

"그이가 기운이 쭉 빠져 있다고 생각지 않았나요?" 루시가 되풀이했다.

"그랬죠, 특히 처음 도착했을 때 그랬어요."

"전 당신이 무슨 일인가 의심할까 봐 힘을 내라고 간청했죠. 그러나 우리하고 보름밖에 같이 못 있게 된 데다 제가 너무 슬퍼하는 걸 보고는, 아주 우울해졌답니다. 너무 안됐어요! 지금도 꼭 마찬가지가 아닌가 해요. 비참한 심정으로 편지를 써 보내니까요. 엑서터를 떠나기 직전에 소식이 왔는데," 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서 주소를 엘리너한테 슬쩍 보이고는, "그이의 필체를 아실 거예요. 아주 매력적이지요, 그렇죠? 그렇지만 평소만큼 잘 쓰진 못했어요. 피곤했던 거지요, 암요, 저를 위해서 그 편지지를 꽉꽉 채운 참이었으니까요."

엘리너는 그것이 그의 필체임을 알았다. 이제 더는 의심할 수 없었다. 세밀화는 구태여 의심하자면 우연히 얻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가 준 선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확실한 약혼 상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로, 달리 있을 수가 없었다. 잠시긴 하지만, 그녀는 거의 쓰러질 뻔하였다. 억장이 무너지면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힘을 짜낼 수밖에 없었고, 꼿꼿하게 버티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했다. 바로 뜻대로 되어 일단은 완전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서로 편지를 쓰는 것만이." 하고, 그 편지를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으면서 루시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으면서 우리가 누리는 유일한 위안이지요. 그래요, 그래도 그이의 그림이 있으니 한 가지 위안이 더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불쌍한 에드워드한테는 그것조차 없다고요. 제 초상만 있다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하던데. 전번에 그이가 롱스테이플에 있을 때, 제 머리카락을 끼운 반지를 주었지요. 그게 좀 위안은 되지만 초상화만큼은 하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이를 만났을 때, 혹 반지를 보셨을 수도 있을 텐데."

"봤습니다." 엘리너는 말했다.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가 이전에 느꼈던 어떤 것보다도 더한 격한 고통이 감추어져 있었다. 마음이 상하고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졌다.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이제 코티지에 당도하였고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스틸 양 자매는 그들과 잠시 앉아 있다가 파크로 돌아갔다. 그리고 엘리너는 이제야 마음대로 생각도 하고 슬픔에도 빠질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2부 1장 중에서>


엘리너와 루시 스틸의 대화는 이중적 인터뷰 구조를 보여준다. 즉 겉으로 보이는 역할과 실제 대화를 주도하는 목적이 서로 반대로 뒤집혀 있는 역설적 인터뷰 구조라는 것이다. 표면적 구도에서는 엘리너가 인터뷰어로서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경청하며, 상대의 증거를 검증 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루시는 인터뷰이가 되어 질문에 답하고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역할을 띠고 있다. 실제 심층적 구도에서는 루시 스틸이 실질적 취재자이자 탐색자가 되어 "에드워드와 나는 사실 약혼한 관계이다"라는 폭탄 선언을 던진 후, 엘리너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살피고 있다. 루시 스틸은 엘리너의 반응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고 시험을 한다. 엘리너는 정신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억장이 무너지면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아주 잘 생각하셨네요."처럼 냉정하고 중립적인 인터뷰어로서의 태도를 견지한다.


루시 스틸은 주도권 확보를 위해 묻지도 않은 에드워드 어머니와의 갈등, 언니 앤 스틸의 무능함 등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이라며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프레임을 짜거나 혹은 "당신이 이런 처지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으며 감정적 조언을 구하는 유도적 질문을 던지지만, 엘리너는 "그런 상황에서 충고를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야지요.""라며 개인적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자 한다. 중간 중간 "그이가 기운이 쭉 빠져 있다고 생각지 않았나요?"라거나 "혹 반지를 보셨을 수도 있을 텐데"처럼 역질문을 던져 엘리너가 에드워드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시험하지만, 엘리너는 그것을 의도 파악을 위한 질문으로 여기고 침착함을 유지한다. 루시가 에드워드와의 약혼 비밀을 지켜달라고 할때도, "왜 그렇게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건 아무래도 의외라고 해야겠네요."라며 상대방이 정보(비밀)를 제공하는 진짜 동기와 의도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요컨대, 위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평범한 대화이지만, 둘 사이의 치밀한 심리전이 돋보이는 인터뷰 형식의 대화라 할 수 있다. 인터뷰에는 물증 제시, 진위 검증, 반응 탐색, 감정 억제 등의 기법들이 있는데, 위 대화에는 그런 요소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엘리자베스와 엘리너의 대화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는 능력과 상대의 논리에 휘쓸리지 않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어떤 압박과 위기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그런 능력을 가졌던 것일까? 베넷 부인은 허영심이 많고 베넷 씨는 다소 우유부단하지만 위트를 와 재치를 지니고 있다. 엘리자베스의 여동생들(메리, 캐서린, 리디아)은 개성이 강하고 고집도 세다. 사교 모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캐서린과 리디아, 그리고 철학서나 설교집 등의 바카라들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고 읽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보다는 그대로 인용하려 하는 메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 엘리자베스이다. 아버지 서재를 좋아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면 어려서부터 아버지와의 무수한 토론과 논쟁을 즐겼을 법하며, 논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다아시와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편견을 깨닫는 매우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사람보는 눈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더욱 신중한 판단력을 갖게 됐을 것이다. 삶의 통찰력이란 자신의 경험과 깊은 성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이성과 감성』의 엘리너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읽은 바카라들 속에서만 답을 구하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과 이사, 여동생 메리언과 윌로비와의 관계를 보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 이를 통해서 보니 엘리자베스와 엘리너는 상대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그 어떤 경직된 대화도 이완시킬 수 있고, 돋보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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