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5월 초 휴직을 시작하고,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니 어느새 5개월 중 1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시간이 좋다.
사실, 이건 두 번째다.
첫 번째 육아휴직.
2016년 가을. 아들이 16개월이었다.
그때의 휴직은 엄밀히 말해 육아를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퇴사까지 생각하던 시기였다.
주변의 권유로 반쯤 떠밀리듯 시작한 휴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휴직을 앞두고 세운 계획에 육아가 없었다.
3개월을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쉴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 계획을 아내에게 펼쳐 보였을 때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제야 돌아봤다. 왜 내 계획에 아이가 없었을까.
임신 기간도, 아내가 모유수유로 밤잠을 설치던 그 혹독한 시기도, 그 이후로도 나는 육아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다.
늦은 퇴근에 새벽 출근, 고정 토요일 출근, 끊임없는 해외출장. 변명거리는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머릿속에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연결고리 자체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3개월을,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내 건강 회복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나와 우리 가족 인생에 엄청난 전환점이 되었다고 지금도 믿는다.
덤으로 얻은 것도 있었다. 쉼의 가치를 몸으로 배웠다. 리프레시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그때와 달랐던 것 하나.
첫 번째 육아휴직 당시 회사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고, 인사팀에서는 정말 육아 때문에 쉬는 거냐고 거듭 확인했다.
그래도 3개월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주변 선후배들에게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직을 망설이는 이유는 비슷하다. 내 자리가 없어질까봐. 쌓아온 커리어에 흠이 생길까봐.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3개월, 아니 그 이상을 비워도 조직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 자리를 메운다.
돌아왔을 때는 장기 출장을 마치고 복귀한 사람처럼 합류하게 된다.
조직은 나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관심이 없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결정은 조금 더 수월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6년차. 해외주재원 4년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가깝게 일했던 선배들과 보스들이 한결같이 걱정했다.
커리어상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진심 어린 우려였다.
나도 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다시 고민했다.
그런데 결국 나를 움직인 건 논리가 아니었다. 싱가포르의 늦은 밤, 차 안에서 느꼈던 그 충격.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혼자 들여다봤던 생각들. 가족, 그리고 내가 미루고 있던 것들.
결정을 굳힌 건 뜻밖에도 아들이었다.
어느 날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육아휴직 할 것 같다고.
아들 : 아빠가 일찍 오는 게 좋아. 소중하니까.
나 : 그럼 매일 보면 소중하지 않겠네?
아들 : 아니지, 그동안 못 본 거 메이크업 하는 거지.
그렇다. 나는 이제야 겨우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다. 아내와 아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두 번째는 다를 줄 알았다.
첫 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휴직 신청 절차가 놀라울 만큼 간단해졌다. 색안경도, 이상한 시선도 없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첫 번째와 똑같았다.
휴직 전에 세운 계획 목록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그 목록을 들여다보니 또 나 혼자만의 계획이 대부분이었다.
10년이 지나도 이 부분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내고 있다.
비움과 덜어냄이 마케팅 전략에서도 결국 가장 강력한 것처럼. 이번 육아휴직도 채우는 것보다 덜어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