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50.『노생거 사원』에서 캐서린의 주도성과 통찰의 한계

by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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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텍스트 분석이 우선이니, 텍스트에 기초하여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을 다시 분석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The Jane Austen Remedy』에서 루스 윌슨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두고두고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캐서린 몰런드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친구들과 나누는 그녀의 대화의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그녀가 바스에서 친분을 나누게 된 소프 남매와의 대화에 초점을 두면서 그것이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삶에서 잘못된 만남이란게 있을까. 어떤 만남이든 그 시점에는 절실히 필요했고, 나름 행복했으니 만남을 가졌을 터이니 말이다. 흔히 결과론적으로 보면서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잘못된 만남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필요하고 괜찮은 만남이었다고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저벨라를 욕심많고 제멋대로의 이기적인 여성으로서 캐서린에게 하등 도움이 안되는 친구로 보기 시작한다. 반면 헨리 틸니의 누이동생인 엘리너 틸니야말로 배려심많고 마음이 따뜻한, 캐서린이 친분을 쌓아야 하는 진정한 친구로 보인다. 제인 오스틴이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인물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이저벨라 같은 친구를 멀리하고 엘리너 같은 사람과 만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캐서린 몰런드가 이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대화를 이어나가고, 어떤 관계로 발전해가는지 그 양상을 주목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캐서린이 이 대화와 만남을 어떻게 이끌어갔는지, 그 속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주체성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여주인공으로서 우뚝 서지 못하는 한계는 어디에 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노생거 사원』은 세상 물정 모르는 미숙한 캐서린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어떻게 내적으로 성장해 가는지 그 여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캐서린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여기서 던져볼 첫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저벨라 소프와 캐서린의 만남에서 누가 먼저 대화를 건넸을까? 이저벨라가 먼저 접근했을까?, 아니면 캐서린이 먼저 접근했을까? 앨런 부인이 바스 여행에 그녀를 데려간다고 했을때, 캐서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했을까? 만약 캐서린이 집 떠나기를 무서워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면 결코 이웃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보니, 나 역시도 그랬으니 말이다) 알고보니, 캐서린, 용감하고 당찬 구석이 있다. 특별할 게 없고, 고딕 소설 주인공에 맞지 않은 평범한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이런 배경이어서 독자는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밀착하고 읽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의 캐서린 몰런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타고난 여주인공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분과 양친의 면모로나 본인의 용모와 성품으로나 무엇 하나 그럴 만한 데가 없었다. 아버지는 목사로서, 무시를 당하거나 가난하지는 않았으며, 꽤 대접을 받는 편이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름이 리처드인데다가 인물이 워낙 시원찮았다. (9)


앨런 부인의 옛 학교 친구인 소프부인이 먼저 다가와 자식 자랑을 한다. 알고보니 소프부인의 아들이 캐서린 오빠의 친구라는게 밝혀졌다. 자식들을 사교계에 보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인맥을 만들어주고 싶은게 부모마음이라는거 이해하지만, 소프 부인은 친구를 만나자 딸들 자랑에 신이 난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소프 부인의 딸들이 사교에 적극적이다. 그리고 휴양지 바스의 분위기와 더불어 이저벨라와 캐서린의 우정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빠르게 진전된다.


모든 일이 설명되었고, 소프네 딸들 입에서 그녀와 더 잘 알고 싶다는 등, 오빠끼리 친구 사이이니 이미 친구 아니냐는 등 자상하고 친절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말을 들은 캐서린은 너무도 기뻐 자기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예쁜 표현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우정의 첫 증거로써 그녀는 곧 맏이인 소프 양이 건네는 팔을 끼고 방 안을 한바퀴 돌았다. (36)


캐서린은 이저벨라에게 끌려가는 수동적인 여성은 아니다. 고딕소설, 로맨스 소설에 대한 대화에서는 캐서린이 더욱 적극적이다. 단순히 듣기만 하는게 하니라, 고딕 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계속 표현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질문하고 공감하고 상상력을 덧붙이면서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캐서린, 오늘 아침 내내 뭐 했어? <우돌포>는 좀 읽었어?"

"응, 일어나서부터 계속 읽었어. 검은 베일까지 갔단다."

"정말? 멋져! 오! 검은 베일 뒤에 뭐가 있는지 세상없어도 얘기하지 않을 거야! 너무너무 알고 싶지 않아?"

