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제일 먼저 없앨 거라 협박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킹치만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고요

by캐롤

조금 쑥스럽지만 나에게는 나가야만 하는 모임이 있다. 한 번은 그 모임에 안경을 쓰고 나갔다. 요즘은 안경을 평소에 거의 쓰지 않는데, 가끔 햇빛 차단 용도로 쓰고 다닐 때가 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카페의 모임실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 말했다.


"오, 캐롤님? 안경? 통번역?"


정확히 이 세 단어였다.


나를 예민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난 그 말이 참 가볍게 들렸다. 커리어나 취미와는 무관한 모임이기에 그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은 알지만 깊게는 모른다. 그 말이 묘하게 불편하게 들린 이유는, 내가 매일 머리를 싸매고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하는 일이 마치 지적인 이미지 연출과 비슷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통번역사라는 직업은 묘하다. 듣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직업의 가치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다. 어떤 이는 외교 현장에서 귀빈들의 입이 되어 주는 고급 인력이라고 우러러보고, 어떤 이는 그저 외국어를 한국말로 기계처럼 치환해 주는 고급 비서나 관광 가이드로 여기기도 한다. 전문 통역사로 일하려면 석사 학위가 필요한데도,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통역사는 언제나 미팅룸에 꼭 필요하면서도 비즈니스의 가장자리에 있는 무관한(irrelevant) 존재로 여겨진다.


여기에 ChatGPT가 등판하자 우리 직업은 순식간에 시대의 조롱거리가 됐다. 재미있는 건, 인간의 거의 모든 지식 노동을 AI가 위협하고 있음에도 언론은 유독 "통역사 이제 필요 없다", "스마트폰 동시통역 출시" 같은 헤드라인을 신나서 뽑아댄다는 점이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대체되고 보고서를 쓰는 기획자가 위태로운 것도 사실인데, 유독 통역사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인류 역사에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언제나 소수의 특권(privilege)이었다. 대중은 언론의 호들갑을 통해 그 특권이 마침내 기계로 인해 민주화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통역은 그저 사람이 하는 언어 변환에 불과하며, 이제는 기계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 기능 노동'인지도 모른다.


이런 냉소 속에서 야생의 프리랜서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 역시 두려웠다. "아 근데 이제 통역사 다 없어진다는데요?"라는 말을 주변에서 몇 번이나 연속적으로 들으며 직업적 억까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정말 그 종말론을 믿게 될 것 같았다. 기계가 공짜로 통역을 해준다는 시대에 대체 어떤 클라이언트가 인간 통역사에게 비싼 단가를 지불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난 1년간 뗏목 타고 프리랜서 시장이라는 바다에 나와 버티며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살아남은 일들은 언제나 '인간이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는 거다. 연사와의 긴밀한 대면 교감이 필요한 자리, 기계는 포착하지 못하는 미묘한 분위기, 예상치 못한 고맥락 대화 속에서 센스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들이다. 클라이언트들이 굳이 비용을 들여 사람 통역사를 대동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미만 통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어서였다. 재미있게도 나를 고용한 클라이언트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블록체인 구루였다. 그분은 인터뷰가 끝나고 내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조직에서 나와 프리랜서로서 처음으로 고객에게 직접 들은 감사 표현의 순간이었다.


결국 기계가 흔해질수록, 역설적으로 '휴먼 터치'가 행사의 품격과 격조를 증명하는 하이엔드 자산이 되는 것 같다. 이미 메타나 구글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은 AI가 양산해 낸 콘텐츠를 엄격히 필터링하며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투입된 고품질 콘텐츠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사람 통역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AI보다 0.1초 더 빠르게 단어를 치환하는 무모하고도 헛된 경쟁이 아니다. 그보다는 라포(rapport)에 가깝다. 말하지 않아도 통역 대상자의 필요를 캐치하는 섬세함,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 연사가 즐겨 쓰는 단어를 캐치해 일관성을 유지해 주는 노력. AI가 주지 못하는 관계의 힘과 감동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인간 통역사를 살아남게 하는 무기가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먼저 다가가 살갑고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성격이 아니다. 처음 독립할 때만 해도, 이런 내향적인 성격으로 프리랜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격려를 보내주신 어느 교수님의 예언대로 신기하게도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요령이나 비결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도움의 손길이 나를 이끌어주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처음 만난 고객이 나에게 두 번째, 세 번째로 연락을 해오는 경우는 몇 번 있었다. 나는 이것이 태도와 라포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화려한 말재주나 넉살로 영업하지는 못해도, 진심으로 필요를 파악하고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고 애썼던 마음, 어떤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잃지 않았던 태도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었을까? 어쨌든 세상이 아무리 통번역사는 끝났다고 얘기해도 예전보다는 덜 긁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직 사람인 내가 이어주는 일에 아직 가치가 있다고 믿으니까.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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