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요한 시기에요?"
주재원을 마치고 돌아와서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니, 주변의 첫 반응은 걱정이었다.
16년차,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해외 주재원까지 다녀온 커리어. 앞으로가 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 타이밍에 육아휴직이라니.
그 걱정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먼저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일복이 많은 사람.
주재원 3년차. 많은 것에 익숙해졌지만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새로운 과제가 생기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지고, 다이나믹함은 끊이지 않았다.
주니어 때부터 일복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오래 알았던 사람들은 농담처럼, 하지만 진담처럼 말하곤 했다.
네가 오면 일이 더 많아진다고.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쓸모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퇴근길이었다.
쾅.
늦은 밤, 머릿속은 복잡했다. 처리해야 할 일들, 내일의 회의, 아직 답장하지 못한 메일들.
늘 가던 길을 늘 하던 대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적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충격.
순간 영화처럼 슬로모션이 펼쳐졌다. 내가 앞뒤로 흔들리는 장면을 마치 밖에서 보는 것처럼 느꼈다. 속으로 짧게 한숨이 나왔다. 아.
기적처럼 멀쩡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직진하던 내 차를, 비보호 우회전 차량이 측면으로 들이받은 것이었다.
2024년 4월의 일이었다.
상대 SUV는 에어백이 터지고 앞범퍼가 함몰되어 있었다. 내 차는 앞에서부터 뒷좌석 문까지 전체가 부서져 있었다.
경찰이 왔고, 보험사 차량이 와서 내 차를 끌고 갔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사고가 좀 났으니 늦겠다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여줬을 때 아내가 더 놀랐다.
이렇게 차가 망가졌는데 어떻게 그리 차분하게 전화할 수 있냐고.
이틀 후, 호주 출장
다음날 나는 일찍 출근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에 병원에 들렀다. 여러 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사진을 보며 말했다.
천운이라고.
이렇게 차가 망가졌는데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고 이틀 뒤, 나는 호주로 출장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다.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지금도 특별한 후유증은 없다. 하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한동안은 그 길로 운전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일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았다. 창밖은 어두웠고, 기내는 조용했다.
원래 나는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주재원이라는 삶이 나를 바꿔놓았다. 언제부턴가 내일을 위해, 다음을 위해 지금을 미루는 것이 당연해졌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 생각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행복을 뒤로 밀어두는 것은 안 되겠다. 그 생각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물론 그게 결심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현실적인 고민도 많았다. 커리어의 타이밍, 주변의 시선, 돌아왔을 때의 일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비행기 안이, 내가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세상 모든 것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힘듦이 있어야 쉬는 것이 달다. 하지만 때로는 그 균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럴 때는 과감히 한쪽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2026년 5월, 다시 실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