"아! 그럼 당연하지. 어떻게 돼? 아니, 말하지 마. 절대 듣지 않을래. 해골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분명 로렌티나의 해골일거야. 아이! 이 바카라 너무 좋아! 이 바카라 읽으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어. 너하고 만나는 일만 아니었다면 세상을 다준다 해도 손에서 놓지 않았을 거야. 정말이야."

"아이 참, 정말 고맙다. 얘 그리고 <우돌포>를 끝내고 나며, 우리 <이탤리언>을 같이 읽자. 너 주려고 같은 종류의 소설 목록을 열 두개쯤 뽑아 놓았어."

"그랬어, 정말? 너무 좋아! 그게 뭔데?"

"제목을 바로 읽어줄께. 여기 내 수첩에 목록이 있어. <울펜바흐의 성>, <클러몬트, 비밀의 경고, 검은 숲의 네크로맨서, 한밤의 종소리, 라인강의 고아, 끔찍한 미스터리야. 이 정도면 버티겠지."

"응, 한참 버티겠는걸. 그런데 전부 다 무시무시해? 정말 무시무시한 거 맞아?"(46-47)


혹자는 자신이 읽은 작품들을 줄줄이 언급하고 있는 모습에 이저벨라가 고딕 소설 대화에 더욱 적극적이라고 말하질 모르지만, 고딕 소설에 관한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살리는 역할을 하는 이는 바로 캐서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돌포의 비밀』같은 작품에 대해 말할 떄, 캐서린은 소설의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면서 대화의 에너지를 끌어 올린다. 이저벨라가 주제를 던지고 겉으로 보기에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상상력을 덧붙이고 그 활력을 불어 넣는 이는 바로 캐서린이다.


캐서린이 노생거 사원의 헨리 틸니 장군의 집을 돌아다니며 저택의 비밀을 발견하고자 하는 적극성도 여기서 기인한다. 고딕 소설에 중독된 캐서린은 그 오래된 저택에 분명히 잔혹한 비밀이나 범죄의 흔적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녀의 상상력은 그칠 줄 모르고 틸니 장군의 엄격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면서 더욱 확대된다. 장군이 아내를 살해했거나 사원의 비밀 지하 감옥에 가두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는 다 사실이 아니었다.막상 들어가 보니 틸니 부인의 방은 지나치게 환하고, 현대적이며, 아주 아늑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읽었던 고딕 소설 속 음침한 감옥의 흔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캐서린의 빛나는 활발함, 상상력, 주도적 자세는 헨리 틸니와의 대화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헨리 틸니가 압도적인 말솜씨를 보여주고 지적 주도권을 보여주고 있어서 캐서린이 오히려 그의 대화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가씨, 제가 고기와는 달리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꽤 잘 안답니다. 여성들은 평이한 문체로 글 쓰는 솜씨가 있다고들 한느데, 그런 솜씨를 길러 주는 것이 바로 일기를 쓰는 이런 즐거운 습관이지요. 기분 좋은 편지를 쓰는 재주가 여성 특유의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고요.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저는 그 재능도 근본적으로 일기 쓰는 습고나 덕분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가끔은 생각했어요."하고 캐서린이 긴가민가하면서 말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편지를 훨씬 잘 쓴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전 우리 여성 쪽이 항상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금까지의 제 판단으로는 여성들끼리 주고받는 편지의 통상적인 스타일은 세 가지 점만 빼면 완벽해요."

"그게 뭔데요?"

"일반적으로 주제가 없다는 점, 마침표를 찍을 줄 모른다는 점, 문법을 자주 틀린다는 점."

"세상에! 찬사를 어떻게 되돌려 드려야 하나 하는 걱정은 안해도 되겠네요. 우리 여성들을 높이 봐서 그런 말씀을 한건 아니실 테지요."

