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Salzburg)

byGoodmorning

동글동글한 얼굴에 인상 좋은 젊은 아빠인 B는 잘츠부르크를 안내해 줄 가이드였다. 패키지여행 중인 우리 팀과 반나절을 함께했다. 동유럽 4개국 여행에서 4명의 현지 가이드와 함께 했지만 B가 유독 인상에 남은 이유는 유머와 재치 있는 설명 덕이 크다.


호텔 앞에서 조우해 베토벤 생가와 미라벨 정원, 게트라이데 거리의 일정을 함께 하며 우리는 시종일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문장은 짜임새가 좋았고, 적절히 반어법을 섞어가며 유머도 잃지 않았다. 최소 5분에 한 번씩은 크게 웃음이 터졌고 뒤늦게 미소 짓게 하는 대사들도 많았다.


B는 성악을 하러 오스트리아에 온 음악도이다. 물가 비싼 곳에서 공부하다 부인도 만났고, 유치원생 딸 둘을 키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악보다 생계를 위해 가이드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며 해맑게 말한다. 그래도 수입은 꽤 괜찮다고. 오스트리아 유학생들의 대부분이 빈에 거주하고 있고, 빈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데 본인은 잘츠부르크가 좋아 눌러앉았단다.


이곳에서 유학생활중인 B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일본 유학시절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공부하러 온 건지 아르바이트하러 온 건지 헛갈리고, 좌절했던 시간을 보냈다. 삶은 고됐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나마 난 혼자였는데 B는 가장에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그가 말해주는 상황들이 애잔하게 들렸다.


그의 멋진 목소리로 듣는 설명은 말인지 노래인지 귀에 부드럽게 닿았다. 그리고 사운드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에선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오는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라벨 정원>


영화 속 ​마리아가 아이들에게 음계의 높낮이를 가르쳐주기 위해 계단을 건반처럼 활용하는 장면이 그의 가족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듯했다.


정원을 뒤로하고 걸으며 이동한 게트라이데 거리 앞에서 그는 세 가지를 짚어주었다. 핫도그, 커피가 맛 좋은 카페, 그리고 모차르트 원조 초콜릿 매장. 특히 초콜릿 매장에 대한 설명이 길었다.


잘츠부르크엔 모차르트 얼굴을 한 공모양의 초콜릿을 팔고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공식적으로 '원조' 타이틀을 획득한 곳이 '카페 콘디토라이 퓌르스트(Cafe Konditorei Fürst)'라고 한다. 초콜릿 장인인 파울 퓌르스트(Paul Fürst)가 쿠겔(kugel,공이라는 뜻의 독일어) 초콜릿을 처음 개발해 판매한 곳이다.


<카페 콘디토라이 퓌르스트 >


작은 공모양 초콜릿 한 알에 2.2유로(약 3200원)이니 가격이 만만지 않다. 그 설명을 하며 B는 지인 선물은 다른 가게에서 저렴한 것으로 사고(받는 사람은 모르니), 내가 먹을 건 하나만 사서 네 번에 나눠먹으라고 한다. 자기는 두 알을 사서 네 식구가 반씩 나눠먹었다는 농담인지 모를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모두 깔깔대고 웃었지만 나는 반은 진담으로 들었다.


그의 조언대로 핫도그도 먹고 커피가 정말 맛있는 카페에 앉아 자유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마르크트(Alter Markt) 광장 근처에 있는 본점으로 초콜릿을 사러 갔다.

먼저 한 알을 사서 맛을 보고,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며 B의 가족을 위해 한 박스 더 샀다. 그리고 집합장소로 갔더니 B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인사도 못했는데 다른 일정이 있어 갔다고 한다. 초콜릿을 건네주지 못해 너무 아쉬웠지만 그를 만날 방법은 없었다.



다음 날, 우린 할슈타트로 이동했다.

대형버스 하차장엔 다른 관광버스도 이미 여러 대 와있었다. 우리 팀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이동하던 중 다른 팀의 인솔로 B가 보였다. 그는 잠시 우리 가이드와 인사를 나눴고 나는 재빠르게 그에게로 가 어제 사둔 초콜릿을 전했다. 따님 둘과 여러 개씩 드시라고. 응원한다는 말까지 더하며.


전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한 마음이 닿았는지 '이렇게 다시 만났구나' 싶었다. 그 우연이 참 감사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기를 빌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이 꼭 결실을 맺기를 바랐다.


아침 안개 자욱한 할슈타트는 우리의 내일처럼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설렘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속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할슈타트의 안개 낀 아침>

토요일 연재