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아이(境界の子) - 15화
지하 데이터 관로는 차가운 정적과 도식화된 노이즈만이 부유하는 기계 세계의 하수도였다. 벤 리가 자신의 데이터 코어를 오버클럭하여 터뜨린 붉은 화염은 가상 시가지 전체를 뒤흔들며 에이전트들의 사선을 일시적으로 무너뜨렸다. 그 거인이 남긴 찰나의 구명줄을 쥐고 지하 관로로 추락한 세호, 마리, 사라, 모스, 블라인드, 그리고 케어의 가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엉켜 붙었다.
“하악… 허억…!”
마리를 껴안은 채 바닥에 부딪힌 세호의 입에서 핏빛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실 인쇄소 침대 위에 누워있을 진짜 육체의 옆구리에서 밀려오는 환상통은 칼날처럼 세호의 뇌세포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세호의 망막 위에서는 [CRITICAL ERROR]라는 붉은 잔상이 잔인하게 점멸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세호 씨! 신경망 동기화 과부하입니다!”
케어가 곧바로 다가와 세호의 목줄기에 긴급 진통 코드를 주입했다. 케어는 현실 인쇄소 지하 제어실에서부터 마리와 대원들의 생체 신호를 정밀하게 살피던 전담 의료진답게, 손가락 끝에서 주황색의 케어 포인터를 발사하며 세호의 환상통 수치를 강제로 억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마리의 배 위로 손을 뻗었다. 마리의 배 속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생체 맥동은 이제 하수도의 칠흑 같은 벽면에 숭고하고 거룩한 생명의 문양을 아로새기고 있었다.
“마리 님, 숨을 크게 쉬세요. 제 목소리에 집중하세요.”
케어의 목소리는 정밀하고 차분했다.
“아이의 코드가 가상 세계의 환경식에 반응하며 태동을 가속하고 있어요.제가 생체 동기화율을 고정해 둘 테니 절대로 의식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케어… 님… 고마워요…”
마리가 하얗게 질린 입술을 떨며 케어의 손을 잡았다. 사라는 주황색 데이터 탄환을 권총에 재장전하며 전방의 시가지 돔 방향 관로를 스캔했다.
“벤 리 님이 벌려준 유예 시간은 길어야 3분입니다. 노인님이 말씀하신 시가지 중심부 메인 돔으로 연결되는 보조 통로가 바로 앞이에요.”
지하 관로는 사방이 정교한 철제 격자선과 이질적인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배수관을 타고 흘러드는 둔탁한 소음은 마치 도시 전체가 기계적인 날숨을 내쉬는 듯한 기분 나쁜 울림을 만들었다. 관로 외벽을 따라 연결된 구형 광케이블 라인들은 보랏빛 전류 스파크를 미세하게 뿜어내며 실시간으로 추적 신호를 갱신하려 들었다. 세호는 가슴을 틀어쥐며 근처 파이프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세호 씨.”
케어가 바이탈니들 포인터를 세호의 목덜미에 다시 한번 밀착시키며 말했다.
“환상통은 신경계에 각인된 가상의 오차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식이 그 통증을 진짜로 인정하는 순간, 현실 육체에서도 신경세포 파괴가 일어납니다. 제 시각 파형을 따라 세호 씨의 동기화율을 강제로 낮추겠습니다.”
케어의 단호한 손길 아래, 주황색 빛의 실선들이 세호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냉기가 척추를 타고 번지자 뇌를 찌르던 날카로운 칼날 같은 통증이 서서히 메마른 진통으로 눌러앉았다.
“고마워요, 케어 님…”
세호가 이를 악물며 마리의 손을 잡았다.
“어떻게든… 메인 돔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라가 권총의 단자 슬롯을 관로 기판에 밀어 넣으며 지형 코드를 스캔했다. 그녀의 렌즈 너머로 수천 개의 주황색 데이터 입자들이 격자망 형태로 확산되어 관로 내부 구조를 그려냈다.
“전방 100미터 지점에 외부 통제용 강철 격벽이 있습니다. 저 벽 너머가 메인 돔의 하부 접속부로 통하는 보조 수로예요. 블라인드 님, 모스 님, 측면의 데이터 누출 스파크를 차단해 주세요. 에이전트들의 인지 레이더에 노출됩니다.”
“알겠다.”
블라인드가 결착 실선을 손가락 마디 사이로 틀어쥐며 전방을 주시했다.
“모스, 뒤쪽 접속 제어판 기판을 빠르게 교란시켜라. 놈들이 이 하수구 전체를 데이터 격리 구역으로 잠그지 못하게.”
그러나 진짜 절망은 밖에서 몰려오는 에이전트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비정한 타락의 악취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대열의 후방에 서 있던 모스가 제어판 기판을 지지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모스의 아바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피로나 공포가 아닌, 지독하게 비린 현실의 욕망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여러분.”
모스의 목소리가 가늘게 일렁였다.
“모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출구 차단벽을 해제해야지!”
블라인드가 모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현실의 나는… 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10년째 목 아래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썩어가고 있어요.”
모스는 피범벅이 된 자신의 가상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이트릭스가 제게 제안했습니다. '현실 육체의 완전 재건과 평생 누릴 거액의 보상'. 이 냄새나는 병실과 가짜 세계 모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예요.”
모스의 손에 쥐어진 차원 소거용 권총의 총구가 마리의 배를 향해 정밀하게 올려졌다. 모스는 아카이브에서 도주하던 순간부터 이미 마리의 푸른 생체 좌표를 사이트릭스 최상위 회수팀과 '그레이' 부대에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아이의 생체 파동은 시스템의 버그일 뿐입니다! 저 아이만 넘기면 제 현실의 삶은 완벽하게 복원돼요. 다들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리 씨만 내놓으세요!”
“그만둬, 모스!”
세호가 마리와 케어의 앞을 가로막아서려 했다. 그러나 모스의 핏빛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모스가 망설임 없이 총구의 트리거를 당긴 바로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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