"여성이 남성보다 편지를 잘 쓴다는 것이 무슨 일반 원칙이라는 건 아닙니다. 이중창을 더 잘한다거나 풍경화를 더 잘 그린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취향이 바탕을 이루는 능력이라면 아주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죠. 남성이 우월할 수도 있고 여성이 우월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29)


헨리는 여성의 일기 쓰는 습관이 편지 쓰는 재능으로 이어진다면 대화를 이어간다. 편지 쓰기 능력에 관한 지적 공방이 이어지는데 캐서린은 "여성이 남성보다 편지를 잘 쓴다"는 세간의 평에 동조하는데 헨리는 "주제도 없고 마침표도 찍을 줄 모르고, 문법도 자주 틀린다"고 하면서 이 세가지 결점을 단점으로 꼽으면 반전 유머를 실어 말한다. 이후 남녀의 능력은 취향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다고 하는 나름의 균형 잡힌 결론으로 대화를 매듭짓고자 한다.(소설에서 다음 장면에서는 앨런 부인이 갑자기 끼어들어 모슬린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이 장면에서 헨리는 비유와 역설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대화의 템포를 조절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반면 캐서린은 헨리의화려한 언변에 이끌려 다니며 그의 장난 섞인 비판에 "그게 뭔데요?"라고 질문을 던지거나 "세상에!"라고 놀라는 등 수동적이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캐서린의 삶에 대한 통찰력은 아직 미흡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를 소설의 당당한 여주인공으로 끌어 올리기에 주저하는 것이다. 만약 같은 주제로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어서 제인 오스틴 소설 여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엘리자베스라면 다아시와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팽팽한 대화를 이어갈테닌 말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와의 대화라면 분명 그 대화의 온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한번 그들의 대화를 머리 속에 그려보자. 특히 편지 쓰기에 대한 지적 공방에 대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다아시: (바카라을 덮으며 엘리자베스를 똑바로 바라본다) "일기 쓰기가 편지 쓰기 능력을 길러준다는 말도 있지만, 숙녀들의 편지에는 대개 세 가지 명백한 결점이 존재합니다."

엘리자베스: (자수를 멈추고 눈을 반짝이며) "결점이라니요? 다아시 씨가 내리는 엄정한 평결이라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 대단한 세 가지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다아시: "첫째는 일관된 주제가 없이 성급하게 화제가 바뀐다는 점, 둘째는 문장 부호를 제멋대로 찍는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은 문법을 종종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만 제외하면 통상적으로 보기 좋은 편지겠지요." 엘리자베스: (소리 내어 웃으며) "그것참 신랄하군요!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딱딱한 신사들의 글보다, 비록 문법은 조금 틀릴지라도 진심과 감정이 살아있는 숙녀들의 편지가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으시나요? 남성이 항상 우월하다는 그 오만을 조금만 내려놓으신다면 말이에요."

다아시: (엘리자베스의 반박에 묘한 매력을 느끼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오만이라뇨, 저는 그저 공평한 관찰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비록 당신의 그 날카로운 반박 앞에서는 제 관찰도 무력해지는 것 같지만요.


캐서린이 시골의 평화로운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점과, 그녀가 고딕 소설에 과도하게 몰입되어 일종이 프레임 오류로 인하여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통찰력의 부재는 바스에서 존 소프 남매와의 만남에서 인간관계와 각 상황을 오판하는 장면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저벨라의 가식적인 아부를 진정한 우정으로 착각한다든지, 존 소프의 강압적이고 무례한 구애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들 말이다. 캐서린은 존 소프가 틸니 가문과의 만남을 방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도 끝까지 그를 믿는 답답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찰의 한계에도 캐서린은 성장 가능성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우선, 캐서린은 바스에서 친분을 쌓았던 이저벨라를 단칼에 끊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오빠 제임스를 배신하고 돈 많은 프레데릭 틸니를 유혹하는 모습을 캐서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과거의 순진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저벨라의 위선을 정확히 궤뚫어보고 더 이상 그녀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관계를 정리한다. 또한 캐서린은 자신의 실바카라을 즉시 인정하는 겸손함도 보여준다. 자신의 과열된 상상력을 헨리에게 들키고 혹독한 독설을 들었을 때 그녀는 세세히 변명하거나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밤새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반성을 한다. 오만함을 버리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소설 후반부에 틸니 장군이 그녀를 저택에서 쫓아낼 때 하인도 없이 혼자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울기 보다는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소설 읽기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주인공이 겪는 일들과 감정의 혼란, 극복의 방식 등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바로 통찰을 얻는 것이다. 오늘도 『노생거 사원』을 펼치며 가슴이 두근대는 이유는 이 소설 읽기에서 나는 어떤 통찰의 한 조각을 얻을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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