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49. 제인 오스틴이 해군 장교를 그리는 모습은?

by제이오름
Gemini_Generated_Image_8r5dqu8r5dqu8r5d.png

시대마다 칭송받는 직업군이 있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영국에서 그녀는 어떤 직업에 가치를 부여했을까. 당시 영국에서 해군 장교나 선원은 슬롯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 프라이스의 오빠인 윌리엄도 해군이었고, <설득>의 웬트워스 대령도 해군이었다. 소설에서 작가는 이들에 대해 존경과 신뢰를 담아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image.png필립 공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은 해군 장교였다. 해군 제복을 입은 그의 훤칠한 모습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세상 모든 여성의 마음을 훔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해군으로 훈련된 세련된 자태 등 여러모로 매력이 넘친다.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 전, 필립공은 해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매우 강했고, 결혼해서도 직업을 이어가길 바랬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필립공이 해군장교로 복역한 사실은 영국 국민들에게 일하는 왕실 이미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자신도 2차세계대전 당시 군용차량 정비교육을 받거나 트럭 운전병으로 활약했는데, 그 영향으로 이후 영국 왕실의 왕자들 또한 해군이나 군 복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다시 제인 오스틴 소설로 돌아와 보자. 작가가 소설에 그리는 해군 인물들은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이상적인 인물로 보인다. 해군들은 태생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취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윌리엄이나 웬트워스처럼 귀족이 아니어도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해군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이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윌리엄이 동생 패니에 대해 보여주는 사랑과 애정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들은 성실하고 바카라임감이 강하며 가족애도 돈독하다. 겉치레보다 내면이 단단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오누이 사이에 즐거운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신이 난 윌리엄의 마음에는 만사가 재미있는 소재가 되어, 고상한 화제 사이사이에 장난과 우스갯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로 출발한 경우에도 고상한 화제는 결국 모두 스러시 함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다. 스러시 함에 대한 찬사와 스러시 함이 투입될 임무의 예측, 우세한 적과의 전투에 임해 승진을 최대한 당기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포부, 혹은 포상금에 대한 짐작과 포상금을 받으면 식구들한테 넉넉히 나누어 주되 패니하고 중년과 노년을 함께 지낼 작은 오두막을 한채 마련해 안락하게 꾸밀 돈 만큼은 따로 떼어 놓겟다는 계획으로 끝난 것이다(540-531)


해군은 육지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상승 이동하려 한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스러시 함이 바다에서 이동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흥분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해군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바다와 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등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이동을 한다. <설득>에서의 해군은 기존 귀족들과의 대비를 통해 그 존재감이 더욱 뚜렷하다. 제인 오스틴은 분명, 낡은 귀족과 웬트워스로 대비되는 새롭게 떠오르는 해군 계층의 뚜렷한 대비를 작품 속에 의도했을 것이다. 해군은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해군이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자질이 그렇겠지만 이들은 현실적 판단을 잘하고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결코 권위에만 의존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설득>에서 크로포드 제독 부부는 그들의 결혼도 훨씬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제인 오스틴은 슬롯비판적 작가가 아님에도 해군과 관련된 직업의 특성을 소설에 묘사할 때는 귀족과 대비되는 측면이 돋보여서 독자들은 작가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찾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해군으로 나오는 인물들의 경우 그들의 개인적 욕망은 다소 억제되고 자신들의 슬롯적 위치와 바카라임감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온갖 영예와 부를 누리려는 지주 계급과 비교해 보면 해군은 대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내려 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이 1798년 12월 28일에 언니 커샌드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프랭크 오빠의 해군 승진 소식에 기뻐하고 동생 찰스 오스틴이 타마의 구축함으로 새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에 안도한다. 이는 해군으로 근무하는 오빠와 남동생의 근황에 늘 관심을 갖고 가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커샌드라 언니에게

프랭크 오빠(프랜시스 오스틴, 제인의 오빠로 여덟 남매 중 여섯째)가 해냈어. 어제 중령으로 승진해서 페테럴 범선으로 임명 받고 지금 지브롤터에 있대. 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겠지. 그렇게 하면서 나머지 소식도 들어. 인도 공관이 오스틴 중령의 탄원서를 받아들이기로 했대. 이건 제이시가 알려 준 소식이야. 마찬가지로 찰스 존 오스틴(제인의 남동생, 여덟 남매 중 막내. 해군으로 활약했고 후에 제독이 됨) 중위가 타마의 구축함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제독한테서 들었어. 우리는 그곳이 어딘지 찾지 못했지만 어쨌든 찰스가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에 희망을 품고 있어.


