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계획을 내려놓기까지

by제이스의 시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말을 하면 대부분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그리 이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가족을 챙기고, 일이 잘 되기 위해 동료와 협업한다. 이기심이 좋은 방향으로 발현될 뿐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도 같은 말을 한다.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인데, 그 이기적임이 좋은 쪽으로 나오니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그 말이 맞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이기심이 먼저 튀어나왔다.


또다시 같은 실수

첫 번째 육아휴직 때 나는 계획을 세웠다. 운동, 게임, 친구.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계획이었다. 육아에 지쳐 있던 아내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아내의 일을 돕고,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자, 어느새 내 머릿속을 채운 건 커리어였다.

회사가 아닌 개인 브랜딩이 중요한 시점이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과 AI가 연결되는 흐름 속에서 나도 그 안에 깊이 관여해왔으니, 육아휴직 기간 동안 AI를 공부하고 정리해서 LinkedIn에 올려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어떤 팟캐스트를 들을지, 어떤 뉴스레터를 추가할지, 콘텐츠를 어떤 플랫폼에 올릴지, 이미지 작업은 어떻게 할지.


어느새 휴직만 남고, 육아와 왜 육아휴직을 하려 했는지가 사라졌다.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이번엔 말하기 전에 멈췄다.

나와 아내는 연애 때부터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계획을 나누길 좋아했다. 이번에도 신이 나서 계획을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내에게 꺼내기 전에 잠깐 내 일상을 그려봤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나는 회사 다닐 때만큼 바빠야 했다. 내 일상에서 육아가 차지하는 것은 아들과 함께 운동 학원을 가는 것뿐이었다.


첫 번째 육아휴직 때는 달랐다. 두 돌도 안 된 아이라 손이 많이 필요했고, 내 계획 자체를 실행할 수 없는 시기였다. 몰랐을 뿐이지.

지금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사실상 육아의 영역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고, 나를 위한 프로젝트를 열심히 고민했던 것이다.


그때 아들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동안 못 본 거 메이크업 하는 거지."

LinkedIn 계획을 내려놓았다. AI 공부 정리도 내려놓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

그렇게 특별한 계획 없이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대신 아내와 아들에게 약속을 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겠다. 많은 관심을 쏟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다.


지금의 하루는 이렇다.

아침에 아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학교 갈 때 인사를 한다.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가 프로젝트를 하는 시간에는 나도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는다.

아들과 수영과 농구 학원을 함께 가며 음악도 듣는다. 셋이 저녁을 먹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산바카라을 하거나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며 웃는다. 거실에서 바카라을 읽고, 아들의 얘기를 듣는다.

아들이 잠들 때 포옹하고 인사를 나눈다. 다행히 아직은 잘 안아준다. 밖에서는 아니지만.


별다를 것 없는 하루다. 그런데 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지난 몇 년간 아내와 아들은 나를 일주일에 하루만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우리 가족을 잘 몰랐던 것이다.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에 쓴 이름

얼마 전 아들 학교 상담을 아내와 함께 갔다. 싱가포르에서는 아내 혼자 가야 했던 자리였다.

국제학교를 다니다 한국 일반 학교로 온 터라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큰 무리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안도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에 아빠라고 적었다고.

혼자 뭉클했다.


일을 할 때도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목적을 잃은 채 열심히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데이터와 해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마케팅 캠페인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도 똑같았다. 휴직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에만 매몰됐던 것이다.


결국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내려놓음이었다. 그리고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왜. 내가 왜 이 결정을 했는가.


아들이 틴에이저가 되기 전에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게 올해 초였다.

다행히 지금, 그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소중하고 잔잔하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