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amiable"이라는 어휘가 문학 작품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흥미가 생겼다. 이 단어는 "상냥한", "붙임성이 좋은", "누구에게나 호감이 있는"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친절해 보인다는 뜻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상냥함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19세기 영문학(20세기 일부 영문학도 좋다)을 좋아하는 내가 읽었던 바카라 중에서 어떤 인물들이 이 단어의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지 한번 떠올려 보면, 우선 『빨강머리 앤』 주인공 Anne이 떠오른다. 몇 장면을 살펴보자. 앤이 처음 만난 다이아나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보이며 친구가 되는 장면은 "amiable" 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달라고 제안하고 자신 또한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매츄 아저씨를 향한 따뜻한 애정에서도 앤의 호감있는 따뜻한 모습이 보인다. 항상 자신을 이해해 주는 매츄 아저씨에게 앤은 늘 다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이 따뜻함을 알기에 매츄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 앤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자신의 외모를 비난하는 린드부인에게 앤은 화를 내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자존심보다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는 태도 또한 앤의 "amiable" 모습이다.
『작은 아씨들』의 베스(Beth)는 어떤가? 베스는 자신의 불편과 위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로런스 할아버지와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나, 가난한 훔멜 가족을 방문하여 간호하다가 성홍열에 걸렸어도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을 염려하는 모습, 조를 위로하는 모습에서 모든 이들이 그녀를 "amiable"하게 여긴다.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나는 하얀 도화지에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를 그리고 또 그렸다. 이들 자매들의 따뜻함과 상냥함에 매료되서 말이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어머니의 여행 경비를 위해서 자신의 아끼는 머리를 잘라서 돈을 마련해드리는 조의 모습, 가난한 이웃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베스의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 내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날, 오빠가 장난을 쳐서 내 소중한 그림들을 장작이 타오르는 아궁이에 집어넣으려는 시늉을 했다. 내 그림이 사라지는 것도 슬프지만, 그동안 이들 자매와 조용히 나누었던 나의 시간들(상냥함을 배웠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았다. 다행히 오빠는 아궁이에 넣지 않고 그림을 돌려주었다.
누군가의 첫 모습이 "amiable"한 모습이라면 상냥한 인물로 그를 단정하여 쉽게 믿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에서 위컴은 무뚜뚝하고 오만해 보이는 다아시와 대비될 정도로, 잘 웃고 말도 잘하며 예의도 바르다. 이렇게 슬롯성있고 호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주위 사람들은 위컴에게 쉽게 빠진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고, 그녀의 동생 리디아는 심지어 그와 사랑의 도피까지 감행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그 모든 환경이 낯설어서 한참동안 고생을 했다.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야하는 중학교였고,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각 반으로 흩어졌다. 처음 보는 아이들의 거친 말과 놀림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어느날 뒷자리에 앉은 K라는 여학생이 웃으며 사탕한개를 주었다. 상냥함으로 감싼 사탕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내 마음도 부드럽게 녹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것도 알려주면서 낯선 중학교 생활의 초반을 잘 극복해 나갔다. 그런데 K는 공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특히 수학 시간을 싫어해서 선생님이 문제 풀라고 시키시면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공부를 안하니 수학 실력이 오를리 없다. K는 점차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학교에 빠지는 날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위컴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거짓말을 하고, 바카라임을 회피하며, 돈때문에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인물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처음 사람들이 느낀 매력은 결코 그의 인격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위컴과 같은 인물은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성과 감성』의 윌로비나 『에마』의 프랭크 처칠 등이다. 다아시는 이와 정반대이다. 처음에는 전혀 상냥하거나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차가운 그를 전혀 "amiable"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바카라임감이 강하고 정직하며 약속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이쯤하니 여러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과연 상냥함(amiability)은 말그대로 상냥한 것일까? 붙임성이 있고 호감을 주는 그런 상냥함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냥함은 과연 좋은 것일까? 우리는 상냥함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할까? 상냥함은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니면 뭔가 뜻한 바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여주는 외양은 아닐까? 위컴이나 윌로비의 실체를 알고 나면 그들을 과연 상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백구 한마리를 키웠다. 밥 먹을때도 백구를 가까이 하는 나를 보고 백구에게 큰 애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마디 덧붙이셨다."그 상냥함과 친절함에 길들여지면 안된다."
다아시는 상냥함보다는 도덕적 일관성(integrity)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다아시와 위컴과의 대비를 통해 상냥함이 얼마나 허상일 수 있고, 허울좋은 이미지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상냥함은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마음이 쉽게 움직이는 후크(hook)가 될 수 있는지도 말이다. 반면 도덕적 일관성은 처음에 매혹적인 옷을 입고 있지 않는다. 그것은 찬찬히 오래 봐야 하는 것이고, 도중에 편견과 수많은 오해를 극복해야 그 본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아시처럼 말이다. 다아시의 인격을 알고 나면 위컴과 윌로비는 상냥했던 사람이 아니라 상냥함의 옷을 입었던 사람이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 따라 그 옷을 재빨리 갈아 입었던 사람일 뿐이다. 이들을 통해 상냥함이 얼마나 부박한지, 그리고 도덕적 일관성이야말로 얼마나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르더라고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게 된다. 이제 앤과 베스를 그저 상냥한 사람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따뜻함과 도덕적 일관성을 지닌 진실된 사람들이라고 다시 불러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상냥함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 옷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상냥하게 대해 주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경계의 끈을 느슨하게 한다. 리어왕이 고너릴(Goneril)과 리건(Regan)의 말을 그리 쉽게 믿었던 이유는 이들의 상냥함이었다. 막내딸 코델리아(Cordelia)의 진심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전혀 상냥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의 삶이 편안하며 위태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 숲』의 나오코는 늘 상냥하고 부드러워서 그녀의 깊은 상실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누군가의 상냥한 모습은 나를 위한 것일까? 그를 위한 것일까? 『오만과 편견』의 캐서린 영부인이 상대방에게 상냥함과 예의를 강하게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상대블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편안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춘기 아이가 쉽게 방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좀 상냥하게 대해주면 안되겠니?" "엄마, 다른 애들도 다 그래.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야."
언젠가 떠나갈 백구와의 이별에 상처받을까봐, 백구와 너무 살갑게 지내지 말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이 늘 서운했지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면서 상냥함에 매혹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상냥함보다는 도적적 일관성과 진실됨이 우리 삶에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에게 상냥함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 상냥함이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상냥함(amiability)의 허울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