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사의 자녀는 영어를 잘할까? -하-

GPT도, 제미나이도 이기지 못하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에 대한 가오

by캐롤

동시통역사의 자녀는 과연 영어를 잘하는지에 대해 호기롭게 어그로를 끌어놓고는 무려 2주 넘게 연재를 쉬었다. 연재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근본적인 회의감 때문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흔해 빠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어그로성 교육 글과 내가 지금 뭐가 다른가, 라는 생각이 온라인카지노의 알림을 보고도, 글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나의 엄마는 교사셨다. 재미있는 건,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게 인생에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을 주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어떤 지시를 들으면 별 생각 없이 따르는 사람도 있고, 왜 그런 지시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엄마는 전자의 부류였고 나는 철저히 후자였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해야만 움직였다. 뇌가 납득되면 엄청난 추진력이 따라왔지만, 반대로 납득되지 않으면 전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영어 같은 경우도 비슷했다. 엄마는 원어민 학원도 보내주고, 원서도 사주며 여러 서포트를 해주셨지만, 결정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면 무엇이, 왜 좋은지를 설명해 주진 못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내내 엄마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어가 엄마의 인생과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기에, 남들 다 하는 공부를 막연한 느낌으로, 노력으로 해냈을 뿐 영어가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5월의 시작과 연휴, 아이와 둘이서만 쿠알라룸푸르로 여행을 갔다. 친한 대학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모처럼 아이와 단둘이 해외로 나가게 된 것이다. 공항을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한 그랩(Grab)이 도착했다. 차에 타고 나니 처음 오는 나라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도 있어 기사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짜증을 냈다. "엄마! 엄마! 왜 영어로 말하는 거예요!"


중간중간 내가 영어로 말하는 것이 싫었는지 방해하는 아이 때문에 대화가 툭툭 끊기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아이에게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아이에게 다 이해하지는 못할 영어 인풋을 계속 주곤 했다. 흔히들 '흘려듣기'라고 하는, 계속해서 영어를 노출함으로써 귀가 트이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간혹 짧은 말들은 뜻을 알려주기도 했다. "What should I do? 그건 '어떻게 하면 좋아?'라는 뜻이야"라는 식으로.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아이는 영어 영상을 보다가 대사를 따라 하더니, 일상생활에서도 그 말들을 제 타이밍에 써먹기 시작했다. "That's okay", "I'm sorry", "Let me see!" 같은 말들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에게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Hello!"라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수영장에서 동갑인 외국인 친구를 만났을 때는 영어로 충분히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혼자 답답해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랑 아빠는 영어 잘하는데, OO이도 영어 공부 많이 하면 나중에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에 가도 저 친구들이랑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


비행기를 타고 간 낯선 나라에서 영어를 쓴다는 게 꽤나 신선한 경험이긴 했는지, 어제 아이는 또 슬며시 물어왔다.


"엄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다 영어로 말해요?"

"영어로도 말하고, 말레이어로도 말하지."


"그런데 나는, 한국말만 해요."

"맞아. 그렇지만 OO이가 공부하면 다른 나라 말도 금방 잘할 수 있어."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배우는 건 억지로 푸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바카라상에 앉아 받아쓰기를 시키고, 과외 교사를 붙여 반복 학습을 하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세상에 영어라는 언어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다.


한편, 요즘은 AI도 번역기도 워낙 좋아서 외국어를 뭐 하러 고생하며 배우냐는 말들이 많다. 근본적인 외국어 공부에 대한 회의론이다. 사실이다. 나도 9년 전 유럽에 갔을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구글 번역기에 대고 말한 매끄러운 영어 번역본을 보고 꽤나 자연스러워서 놀랐던 경험이 있으니까. 일차적인 생존 소통에는 번역기라는 중간 매체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Heart to Heart' 커뮤니케이션이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하이엔드 비즈니스 대면 상황이다. 나는 수많은 임원들, 혹은 그보다 더 높은 분들이 카운터파트와 만나는 자리를 지켜보았다. 정작 본인이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통역사를 대동하면서도, 은연중에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듯한 미묘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들을 여럿 봤다. 물론 통역사를 곁에 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권위와 위치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니, 꼭 자존심 상해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영어를 어설프게 웬만큼 하는 바람에, 정밀한 뉘앙스 조절이 안 되어서 외국인 파트너를 당황시키는 경우도 많이 봤다.


결국 스스로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하나쯤 품고 있다는 건, 속된 말로 '가오'를 지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영어가 자신 없으셔서 항상 통역사를 쓰시던 어떤 임원이, 알고 보니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영어 과외를 은밀하고도 열심히 받고 계신다는 걸 알았을 때 확신했다.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라 해도, 내가 직접 내 입으로 말할 줄 안다는 것의 가치는 분명 지켜질 것 같다는 어떤 확신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영어 몇 개 더 외우라고 등을 떠미는 대신,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당당하게 만드는지 내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아직 나는 일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준 적이 없지만, 아이는 통역사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아이가 자라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내 아이가 학원 강의실이 아닌 엄마의 모습을 보고, 영어를 잘하면 참 좋겠다는 생생한 느낌을 가지기를 바란다.

이전 08화동시통역사의 자녀는 영어를 잘할까?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