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간정산
8월 초, 벌써 휴직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회사에 제출한 복귀 일정까지는 2개월이 남았다.
아직 2개월이나 남았다 싶다가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지난주엔 상하이 여행을 다녀오느라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지 못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그동안의 시간을 복기하고,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느 때보다 꽉 찬 시간
지난 3개월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이거다. 어느 때보다 꽉 찬 시간이었다는 것.
육아휴직을 계획할 때만 해도 나를 위한 시간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분리해서 생각했었다.
막상 지나고 보니 이렇게까지 가족과 함께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시간적으로 바쁘고 다이나믹했던 건 회사 다닐 때였다. 하지만 지난 3개월은 육체와 정신 양쪽으로 여유롭고 밀도 깊은, 또 다른 의미로 꽉 찬 시간이었다.
연애 시절 하루 종일 붙어있던 때보다 지금이 아내와 더 많이 함께하는 것 같다.
아침을 같이 먹고 저녁을 같이 먹는 삶. 아내와 운동하고, 아들의 학원을 오가며 나누는 대화.
하루 종일 보드게임을 하고, 평일에 에버랜드를 갈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24시간 울리던 메일 알림과 메시지가 없는 삶.
핸드폰이 저 멀리 있어도 아무 걱정이 없는 시간. 지금은 이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한풀이하듯 돌아다니는 중
그동안 못 갔던 것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5월엔 이탈리아, 6월엔 국내 여행과 캠핑, 7월엔 상하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집이 최고라며 말하며 빨래 더미를 처리하지만, 얼마 안 가 또 어딘가를 가고 싶어 한다.
새로운 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좋아서 여행을 가면 많이 걷는다. 걸어야 보이는 골목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발도르차와 로마를 걸었고, 오랜만에 한국의 산과 바다를 걸었다.
캠핑장에서 먹는 미나리 삼겹살, 불멍을 하며 보내는 밤, 텐트 안에서 렌턴을 켜고 하는 보드게임.
싱가포르에서 반해버린 중국 음식에 대한 애정은 상하이 미식 여행으로 이어졌다.
건강해지고 있다
분명히 건강해지고 있다. 목표와 기한이 있는 조직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몸이 달라졌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웃을 수 있는 것, 아내와 걷고 운동하는 것. 그게 지금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이 루틴을 몸에 익혀서 복귀 후에도 이어가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남은 두 달
남은 두 달을 지금처럼 보내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휴직의 피날레 여행은 가족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영국.
각자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위시리스트를 모아 일정을 짜볼 생각이다. 영국에 가기 전엔 싱가포르에 잠시 들를 계획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4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었는데,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웠고, 지금은 그립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즐거울지 벌써 기대된다.
지난 상하이 여행에서 언어 문제와 구글맵이 막혀 은근히 스트레스였는데, 영국 숙소를 고르며 아내와 나는 편하게 구글맵과 리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고 있다.
두 달밖에 안 남았다는 것
영국 여행을 다녀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다.
밤에 아들이 잠들기 전, 거실 소파나 아들 침대에서 함께 바카라을 읽는다. 서로 읽는 바카라 얘기를 나누는데, 사실 대부분 아들이 얘기하고 나는 듣는다.
아내가 오면 셋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불을 끄면 아들은 늘 아빠가 옆에 있다 나가라고 한다.
매번 그럴 순 없지만, "이제 아빠 회사 가면 이렇게 못 하잖아"라는 말을 눈을 반짝이며 하면 결국 옆에 눕게 된다. 누우면 같이 눈을 감다가 내가 먼저 잠들 때도 있어서, 왜 옆에 있어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아들 방을 나가면서 "아직 아빠 회사 갈 때까지 많이 남았어"라고 말해왔다.
이번 주엔 처음으로 "아, 두 달밖에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같이 누워서 잠들어야겠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휴직 전에 세웠던 계획들은 별로 실행한 게 없다.
AI 공부나 세미나 참석 같은 계획은 시작하자마자 내려놓았다.
요즘 읽는 바카라도 경영서나 AI 바카라보다는 그냥 끌리는 바카라들이다. 표지가 예뻐서, 서평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라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바카라을 꺼내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지금 다시 소중하게 느껴진다.
회사였다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민과 노력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3개월을 지나고 보니, 계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오히려 맞았다.
그리고 워해머 공부도 해야 한다. 아들이 낸 두 번의 워해머 시험지에서 둘 다 낙제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이게 뭐라고 진지하게 아쉬워했는지.
영국 여행의 메인 목적은 워해머 본사가 있는 노팅엄이다. 아들은 이미 지금부터 설레고 있다.
아마 런던에서 노팅엄까지 가는 기차에서 워해머 얘기를 계속 해야할 것이다. 그 전에 나도 좀 더 공부해둬야겠다.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 상하이 여행을 마치고 왔더니, 한국은 더 뜨겁게 끓고 있다.
이 더위 속에서 우리 가족의 시간이 익어가고 있다.
절대 잊지 못할, 앞으로의 인생에 큰 흔적으로 남을 시간이다.
이 생생한 시간을 마음에 많이 담아두고, 계속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