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를 앞두고

5개월이 내게 준 것

by제이스의 시선


알람 없이 일어나는 아침이 익숙해졌다.

잘 자고 잘 일어난다. 피곤하면 좀 더 잘 수도 있고, 가끔은 바카라을 읽다 낮잠에 빠지기도 한다. 이 여유로운 시간표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5개월이 내게 준 것은 결국 이 여유인가 싶다.


2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추석 연휴였다. 연휴를 보내고 나니 복귀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인가.

휴직 초반엔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코앞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 그리고 짧게 스쳐갈 이 계절을 마지막까지 알차게 보내야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복직을 위한 간단한 절차였는데, 막상 연락을 하고 나니 새삼 실감이 났다.

곧 다시 알람을 맞추고, 메일과 메신저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없어서 다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내심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까 싶었는데, 솔직히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놀고 쉬었으니, 돌아갈 마음이 안 드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가 얻은 것, 강하게 남은 것은 쉼이었다

육아휴직 온라인카지노북을 기획할 때, 복귀 시점에 무언가 정리할 수 있겠지 하며 이 제목을 붙여뒀다. 이제 그 글을 쓰며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여러 가지가 스쳐 가지만, 가장 강하게 남는 건 쉼이다.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휴직 동안 아내는 종종 나에게 좀 더 쉬라고 했다. 아내가 보기엔 내가 바빠 보였나 보다.

5개월 동안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으니, 덜어내려 해도 뭔가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쉼이었다. 15년 동안 지속되던 긴장의 삶에서 벗어났으니까.

몸과 마음, 정신이 충분히 쉬었고 에너지도 채워졌다. 온라인카지노북 초반에 쉼의 중요성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복귀에 대한 기대감은 없어도, 가기 싫다는 정도는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로 다시 시작할 준비는 된 것 같다.


평범한 평일 저녁이 그리워질 것이다

오늘 아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와 장을 봤다. 여행 중에도 백화점보다 파머스 마켓과 마트를 더 좋아하는 우리라, 한국에서도 장 보는 일이 늘 즐겁다.

요리는 못하지만 먹는 건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아는 나는, 마트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골라와 셰프인 아내에게 승인을 받는다.

가끔 탈락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통과되고, 아내는 기가 막힌 요리를 만들어낸다.

오늘 저녁에도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며 아내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이 평일 저녁이 정말 그리울 것 같다고.


아내가 요리하는 동안 나와 아들은 부엌을 들락날락하며 참견하고 맛보다가, 걸리적거린다고 쫓겨나기도 한다.

음식이 완성되면 식기를 세팅하고 나르는 건 우리 둘의 몫이다. 맛있게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모두 함께 정리까지 순식간에 끝내면 주방 퇴근이다.

아내도 이 시간이 그리울 거라 했다. 조수가 사라지면 셰프 입장에서도 아쉬운 법이니까.


높낮이가 있어야 재밌다

영화도 음악도, 회사의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도 높낮이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이 5개월은 지난 4년간 열정적으로 버텨낸 해외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높이, 다른 흐름이었다.

그 반대를 경험했기에 이 시간을 온전히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 덕분에, 앞으로 맞이할 또 다른 높이와 흐름에도 나와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 후의 내 삶을 생각하면 어색하다.

아침에 아들 등교를 보고 아내와 운동하는 시간은 사라질 것이다. 아들과 운동 가는 길에 워해머 얘기를 떠드는 시간도, 아내와 넷플릭스를 보다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들도.

너무나 평범하지만 그래서 소중했던 평일 저녁식사도.


이 시간이 너무 짙게 남아서, 우리 모두 힘들어지지 않을까 잠깐 걱정도 해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우리 가족이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있다.

며칠은 걸리겠지만, 결국 우리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 찾아올 평일 저녁과 주말에 대한 기다림은, 오히려 더 진해질 것이다.


여행이라는 완벽한 마침표

휴직 기간의 마지막 일정으로 길게 떠난 영국 여행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40대에 접어든 나와 아내, 이제 곧 틴에이저가 될 아들. 완벽한 타이밍의 여행이었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것이 이 5개월이었다.


영국은 우리 가족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여정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영국 역사의 흔적을 찾아 요크로, 아들에게 소중한 워해머 월드가 있는 노팅엄으로, 내가 오래 가보고 싶었던 에든버러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끼고 즐기는 해리포터의 흔적들을 이 도시들에서 찾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긴 여행이라 생각했는데도 하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넘쳐서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바빠서, 그 안에서는 복귀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줄어든 건 몸무게만이 아니었다. 통장 잔고도 꽤 가벼워졌다.

그래도 그 자리에 우리 가족을 잇는 시간과 기억이 훨씬 진하고 풍성하게 남았다.


휴직 전엔 해야 할 일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막상 끝이 다가오니 또 할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노션 투두리스트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지우고 있다.

휴직이 끝난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닌데,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과 이 소중한 가을날을 충분히 즐기다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