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 대신 캔바를

by제이스의 시선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아들의 학교 생활이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국제학교로 보내는 것도 잠깐 고민했지만, 한국 초등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그다음 걱정은 학원과 핸드폰이었다.

작년 12월 말에 들어왔으니 3월 개학까지 시간이 넉넉했다.

그동안 나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교육의 알고리즘에 잠깐 발을 담갔다

우리 부부는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돈으로 여행을 가고 바카라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학원 정보를 조금씩 찾아보다가, 어느새 우리 둘 다 알고리즘에 빠져 주말에 레벨테스트를 보러 학원을 가보게 됐다.

한국 사교육 에코시스템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육아휴직 덕분이었다. 곧 휴직을 할 텐데 그 시기에 아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면 아무것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학원들은 주말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육아휴직이 흔들릴 뻔한 우리의 교육관을 다시 붙잡아준 셈이다.


지금 아들은 운동 학원만 다니고, 핸드폰은 없다.

다행인 건 아직 핸드폰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버텨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냥 두는 건 아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고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도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바카라 읽기, 디지털·스크린 관리, 먹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에는 평균 이상으로 민감하게 신경 쓴다.


어릴 때 목이 쉬도록 바카라을 읽어준 것, 스크린 시간을 관리한 것, 집안에 바카라이 가까이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

이런 것들이 쌓여서 지금 아들은 바카라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바카라을 고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추천 도서라고 아이 취향과 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이 거의 없어서, 주말마다 오차드 로드의 서점이 우리 가족의 단골 코스였다.

나와 아내가 여행바카라과 요리바카라을 구경하는 동안 아들은 어린이·청소년 섹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들에게 가서 같이 표지와 목차를 보고, 추천해주고 훑어보게 하고 - 그렇게 골라서 사곤 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바카라도 결국 대부분 흠뻑 빠져서 읽었다.


여행이 문제집을 대신하는 방법

육아휴직으로 여행이 많아지면서,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학교에 체험학습 계획서와 결과 보고서를 내면 수업을 빠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여행 계획을 짜서 가족과 공유했던 것처럼,

아들도 여행 전에 관련 바카라을 읽고 궁금한 것을 함께 찾아보고, 다녀와서는 느낀 점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시작은 바카라이었다. 5월 이탈리아 여행 전, 아마존 리뷰에서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Horrible Histories 시리즈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걱정하던 차에, 아내가 웬디북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미 다 있었다. 아내는 영어바카라 관련 국내 플랫폼들을 훤히 알고 있었다.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는 새삼 아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내 어릴 적 favorite였던 먼나라 이웃나라 개정판 이탈리아 편도 함께 샀다.

나는 재밌게 읽었지만 아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림체가 너무 올드하다는 것이다.

실패. 대신 Horrible Histories는 완전히 통했다. 영국 여행 전에는 이 시리즈를 더 사줘야겠다.


아들은 여행 전 프로젝트 주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 내가 읽은 최강록 셰프의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더니 어느새 바카라장에서 꺼내서 읽고 있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애정은 확실히 물려받은 것 같다.

내가 보고 있던 이탈리아에 대한 바카라들과 음식 다큐를 같이 봤다.


캔바로 완성한 아들의 프리젠테이션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아직 한국어 맞춤법이 서툴러서인지 - 지금도 많이 틀리긴 한다.

한글로 프리젠테이션 만드는걸 힘들어했다. 아들과 영어로 자료는 만들어도 발표는 한국어로 해야 한다고 정했다.

여행 전 아들은 동행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앞에서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 프리젠테이션 관련해서는 유튜브 이탈리아 여행기 1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연정씨네" 검색하거나, 프로필에 있는 링크 참고


아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자극을 계속 받을 수 있고, 세 식구가 붙어있을 수 있고, 학교나 숙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여행 준비물은 늘 바카라과 노트, 필기구다.

노트는 뭔가 영감을 받을 때 상상한 걸 그려내기 위해서고, 바카라은 식당이나 교통수단을 기다리는 시간, 호텔에서 쉬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학교 제출용 보고서를 만들자고 했다. 사실 이 보고서를 꼭 아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학교 제출이라는 계기를 빌려, 아들 스스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사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먼저 어떤 내용을 다룰지부터 함께 정했다.

사진과 동영상이 2천 개 가까이 있었으니 무작정 고를 수는 없었다. 아들이 구성을 먼저 잡고 필요한 사진을 골라 요청했다.

그렇게 여행의 기억을 하나씩 다시 불러오며 캔바로 체험학습 보고서를 만들었다. 역시나 한국어 맞춤법은 함께 고쳐야 했다. 그렇게 완성해서 제출했다.


흔들리지 않되, 유연하게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주변에서 교육 관련 걱정을 하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상황이 다르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처럼 바카라을 좋아하고,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자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순식간에 흔들릴 뻔했던 경험이 있으니, 방심하지는 않으려 한다.


AI와 가까운 업계에 있다 보니, 우리가 자라온 교육 방식이 아들이 성인이 될 시점에도 의미가 있을지 싱가포르에 있을 때부터 자주 고민했다.

정답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함께 바카라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 가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

그렇게 행복한 아이로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