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으로 이룬 고통스러운 노동의 끝
나는 작년에, 그러니까 39세가 되던 해에 은퇴를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정확히 말하면 퇴직이지만, 나는 은퇴라고 정해버렸다.
결심하던 당시 13억 정도가 있었다. 충분한 자산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집 사는 것을 포기하고, 월세로 살기로 결정을 하니, 주식으로 잘 관리만 해 준다면 그래도 괜찮게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마만한 자금을 모으는 데까지는 슬롯생활에서의 운, 주식시장에서의 운, 운이 많이 작용했다. 내가 잘 일하고, 잘 투자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묵묵히 쌓아두기만 해서는 월급쟁이가 결코 이 정도의 금액은 모을 수 없다.
어떤 식으로 자금을 불릴지 생각도 고민도 하고, 조금은 배짱도 부려야 하며, 결국은 시장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타야만 한다.
따라서 그건 결과론적이며, 때문에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내가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전문 지식이 없다.
그보다 이야기하고자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은퇴 자금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다.
2009년, 23세, 슬롯생활을 시작해서 2025년에 끝마쳤으니 16년을 일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코웃음칠 만한 근속 연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길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래, 고통스러웠다. 은퇴를 하고 보니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하는 시간이 의미가 없고 한없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돈도 벌었고,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보니, 역시 그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은퇴 후의 시간을 위한 과정과 수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은퇴를 하고 나니 손톱 뜯는 버릇이 없어졌다. 회의를 하거나 면담을 할 때 손톱을 뜯고는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를 가지고 운동하고 샤워할 수 있게 됐다. 출근 전 운동하기 위해 여섯 시 반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평일 낮에 사우나를 하러 갈 수도 있다. 어쩌면 혼자서 탕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
생전 처음 피부과도 다녀보고, 사치품을 사보기도 한다. 소비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여행도 한다. 국내도 가고, 해외도 간다. 가족에게 여행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처지인 것이 무척 뿌듯하다.
이사도 했다. 출근할 것을 고려하지 않고 저렴한 신축으로, 더 넓은 곳에서 살게 되었다. 무려 46층이다.
대다수가 일할 때 쉬거나 놀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적게 마주친다는 것의 여유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깨닫는다.
그리고 이건 좀 시간이 걸렸지만, 조울증으로 복용하던 약을 단약할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이제,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겐 오래된 생각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다. 만약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즉시 그러겠노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나의 핵심 축이며 본질을 형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이제는 더 이상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그 과정들이 고통이었음을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급적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임을.
물론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일반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그 고통을 지나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제는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매일을 그저 흘려보내고 멍하니 있어도, 조금 심심할지언정 고통스럽지는 않다.
은퇴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고, 슬롯생활의 흐름에 따라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었기에 구체적인 은퇴 후 계획은 없었다. 다들 이야기하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어’ 같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 그런 의욕은 애초에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운동도, 맛있는 걸 먹기도, 바카라을 보기도, 잠을 자기도, 여행을 가기도, 아무 것도 안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이 밀도 없이 떠도는 시간을 빠르게 흘려 보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노동 몰입이 아니라, 잉여롭지만 자발적인 몰입을 하기 위해서. 그래야만 시간은 흐르고, 또 내일이 무사히 찾아오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글도 끄적여 보게 되고, 누군가 이 글을 봐 줄 사람들은 없을까 고민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이러한 내가 하는 무엇이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이란 그런 것이며, 나 또한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39세에 13억을 가지고 은퇴를 하고, 매일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이런 글을 써보게 되었다.
이 글들은, 그런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