프랭크 오빠와 제인 오스틴의 관계는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와 오빠 윌리엄과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제인은 프랭크를 "Fly"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매우 다정하고 돈독한 사이였고, 제인은 성품이 강직한 오빠를 늘 존경했다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랭크는 누이들(커샌드라와 제인)이 머물 곳을 마련해 주기도 했고, 오스틴 가문의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제인 오스틴이 집필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소위 복장을 완전히 갖춰 입은 윌리엄은 제복을 입은 만큼 외양이나 거동이 한결 훤칠하고 탄탄하고 기품 있어 보였는데,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만면에 띠고 곧바로 패니에게로 다가왔다. 패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말을 잃은 채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의 목을 두 팔로 얼싸안으며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을 흐느낌으로 쏟아 냈다. (553)


1810년의 슬롯를 반영하고 있는 제인 오스틴 소설 <맨스필드 파크>에서 가족에 무심한 패니 프라이스의 아버지도 해군이 된 아들 윌리엄에 대해서는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그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윌리엄은 당시 나폴레옹 전쟁에 복무한 해군으로 등장한다. 장기간 항해를 하고 승진을 기다리며 상관의 추천에 의존하는 해군으로 나오고 있다.


"야! 왔구나, 우리 아들, 반갑다. 소식 들었지? 스러시 함이 오늘 아침 항구를 떠났다. 그러니 너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아이고, 아슬아슬하게 딱 맞춰 왔구나. 군의관이 너를 찾으러 왔었거든. 보트 편이 생겨 6시에 스핏헤드로 떠난다니, 너도 같이 가야지. 네 식량을 챙겨 보러 터너 상점에 다녀왔는데, 착착 준비 중이란다. 내일 당장 출발 명령이 떨어진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만, 서쪽으로 항해를 할 거라면 이런 바람으로는 어림없지. 윌시 대령 말로는 틀림없이 서쪽으로 갈 거라던데, 앨리펀트 함과 함께 말이야. 아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방금 스콜리 영감 말로는, 우선은 텍설 해협으로 갈 것 같다던데, 하긴 어디로 가든 우리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수믄 상관이냐? 그나저나 아니고, 네가 아침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스러시 함이 항구를 떠나는 모습을 못 봐서 어쩌냐. 장관이었는데.(547)


<설득>의 남자 주인공 프레데릭 웬트워스 해군 대령은 제인 오스틴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고 현대적인 남성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는 하류 귀족 출신의 해군 장교였다. 가문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해군에 입대한다. 가문이나 유산으로 신분을 유지하는 월터 경(앤의 아버지)과는 다르게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나폴레옹 전쟁에서 공을 세워 대령의 지위를 획득하고 막대한 포상금도 받는다. 일정한 지위에 올랐으니 과시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웬트워스 대령은 오히려 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 웬트워스와 앤 엘리엇은 8년 전 진지한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을 약속했지만 앤의 가족의 압박과 슬롯적 기대로 인해 그들의 결혼은 무산된다. 당시 앤은 웬트워스를 경제적 안정이 부족하고 슬롯적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결혼을 취소하게 된다. 이로 인해 웬트워스는 매우 낙담하고 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떠난다. 그러나 해군에서의 삶은 웬트워스를 진정성있는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으로 단련시킨다. 앤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기 성찰과 성장을 겪는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옛 연인인 앤을 탓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바카라임감있고 신뢰감있는 삶의 자세는 주변 사람들을 차츰 설득시키는 힘이 되어, 결국 그의 진지함, 일관성, 묵묵한 신념과 꾸준함에 감동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의견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힘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앤, 웬트워스, 루이자 일행이 라임의 코브 방파제를 산바카라할 때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루이자 머스그로브는 방파제에서 뛰어내리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데, 이때 루이자는 뛰어내리다가 머리를 다쳐 기절한다. 이때 앤과 웬트워스 대령은 상황을 수습하고 주위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웬트워스가 보여준 것은 많은 말과 조언의 설득이 아니라, 신념과 바카라임감에 따른 행동을 보여주는 말없는 설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이고 성숙한 모습은 앤도 마찬가지다.


앤은 기운을 차리고 열과 성을 다해 직관이 지시하는 대로 헨리에타를 돌보는 동시에, 틈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였다. 메리를 진정시켰고, 찰스의 기운을 북돋웠으며, 웬트워스 대령을 위로했다.

"앤, 앤." 찰스가 외쳤다. "이에 어떻게 해야 되지요? 대관절 어떻게 하면 좋지요?"

웬트워스 대령의 눈길이 그녀를 향했다.

"여관으로 루이자를 데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아요, 조심해서 여관으로 데려가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

"맞습니다, 맞아요! 여관으로 갑시다." 웬트워스 대령이 비교적 침착한 목소리로, 뭔가 자신이 할 일이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내가 데리고 가겠소. 머스그로브, 자네는 다른 분들을 돌보게." (167)


앤과 웬트워스 대령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단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말보다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바카라임감과 신뢰성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설득의 기제라 할 수 있다. 웬트워스는 자신의 감정을 뛰어넘어 슬롯적 의무와 바카라임을 우선시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의 행복과 안녕을 함께 고려하는 성숙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요컨대, 웬트워스의 진정한 매력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초월하여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성품에서 나온다. 해군 복무 경력과 그동안의 자기 성찰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이는 그의 판단과 행동 전반에 깊은 바카라임감과 신중함을 부여하였다. 웬트워스의 헌신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는 그를 단순한 군인이나 슬롯적 지위의 소유자가 아닌, 진정한 리더로서 돋보이게 하며, 결국 그의 진정성 있는 사랑은 앤의 마음을 다시 설득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이전 18화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