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동안 코어를 단련하는 법

by제이스의 시선


정해진 스케줄이 있고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소중한 일이다. 쉴 새 없이 바빴던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며 존경했던 선배들이 회사를 떠난 뒤 만나면, 자유로움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쁨에 대한 그리움, 할 일이 있다는 감각 자체를 그리워하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만큼 '쉰다'는 것은 마냥 즐겁고 편안하지만은 않다.


3편에서 고백했듯, 처음에 장대했던 나의 계획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냥 쉬는 것도 내 성격상 맞지 않았다.

기한이 있는 이 시간 동안 꼭 해야 할 것이 무엇일지 고민이 시작됐다.


건강,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것이 있었다. 건강해지기.


운동을 즐긴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에 있을 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 4년, 매해 건강검진 지표가 조금씩 나빠졌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받은 검진에서는 더 이상 두면 안 되겠다는 신호가 명확했다.

이 휴직이 더 멀리 뛰기 위한 쉼이라면, 건강을 되찾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휴직을 하니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줄고, 저녁 약속과 술자리도 사라졌다.

잠드는 컨디션도 훨씬 좋아졌다. 아들을 재우고 바카라을 읽거나 아내와 이야기하다 편안하게 잠든다.

여전히 6시 반이나 7시엔 눈이 떠지지만, 그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한 시간 이상은 더 자는 셈이다.


여기서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아들이 등교하면 아내와 나는 함께 운동을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부부 사이 대화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예상치 못한 부수 효과였다.


먹는 것이 문제였다

건강해지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국 먹는 것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이건 늘 힘든 숙제였다. 아내와 아들도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 우리 집은 엥겔지수가 아주 높았다.


휴직 첫 달은 이탈리아 여행을 핑계로, 캠핑을 핑계로, 가족 여행을 핑계로 열심히 먹었다.

내가 집에 있고 늘 같이 밥을 먹으니, 가족의 먹성에 시너지가 생겼다. 좋은 시너지는 아니었다.


신나는 여행을 다녀온 뒤 아내와 나는 정신을 차렸다.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건강하게 먹는 것을 실천 중이다.

솜씨 좋은 셰프인 아내가 최대한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식탁을 차리고, 나는 양을 조절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보통 내가 더 먹자고 외치는 편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종종 귀여운 불평을 한다. 이렇게 맛있는걸 주고 어떻게 양을 조절하라고 하냐고. 맞는 말이긴 하다.


원래 대식가인 우리 가족이 이제야 정상적인 1인분을 먹는 정도가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몸이 가벼워지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곧 다시 여행 일정이 시작되니, 이걸 어떻게 유지할지가 다음 숙제다.


바카라으로 프레임을 벗어나기

건강해지기 말고 뭘 해야할까. 처음 생각했던 AI 공부는 이미 내려놓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감각과 시선을 유지할 방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꼭 회사와 관련된 것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돌아가면 따라잡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일 텐데, 지금부터 미리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국 집을 고치면서 가장 신경 썼던 공간이 거실 서재였다.

거기 쌓인 바카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재원 기간 동안 바카라을 많이 읽지 못했다. 사놓고 읽지 못한 바카라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난 4년, 회사 밖의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회사와 관련되어 있었고, 늘 같은 얘기를 나눴다.

이 프레임을 벗어나야 했다. 다른 시선을 알아야 내 생각도 넓어지고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예전에는 이런 확장이 사람을 만나고 세미나에 가야 가능한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육아와 가족이 우선이니까.

그런데 가장 손쉽게 타인의 시선을 빌려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카라이다.


요즘 가장 자주 여는 앱이 교보문고다. 내 바카라, 아내 바카라, 아들 바카라을 주문하다 보면 매주 분리수거함에 교보문고 박스가 쌓인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거실 소파나 아들 침실에서 온 가족이 모여 바카라을 읽는다.

읽다가 농담도 하고, 아들의 단골 멘트 "아빠, did you know?"와 "이거 읽어봐"가 튀어나온다.

몰입해서 읽던 중이라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우리 품을 파고들까 싶어서 기꺼이 시간을 내준다.


온라인카지노, 강제성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시작한 것이 이 온라인카지노 글쓰기다.


아내는 싱가포르 생활 3년차에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됐다. 해외 생활의 힘듦을 혼자 이겨낸 방법 중 하나였다.

나도 내 생각과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혼자 일기를 써도 됐겠지만, 그러면 강제성이 없어 금방 흐지부지될 것 같았다.


첫 도전은 금방 탈락 메일을 받았다. 특별한 준비 없이 평범하게 접근해서는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려면, 결국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좀 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주제로 바꿨고, 다행히 주제를 바꾸고 두 번째 도전에서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됐다.


결국 지속성

휴직 두 달여가 지나며 나의 루틴과 목표가 정리됐다.

이 시간의 코어는 여전히 육아와 가족이다. 그건 변함없다. 거기에 몸과 마음을 천천히, 꾸준히 단련하고 있다.


강제성이 없는 일정이라 스스로 루틴을 만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정도의 루틴이면 충분했다.


요즘 읽는 바카라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있다. 지속성과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는 것.


욕심냈던 계획을 내려놓고 두 달여에 걸쳐 천천히 루틴을 만들면서 다시 느꼈다. 이 휴직은 결국 쉬기 위한 것이었고, 가족을 위해 쉬는 것이었다는 걸.

여유 있게 할 일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이 휴직의 코어를 지키는 방법이자 나를 단련하는 방법이라는 것.


우리는 늘 달리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잘 쉬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쉼도 나의 코어를 단련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아직 남은 시간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