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음식

byGoodmorning

심천 화교성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국식당이 있다.


남편 회사일로 단기체류 하게 된 화교성은 예상했던 것보다 살기 편한 곳이었다. 대형 마트에 커다란 공원까지. 모든 것이 크고 널찍했고 깨끗했다. 마치 새로 만들어 놓은 도시처럼. 하지만, 식사문제만큼은 곤란을 겪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 당시엔 배달음식이 거의 없었고 전통중식이 익숙하지 않아 외식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았고 밥 하느라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즈음 "그 식당"을 만난 것이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중국어도 못하고 한자는 더 취약했던 시기여서 식당이름은 모르지만 위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중식의 특성상 많은 인원이 가야 골고루 시켜 먹을 수 있어 남편이 쉬는 주말이나 한국에서 지인들이 올 때마다 그 식당에 갔다. 너무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저렴하지도 않은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그런 식당이었다.


시작은 튀긴 꽃빵(炸饅頭, 자만토우)과 새우꼬치구이, 오이탕탕이(拍黃瓜, 파이황과)였다.

갈색 빛으로 튀겨 낸 꽃빵에 연유를 듬뿍 찍어 먹는 자만토우(대문사진)는 그것만 먹어도 식사가 될 정도였다. 자만토우는 어느 식당에나 있는 흔한 메뉴이지만, 그 식당의 새우 꼬치구이는 독특했다. 대하가 아닌 작은 새우를 여러 마리 쪼르르 꼬치에 꽂아 특제 간장소스를 발라 구워냈다. 꼬치를 손으로 잡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새우를 통째로 먹는 맛은 소스와 어우러져 일품이었다.


꼬치 한입 먹고 우리의 김치 같은 오이탕탕이를 하나씩 먹었다. 마늘과 식초, 소금이 잘 배어 있어 상큼한 오이탕탕이는 새우꼬치구이와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그 후로는 폭넓게 중식을 즐기게 됐지만 이 세 가지는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심천에서의 단기체류가 끝나고 한국에 들어온 후로 다시 가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명절 때나 축하할 일이 있어 식구들이 많이 모일 때면 심천의 식당이 떠오르고는 했다.


중식당의 테이블이 큰 이유와 식당 가운데 회전판이 있는 이유 모두 인원이 많은 식사자리를 위한 것이다. 심천에 있을 땐 자주 테이블이 꽉 차게 둘러앉아 떠들썩한 식사를 했다. 음식도 맛있었고 수다도 맛있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싹이 트면 각자의 근황과 알고 있는 유머, 뒷담화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난 늘 들떴고 말이 많았다.


양가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서 여러 식구가 함께 모이는 자리는 점차 사라졌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며 친구들과의 모임도 줄었다. 요즘의 트렌드대로 불편한 관계는 정리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삶은 단출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잔가지를 다 쳐내고 부대낌이 없어진 삶은 정말 이상적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없어진 삶이 꼭 평온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부대낌이 없어졌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느닷없이 쓸쓸한 기운이 몰려오기도 한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남이 된 지인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먹었던 식사자리만큼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식당에서, 그들의 집에서, 때론 우리 집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밥상들이.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서운함에 판이 깨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밥상들만큼은 다른 색채로 기억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상처와 원망, 단절의 기억들은 흐릿해졌는데 이상하게 함께 먹은 밥은 또렷이 남아있다. 그것도 그리움처럼. 이 머릿속 모순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제이다. 내게는.


심천의 그 식당에 다시 가도 어쩌면 그때의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가끔 쓸쓸함이 밀려오고 여럿의 수다가 고플 때면, 그리움이라는 음식을 꺼내어 상처 입은 시간을 잠시 잊는다.


사진; Pinterest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