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질을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6이닝 무실점. 기록만 보면 완벽했다. 경기는 승리했고, 선발 투수가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게 됐다. 마이크를 넘겨받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멋쩍고 담담한 고백이었다.
볼질을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지난 17일 경기 선발로 나선 최원태 삼성라이온즈 투수의 이야기다. 그 게임을 끝까지 본 야구팬이라면 알 것이다. 무실점 기록과 달리 실제 투구 내용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자신 있게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꽂아 넣지 못했고, 볼넷이 많아 보는 사람의 속을 시커멓게 태웠다. 워낙 구위가 좋은 선수이지만 동시에 기복이 심해 팬들을 안심시켜 주지 못하는 스타일인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날 경기는 지독한 투수전 끝에 9회 말 나온 끝내기 안타로 삼성이 꾸역승을 챙겼다.
응원단장이 넘겨준 마이크를 받자마자 그가 말한 저 짧은 한마디에 나는 묘한 감동을 느꼈다. 마운드 위에서 온갖 관중의 시선을 받으며 제구가 흔들릴 때의 그 비참함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의 이런 자기 객관화 능력을 볼 때마다 나는 '메타인지'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실제로 선수들의 경기 후 인터뷰를 들어 보면, 자기가 어디가 부족했고, 그 부족함을 보완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어땠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 만족은 없다. 끝까지 다듬고 벼를 뿐이다. 나의 아이도 나중에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자신을 건강하게 수용하되, 끊임없이 정진하는 아이로.
공부도 결국 똑같다. 서울대 학생들의 학습 행태를 연구해 본 결과,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정확히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지하는 능력, 즉 메타인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예리하게 포착해 냈기에, 남들이 다 아는 장점을 자랑할 시간에 보이지 않는 단점을 보완하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점 대신 장점을 더욱 계발해야 무기가 된다고 거드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일단 내세울 만한 완벽한 '장점'이라는 게 하나라도 존재할 때의 얘기다. 매일 실력을 쌓아 나가야 하는 수험생의 처지라면, 우선 내가 가진 구멍이 어디에 뚫려 있는지를 먼저 직시하는 게 순서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통째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통대 입시를 준비하기 전까지 관사 "a"와 "the"를 언제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솔직히 매번 헷갈렸다. 그냥 문장을 뱉다가 대충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로 쓰곤 했다. 고유명사 뒤에 붙는 복수형 "s" 같은 디테일도 왜 복수로 썼는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필리핀을 The Philippines, 네덜란드를 "The Netherlands"라고 표기하는 것이 내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식당인 "Applebee's"를 '애플비'라고 부르고, "Trader Joe's"를 '트레이더조'라고 끝의 s를 자체 생략해 버리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영어의 구멍들을 은연중에 흐릿하게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그동안 모호하게 남겨두었던 내 영어의 밑천들을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헷갈리는 관사의 용례, 숫자의 가산과 불가산 개념을 직시하고 보수공사를 거치고 나니, 신기하게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부터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도 문장이 술술 만들어지는 상쾌함을 경험했다. 내 무지를 인정하는 따가운 과정을 견뎌낸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메타인지가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뭔가를 배울 때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성찰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을 뿐, 내가 그걸 정말 내 손으로 스크랩해서 써먹을 수 있는지 되짚어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내 밑천을 지적하는 쓴소리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사는게 빡빡한데, 자기가 못하는 부분만 콕 집어 지적받는 것을 반길 인간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학생들을 가르칠 때, 조금 더 집요하지만 따뜻한 선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의 통역 발표가 끝나면 나는 피드백을 주기 전에 먼저 슬쩍 질문을 던진다.
"오늘 통역하면서 본인 느낌은 어떠셨어요?"
이 질문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객관화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메타인지 테스트다. 이때 "제가 이 문장의 뉘앙스를 잘 표현하지 못해서 순간 머뭇거렸어요", "저는 수치나 숫자가 나올 때마다 정확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어요"라고 구체적으로 자기 약점을 시인해 주는 학생을 만나면 참 고맙다. 선생은 바로 그 부끄러운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진짜 무서운 건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아는 척, 괜찮은 척 뭉개고 넘어가는 태도다.
결국 공부란 타인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과정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상태의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리만큼 솔직해지는 과정이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내 문장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아직도 머리아픈 통역이 끝나고 나면 내가 뱉었던 "우스운" 말들을 복기하며 그거 어떻게 표현해야 했는지 적어 본다. 나의 못함을 응시하는 그 부끄러운 용기가 우리를 프로의 마운드에 서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